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어야 (요 12:20~26)

  • 잡초 잡초
  • 364
  • 0

첨부 1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어야 (요 12:20~26)
 
지난 주일은 제가 뉴욕과 도미니카에 목회자 세미나 강사로 다녀오느라고 주일을 비웠습니다. 본 교회에 장례식이 날 때마다 봉사하는 나사로봉사회가 있는데, 거기서 늘 봉사하시는 이영숙 권사님께서 오래 전에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심방을 갔더니 저에게 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갈 시간이 다가온 것 같은데 유언을 할 테니 목사님이 잘 들으시고 그대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나는 돈은 없고 내가 살던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내가 죽은 다음에 그것을 팔아서 제3국에 선교비로 쓸 때 특별히 교회 없는 자에게 교회 하나를 건축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과도 다 합의한 사항이니까 마음 놓고 목사님이 그렇게 실천해주시면 편안히 주님께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영 안 돌아가시고 계속 건강해 지셨어요. 그랬더니 또 찾아오셔서 죽어서 하는 것보다 살아서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하시며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적지 않은 금액의 헌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재정부를 통해서 도미니카로 교회 건축하라며 전액 송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 건축이 다 되었다고 헌금하신 권사님과 제가 와서 헌당예배와 제1회 세례식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비행기로 도미니카를 왕복하려면 40시간을 가야 됩니다. 그래서 권사님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하셔서 저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동네 마을 사람들이 300명 정도 모였는데 헌당 예배를 잘 드리고 처음으로 신앙생활 시작해서 처음으로 다섯 명이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아예 강으로 데리고 나가서 침례를 주어서 제가 세례를 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5년 동안 우리 교인들이 제3국 개척지에 교회 건축한 곳이 22개입니다. 우리 갈보리교인들이 남모르게 많은 일을 저와 상의해서 많이 했습니다. 또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 최광규 선교사님이 4월 첫 주일에 오실 텐데, 다 끝난 다음에 저를 데리고 또 한 곳으로 갔습니다. 여기도 똑같은 교회를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초등학교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벌떼 같이 많은데 교육도 안 시킵니다. 그래서 그 건축한 교회를 학교 건물로도 쓰게 1, 2, 3학급을 만들어서 선생님 3분과 유치원 선생 이렇게 총 4분만 지원하면 훌륭한 학교가 되니까 우선 1~3학년 학급을 만들고 그 후에 4~6학년 나중에 만들기로 합의를 하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이 선교사님이 재미가 있는 모양입니다. 날 데리고 또 딴 데로 가서 여기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또 입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선교를 하면서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도와주신 성도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이 한때 우리 민중들에게 세상 말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유대 땅에서는 치솟을 만큼 인기 있는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언제인가 하면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직후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그 사건이 나오잖아요? 예수님 혼자서 제자들 몇 사람과 한 것이 아니라 베다니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데서 죽어 썩어 냄새 나는 나사로를 현장에서 살려서 멀쩡하게 살아났습니다. 이런 사실적 내용을 거짓말 할 수도 없고 소문이 온 유대 땅에 삽시간 입소문으로 퍼졌습니다. 모두다 예수님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그 때가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하니까 온 예루살렘이 예수를 보기 위해 온통 나와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언된 메시야다. 우리 히브리 민족에게 하나님이 예언하신 메시야가 이제 오신 것이다. 성경에도 있지 아니하냐?” 

12장 9절에 보면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라.” 지금 온통 한 나라 안에 큰 이벤트가 된 그런 사건이 되었습니다. 유월절이라 온 세상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다 그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은 나라에서 최고 영광의 절정으로 쳐다보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20절 말씀에 보면 “명절에 예배하러 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이런 좀 이해하기 힘든, 문맥에 안 맞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수가 헬라 문화권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본국에서 사는 숫자보다 외국에서 사는 숫자가 항상 많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국민은 5백만입니다. 그런데 미국에만도 유대인이 6백만이 삽니다. 프랑스, 유럽 할 것 없이 외국에서 사는 숫자가 훨씬 많은 그러한 민족 형성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도 헬라 문화권에서 많이 살았단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유월절이 되니까 예루살렘으로 다 몰려들어서 유월절 행사를 하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헬라인 몇 사람이 지금 뭘 하려고 하느냐 하면 예수님을 만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예수님은 누구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한번 만나려면 얼마나 힘든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예수 만나고 싶어 하니까 제자들이 못 만나게 하는 일을 해서 바쁩니다. 그러니까 이 헬라인들이 일종의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겁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빌립은 헬라 문화권 사람입니다. 우선 빌립이라는 이름이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러니 헬라 사람들이 빌립에게 와서 부탁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게 해 달라. 우리가 큰일을 가지고 왔다.” 빌립이 그 말을 듣고 보니까 해주고는 싶은데 자기 혼자 힘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번 제자가 된 안드레에게 가서 부탁하는 겁니다. 

“지금 헬라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는데 나 혼자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다. 그러니 나와 네가 같이 노력해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와서 예수님 보고 싶어 하니까 만나도록 한번 노력을 해주자.” 

아마 비서실을 몇 번 거치는 과정 같은 그런 분위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면담이 이루어졌는데 그들의 말을 듣고 하신 말씀의 줄거리가 오늘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헬라인들은 누구이고, 왜 예수님을 이렇게 뵙고자 했는가?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그 내용이 헬라까지 다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이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자기들의 나라로 한번 모셔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헬라의 조그만 도시 국가 에데사(Edessa) 왕국으로 모셔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왜 예수님을 그리 모셔 가려고 하는가? 에데사 왕국에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임금님이 이제 다 늙어 국정을 살필 수 있는 힘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장자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줘야 되겠는데 이 왕자가 지금 문둥병에 걸려서 출입도 못합니다. 그래서 죽어간단 말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예수님이 특별히 문둥병 환자들을 다 깨끗이 고친다는 소문이 에데사 왕국까지 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예수님에게 대사를 보낸 것입니다. “너희들 어떻게 해서든지 그분을 이곳으로 모셔오라. 그러면 그분을 왕처럼 대우해서 이곳에 있게 할 것이며 너희들도 일평생 공로를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한번 만나자고 빌립에게 청을 놓고 안드레에게 청을 놓고 해서 만남의 성사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때 예수님의 주변은 열광적인 존경심이 치솟은 것만큼 예수님의 신변이 또 어려워졌습니다. 

12장 10절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나는 바람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의 열광이 “이는 메시야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님으로 앉히려 하는 분위기가 전국을 휩쓸게 되니까 권세가들이 긴장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라.” 이렇게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의 에데사 왕은 “만약 예수님이 우리나라에 오시면 그런 신변의 위험도 없고 왕궁에서 평생 동안 잘 살 수 있게 약속하고 너희들도 이 일만 성사시키면 그렇게 내가 대우하겠다.” 그 화려한 약속을 들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섭을 해서 이야기를 한 끝에 답변으로 하신 말씀이 오늘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예수님이 하신 답변이 무엇인가? “나더러 너희 있는 곳에 오라 하지 말고 너희가 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나더러 너희 가는 길을 따르자 하지 말고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따르라.” 쉽게 말하면 “나는 너희 나라로, 왕궁으로 데려갈 생각 하지 말고 너희조차도 가지 말고 이 자리에서부터 나를 따르라. 그것이 더 복된 길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가는 길에 너희도 있어야지 너희 계획에 나를 따르라 한 말이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 이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길을 내가 가고 있다. 죽으러 가는 길이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내가 만약 너희들을 따라서 에데사 왕국에 갔다고 하자. 그래, 내가 신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그 왕자의 병을 고쳐줘서 그가 왕위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자. 그도 몇 년을 살다가 또 죽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그 왕자나 그 임금이나 너희나 다 같이 영원히 영생하는 생명 불멸의 진리를 나한테 배우고 그것을 오히려 따르라. 임금님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문둥병 하나가 낫는 것도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영생이다.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이것을 위해서 너희가 나를 따라야지 너희 계획에 나를 따르라 하는 말이냐?” 이렇게 말씀하시고 한 알의 밀을 통해 생명 원리를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생명 보존의 대원칙, 생태계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쪽이 계속 죽어야 한쪽에서 계속 살아납니다. 식물이 저렇게 무성하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식물들이 죽었기 때문에 거기서 나와서 살아있는 겁니다. 동물들이 저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이 수없이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 먹잇감으로 먹이 사슬이 되어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겁니다.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날마다 죽어 가야 됩니까? 한쪽에서는 계속 죽어야 한쪽에서 계속 살아나는 생태계의 원리! 죽는 것이 없을 때는 사는 것이 없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살을 떼시고 피를 흘리시면서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받아먹으라. 나를 먹는 것이다. 내 생명을 먹고 나는 생명이 없어지고 너희는 살 것이다.” 그런 원리로 성찬을 우리에게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죽어지는 것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나는 진리! 여기 특별히 강조한 말씀이 “땅에 떨어져”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게 썩어버리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다 세상에서 높임을 받기 원하고 인기가 절정에 오르기를 바라고 아주 하늘 같이 올라가고 싶어 하는 욕심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져 보이지도 않게 썩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만약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그 사람을 통해서 열매 맺게 될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은 왕궁의 화려한 약속을 받고 그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으니 나를 따르는 자는 이 진리를 깨닫고 영생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오렌지카운티에 로버트 쉴러 목사가 시무하시는 크리스털 교회는 미국에서 제일 아름답게 건축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유리입니다. 교회 전체가 다 유리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우선 그것부터 구경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거기 가면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인들이 그 교회 들어가기 위해서 다 밟고 가는 길에다가 교회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의 이름을 돌에 새겨서 밑에다 다 깔았습니다. 날마다 교인들이 밟고 다닙니다. 

“아니, 이런 공로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비석에 세워서 교회 정문에 다 우러러보게 세워야지 왜 땅바닥에 이름을 깔아서 날마다 밟고 지나게 하느냐?” 그랬더니 설명하는 집사님이 “이분들이 이 교회 건축을 위해서 땅에 떨어져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신들이 땅에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크리스털 교회가 마련된 것이라고 영원히 기념하는 뜻으로 이름을 땅에다 깔았습니다.” 그런 설명을 하더라고요. 잘 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는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 그렇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박해 시절에 레티모 감독이 순교를 당하기 위해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교인 한 사람과 같이 갔습니다. 니들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레티모 감독이 니들리에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이 일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오. 우리는 오늘과 내일 영국 땅에서 영원히 끌 수 없는 신앙의 불을 붙이러 가는 길이요.” 그래서 영국의 신앙이 그들의 순교로 다시 빛나게 되는 역사를 남기지 않았습니까?

 제가 하와이에 처음 갔을 때 데미안 신부 이야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거기 가서 알아봤습니다. 그는 젊은 신부로서 하와이 나병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고난당하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전도를 했더니 한 사람도 예수를 안 믿어요. 물어봤습니다. “왜 나를 따르지 않느냐?” 나환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당신과 같이 그렇게 건강한 몸과 정상적인 그런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도 당신 같이 예수 믿으라고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환경이 되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그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있는가 한번 해보십시오.” 아무도 안 믿어요. 한 사람도 전도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데미안 신부는 그날부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곳에 보내신 나도 나환자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때부터 나환자가 되기 위한 온갖 노력을 합니다. 같이 음식을 나눠먹고 같이 잠을 자고 그들의 상처에 자기 상처를 갖다 대고 일부러 그들에게 피를 흘리고 자기 피를 섞어 버리고 그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마침내 문둥병에 점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나환자가 되어서 “여러분, 나도 여러분과 똑같아 졌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환자들이 “아니, 저렇게 건강하고 잘생긴 젊은 신부가 우리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피나는 노력을 하고 날마다 기도를 하면서 나도 나환자 되게 해달라고 하다니!” 그 과정에 이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을 해서 마침내 하와이 나자로 마을을 성 나자로 마을로 만들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데미안 신부가 전하는 복음을 믿어서 그렇게 거룩한 성지로 남았잖아요? 

누군가는 땅에 떨어져 죽는 사람이 한명 있을 때만이 살아나는 생명의 원리! 그래서 “땅에 떨어져 죽으면” 오늘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에데사 왕국으로 데리고 가서 호강시키려고 그렇게 하지 말라.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있어야 한다.” 

오늘 바로 예수님은 이 성찬 예배를 초대하는 뜻이 뭡니까?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어야 한다. 너희 계획하는 일에 나를 날마다 끼어 들이고 예수님 이리 오십시오, 저리로 가십시오 하지 말라.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따라야 한다. 내가 가는 이곳에 너도 같이 있어야 한다. 나를 에데사 왕국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말라. 내가 있는 골고다 길을 너희가 따라 오라.” 우리 모두가 그러한 마음으로, 그러한 사명으로 오늘 이 성찬의 떡과 잔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초대를 감사드립니다. 이 떡과 잔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적 역사가 나한테 이루어져서 주님이 계신 곳에 내가 있고 주님의 가는 길을 나도 따라갈 수 있는 사명의 은총이 내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