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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의 사자들 (벧전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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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자들 (벧전 2:9~12)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관점에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대립적 관계 - 불신자와 전혀 상대하지 않는 것. 교회가 순수성을 유지할 수는 있으나 세상 속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낳게 된다. 예)신앙촌, 메노나이트교회

2)타협적 관계 - 불신자의 생각, 생활 패턴, 시대적 풍조를 따라가고 수용하는 입장. 교회와 세상과의 구분이 없어져 버림.
예)동성애, 낙태용인. 제사허용, 주일의식 약화, 술,담배 허용. 교회의 세속화. 

3)변혁적 관계 -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생각, 삶,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변화시키는 자세.
예)싱가폴 - FCBC교회 800목장을 통해 전 싱가폴 하나님의 도시로, 로렌스 콩목사

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어느 것이 성경적인 입장인가? 세 번째 변혁적 관계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나와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신앙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12절의 말씀대로 세상에는 그리스인들에 대하여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초기 교회시대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물리적인 박해가 극심했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보았었다.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기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동굴이나 땅굴을 파고 숨어서 신앙을 지켰다. 만약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했거나 적대적 태도를 취했다면 교회는 오늘날까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당시 환난과 핍박 가운데 놓여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어떻게 이 위험을 극복하고, 처신해야 하며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9절의 말씀은, 고난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격려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베드로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 “여러분! 여러분들이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세 전에 택하셨고, 왕과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주셔서 거룩한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소유가 아닙니까? 환란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생뿐 아니라 내생까지도 책임지시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신분과 권세를 얻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때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잘 모르면 세상에서 놀림감이 되고 늘 패잔병 같은 인생을 산다. 

오래 전, 유럽에서 미국으로 한창 이민이 몰려들 때, 영국에 살던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다가 파선 침몰했다. 아내와 함께 아들을 안고 뛰어 내렸다. 남편은 구명조끼가 없었다. 

아내에게 부탁했다. “훗날 아빠를 찾거든 이 구명조끼를 보여주시오.” 미국에 도착한 후 어린 아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울면서 들어왔다. 아이들이 아빠 없는 아이라고 놀린다는 것이었다. 그때 엄마가 다락에 잘 간직해둔 구명조끼를 꺼내왔다. 그리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후론 아이들이 놀려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아빠는 지금은 천국에 계셔, 나를 구해주신 훌륭한 분이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자신을 향하여 나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장애가 있어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게 된다. 


2.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알려야 한다.

(벧전 2:9) ...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당시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사중적 신분과 권세를 주신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도 베드로는 당시의 성도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을 알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간증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간증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간증문>
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습니다. 어두움에서 벗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이한 빛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못박은 이야기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 큰 사랑의 이야기를 사도 베드로는 ‘아름다운 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덕’을 전하고 알리기 위해 그 놀라운 신분, 그 권세를 성도들에게 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성도들은 고난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늘날 벙어리 신자가 많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응답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입을 벌려도 어두움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이웃과 형제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멸망의 길을 가고 있어도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도 않는다. 빛을 비춰주지도 않고 소리지르지도 않고 있다. 이번 주 실천 과제를 드린다. 3사람 이상에게 여러분의 간증을 전하라.


3. 나그네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나그네와 행인’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나그네는 언제나 본향으로 돌아가려는 향수가 있다. 예)흑인 영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나그네가 짐이 많아지고 여행길이 고달프고 여행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제대로 살려면 목적지가 분명해야 하고, 삶의 방식도 나그네와 같은 의식을 가져야 한다. 박윤선 목사는 나그네 의식 4가지를 말했다.

1)성도의 영원한 집은 하늘에 있고 땅에 있지 않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성도의 생활 원칙은 세상의 본질과 같지 않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3)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한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4)세상에서의 기간은 짧아서 하룻밤 숙박하는 것과 같다
(대상 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나그네는 짐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 나그네는 목적지가 분명하다. 방황하지 않는다. 천성을 향하여 길을 가는 순례자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한다. 그러나 사단은 조직적으로 장기적으로 방해한다. 그러면 어떻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는가? 

1)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다. 교만한 마음을 내려 놓고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기를 바라며 겸손히 무릎꿇는 것이다.

2)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다.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옷 입는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 그렇게 된다. 문제는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닮지 않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드려보라.

3)자신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정원도 일주일만 가꾸지 아니하면 잡초로 무성해진다. 내 마음의 정원에 잡초를 뽑아내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순례자의 길을 마칠 때까지 육체의 정욕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4.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시각이 곱지가 않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초기 교회시대에도 그랬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더욱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 상해도 참아야 한다.

예)일제 강점기시대 김익두목사 - 황해도 완악 지역의 유명한 깡패. 예수를 믿은 후 봉변을 당했을 때 예수님 때문에 참았다고 한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 이유는 ‘권고하시는 날’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못된 짓하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

오늘 사도 베드로의 권면의 말씀은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대사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이기도 하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부여된 이 놀라운 신분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경건도, 우리의 선행도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어두움에서 그의 빛 가운데 들어갔으면 우리도 어두움을 향하여 비춰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4월 하순의 산과 들은 밝고 아름답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어둡다. 초기 교회시대와 같은 물리적 박해는 없어도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고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부정적이며 비난과 조롱이 점점 심화되어 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멀리가서 이방사람 구원하지 못해도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전해주는 빛의 사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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