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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을 이기는 믿음 (행 7: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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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기는 믿음 (행 7:54~60)

   오늘은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부활절 후 다섯 번째 주일이라고 하지 않고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우리에게 있어서 부활절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의 계절에 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절부터 성령강림절까지 50일 동안 계속되는 긴 축제 기간을 통해서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 때문에 심한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어도 산다는 믿음, 아니 죽어야 산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들의 그 믿음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첫 번 순교자 스데반 집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과 지혜, 그리고 믿음이 충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빌립 집사와 함께 구제하고 접대하는 일뿐 아니라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활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어떤 사람들이 사람들을 매수하여 그를 고발했습니다.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거짓말로 그를 공회에 고발했습니다.

   대제사장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고발하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대제사장의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그가 행한 설교가 사도행전 7장 2절부터 53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매우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 7:54) 

  사도행전 기자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이를 갈았다고 그 때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만든 것은 이어지는 그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 그는 사람들이 죽인 나사렛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말이 사람들을 더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는 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스데반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사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믿음입니다. 올바른 믿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본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그가 본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 분이십니다. 그 우편에 서신 분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절망의 현장에서 오히려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너무나 비겁하게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까닭은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만 보고 있기 때문에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를 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부활하신 주님을 볼 때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고 오직 그 믿음으로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주님을 믿는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이 믿음은 또한 이 땅 위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죽음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먼저 그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또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 그 순간에도 용서를 구했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가 자기 영혼을 주님께 맡긴 것이 주님께 대한 그의 믿음을 보여 준 것이라면 원수의 용서를 구한 것은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을 잘 나타내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결코 나뉘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웃을 용서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통해서만 이웃을 용서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은 스데반이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 한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본문 말씀도 그의 기도 응답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분명한 증거가 바로 나중에 바울이라고 불리워진 사울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사울이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딤전 1:13 상반절) 성도들을 앞장 서서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교회를 아예 잔멸하려고 했던 인물이 아닙니까? 열심이 지나쳐서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잡아오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청해서 가지고 갔던 그가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사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물론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지만 그 배후에는 스데반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기도가 있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죽음을 이기는 믿음의 놀라운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변화되어 위대한 복음 전도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 말미암은 그의 순교는 세계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순교와 더불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대한 큰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을 흩어졌더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불을 끄려고 막대기 같은 것으로 치면 불티가 여러 곳으로 튀어 번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대한 박해가 오히려 말씀이 더욱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의 계절을 살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계절에 우리도 스데반의 부활 신앙과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굳센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더 이상 땅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그 영광 가운데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도 스데반처럼 그 믿음으로 죽음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해치려는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직 성령 충만하여 위의 것을 찾는 가운데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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