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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의 밤에 찾아오신 예수님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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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밤에 찾아오신 예수님 (눅 5:1~11)
 
수녀님 네 분이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모처럼만의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하던 수녀님들.  그런데 갑자기 한 수녀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저는 걱정이 하나 있어요.  아무래도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건 비밀인데요..."
그러면서 수녀님께서는 지금껏 감춰온 비밀을 다른 수녀님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사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유부남이거든요.  저 때문에 이혼까지 한다고 그래요."

순간, 다른 수녀님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자 다른 수녀님 한 분이 말했습니다.
"사실 나도 비밀이 있어.  나는 도박에 빠져서 지금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얼마 전에 성도님들의 헌금을 몽땅 날렸지 뭐야."
 
역시 다른 수녀님들도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수녀님 한 분도 말했습니다.
"휴우... 지금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비밀을 말하는 것 같군.  좋아! 나도 하나 말해주지.  난 알콜 중독자야.  밤마다 소주 3병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와."

다른 수녀님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에 바빴습니다.  이제 나머지 수녀님 한 분도 비밀을 말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녀님은 말하기를 굉장히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녀들이 위로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비밀은 꼭 지켜 드릴게요.  어차피 전부 놀라운 비밀을 다 말했잖아요."
"아니... 그래도... 난..."
"지금이 기회예요.  답답한 마음을 털어 버리세요.  우린 죽을 때까지 말을 안 하겠어요."
 
그러자 남은 마지막 수녀님은 힘을 얻었는지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듣는 순간 남은 수녀님은 놀라움에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넘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수녀님의 비밀은 이것이었습니다.
"실은 나는 백방으로 설치고 돌아다니는 수다쟁이거든.  고칠래야 고칠 수가 없어.  요 입이 방정이지."

사랑하는 여러분, 무릇 입을 다스리십시오.  복을 받는 사람은 입의 훈련을 잘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입의 훈련을 잘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입은 복을 부르기도 하고 복을 쫓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을 부르는 입이 되려면 입으로 자꾸 큰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간마다 때마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영감과 계시가 있다고 할지라도 훈련되지 않은 계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준비가 철저하고 훈련이 충분하면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모세는 40년간 광야에서 철저히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3년간 강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훈련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기적의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큰 믿음을 가지려면 큰 믿음을 훈련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고 준비하십시오.  하나님께 붙잡힌 자에게는 충분한 기회가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의 양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준비의 양이 차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준비 기간이나 훈련기간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의 한계성을 넘어가고 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의 기회는 믿음에 의한 확신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확률적이고 오감적이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이 아닌 계시적이고 영감적인 지식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도 하나님은 눈으로 바라본 대로 보고한 10명의 정탐꾼보다 위로부터 오는 영감과 계시를 고백한 2명의 정탐꾼을 쓰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고백한 빌립 보다, 보는 순간에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을 고백했던 안드레의 믿음을 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과학과 경험의 지식을 십자가 아래에 다 묻어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속에 계시적이고 영감적인 믿음이 나타나셔야 합니다.  이 시간에 눈에 보이고, 이해되어지는 현상을 붙잡지 말고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계시와 영감을 붙잡으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위로부터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믿음을 붙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해되고 판단되어지는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위로부터 오는 영감과 계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 대하여 기뻐하시지 않고 그 사람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높여 줄 수 있는 믿음만 가졌다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높이 쓰실 줄 믿습니다.  언제나 믿음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립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기회의 때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람도 그 사람 속에 믿음만 들어가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삶 속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캄캄한 지하 감옥 속에 갇혀있는 바울과 실라에게 찬송과 기도를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는 오늘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에게 찬송과 기도와 감사와 평안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결코 시시한 사람들의 비평과 판단을 큰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하셔야 합니다.  실수나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실패로 몰고 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불안과 근심인 것입니다.  이 불안과 근심을 정복하는 일,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 내 안에 밀려오거나 남아있는 모든 불안과 근심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녹여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실패자의 기질을 성령의 능력으로 정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바람이 불어야 연이 뜹니다.  상처 입은 조개만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듭니다.  고통을 통하여 인간은 더욱 강해지며 인생을 성숙시키고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믿음 안에서 고통을 소화하고 이겨냅니다.  이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불같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이 땅에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된 인생의 가능성을 하나님 안에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그 속에 안고 있는 현재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환경의 변화를 믿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체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역사하시고, 절대적으로 상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과의 싸움을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사실 오늘날의 모든 삶의 업적은 어제까지의 불가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으십시오.
지금도 기적은 끝없이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기적은 끝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말씀했고, 나는 믿었으니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기적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작품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열성적이고 근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중소기업을 세워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남들이 잠자는 시간에 그는 새벽 늦게까지 잠과 씨름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사업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 위기를 이겨내고자 낮에는 바이어들을 만나러 사방으로 쫓아다녀야 했고, 저녁에는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다 떠나간 빈 공장에 돌아와서 새벽까지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업은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그는 정말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했지만 결국 인생에서 쓰디쓴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의 말씀에서와 같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할만큼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밤새도록 수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그는 인생에서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본문 5절을 보면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아주 처절한 실패자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여기에서 끝이 났다면 본문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어느 실패자의 고백, 내지는 넋두리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본문 3절은 그 중요한 메시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여기 한 배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의 빈 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빈 배에 찾아오셨고, 오르셨습니다.  한 마디로 베드로는 실패의 깊은 밤에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밤에 예수님을 만났던 베드로가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기적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자신의 배가 넉넉히 채워지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 빈 배라는 말은 베드로의 실패한 장면을 말합니다.  하룻길을 걸어도 험한 계곡과 태산 준령을 넘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왜 실패의 순간이 없겠습니까?  낮과 밤, 빛과 그림자가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실패의 순간, 인생의 깊은 밤에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실패의 때에라도 주님이 함께 계시면 실패가 변하여 성공이 될 것입니다.  빈 배에라도 주님이 오르시면 만선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지쳐있는 베드로의 빈 배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빈 배를 주님께 내어놓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창조되는 신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명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니까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었습니다.  빈 배가 만선의 배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 내 인생의 배에 오르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오시옵소서.
내 직장과 사업에 오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오시옵소서.
우리 민족 가운데 오시옵소서.
당신이 오시면 내 삶은 최선의 삶으로 변할 줄로 믿습니다.
오셔서, 나를 축복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인생의 빈 배, 영혼의 빈 배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 주님 전에 빈 배를 저어 나아오신 분이 계십니까?  실망하지 말고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 만난 실패의 밤은 주님이 가까이 찾아오시는 기회입니다.  실패의 깊은 밤을 맞았을지라도 주님이 찾아오셔서 내 인생의 배에 오르시면 그 실패는 성공을 위한 출발점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실패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이 배에 좀 올라가도 좋으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배에 오르십니다.  이것은 주도적인 주님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에서 실패를 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에 우리 주님은 주도적인 사랑으로 나를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손을 내미시고, 위로해 주시고, 새로운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빈 배에 오르셨습니다.  오르시고서는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있더니 이제는 아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이날 베드로의 사업은 불경기였습니다.  이날 아침 베드로의 기분은 나쁘고 짜증스러웠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배에 오르시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 헌신하는 것은 내 인생의 실패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 기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하면 안됩니다.  나는 실패를 했지만, 나는 지금 기분이 몹시 상하여 있지만, 그래서 짜증나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그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명령하시니 순종하여 헌신하는 것, 이것이 제자의 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분에 따라서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기분에 따라서 찬양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기분에 따라서 헌신이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기분에 따라서 헌금하는 액수까지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오늘 이 땅의 목사님들은 성도들의 기분을 맞추느라고 목회다운 목회를 못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바른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결코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명과 기분을 구분하십시오.  사명과 감정을 구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헛된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자기 감정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그것이 사명을 감당하는 장애물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도 나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왜 당신의 상한 감정에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려 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헛된 감정의 노예가 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삶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선한 일에 대가를 지불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있는 성도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한 집안의 가장이 고기 한 마리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안타까움과 염려와 걱정이 자신의 피곤한 육체보다 더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분명히 기분이 몹시 상해 있습니다.  만사가 귀찮고 짜증이 나는 순간입니다.  자신의 마음은 그냥 여기에 주저앉아서 쉬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배를 띄우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베드로의 마음은 여기에 있지만 예수님의 명령은 저기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소명을 위해서 자기의 기분을 버렸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잠재웠습니다.  베드로, 그는 헛된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잃어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합니다.  자신의 상한 기분을 내세워서 위에서 부르시는 소명을 그르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자신의 쓴 뿌리 때문에 내게 주신 헌신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놓치는 불쌍한 영혼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 상한 감정과 쓴 뿌리가 소명과 헌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 그 자리에는 악한 사단만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열매 대신에 가라지만 무성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실 때에 이 그물은 헬라어 원문에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명령의 대상들도 복수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을 내렸다"고 했을 때에 여기에서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이것도 단수입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지만 정작 그물을 내리고 순종한 사람은 베드로 혼자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은 것도 베드로였습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그날 갈릴리 해변에는 많은 배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던 사람은 베드로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 마음과 인생 그물을 던진 자만이 행복의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최선의 삶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순종 생활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순종하겠습니다.  실패하여 답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겠습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순종하는 신앙, 이것이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순종하는 신앙, 이것이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게 합니다.  순종하는 신앙, 이것이 빈 배가 만선의 복을 누리게 합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순종이 습관이 되고, 순종이 생활이 되도록 시간마다 때마다 훈련하는 것입니다.

실패의 밤에 찾아오신 예수님,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결과가 하나도 없었던 빈 배에 오르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았던 베드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분되지 않습니까?
거룩한 영적 질투가 일어나지 않으십니까?
그냥 그렇다구요?
아무런 감동도 일어나지 않는다구요?
그러니까 그렇게 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간증은 없고, 신앙은 밋밋하게 종교놀이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의 주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베드로의 빈 배에 오르셔서 만선의 복을 주신 예수님은 오늘 내 인생의 빈 배도 만선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저 사람의 간증이 내 간증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받았던 축복을 나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니, 저 사람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최소한 이런 거룩한 영적 질투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단순히 거룩한 영적 질투심을 가지기만 하면 됩니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행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거룩한 영적인 질투심을 품었다면 이제는 그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자기 삶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선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경험과 판단에 맞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기분이 짜증이 나고 상해 있어도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해변의 아주 이름 없는 가난한 어부를 부르신 예수님, 못난 어부들이 자신의 인생 중심에 예수님을 모실 때에 저들을 통해 세계 역사를 뒤집어 놓으실 작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중심에 모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중심으로 생각해 주실 것입니다.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앞장세우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의 앞길을 개척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이 땅을 뒤집어 놓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배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나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비록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안고 몸부림치는 이 순간에도 나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서 찾아오신다면 나는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이 변하여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변하여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능력이십니다.  말씀도 능력입니다.  순종도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만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순종하므로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고기를 잡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5절에서 "선생이여"하던 그 호칭이 8절에서는 '주여!' 하고 달라집니다.  이것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본문 11절에서 그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만선을 위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 만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만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실패와 좌절 속에 빠져있는 나를 찾아오신 이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고, 환경의 복을 주시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으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환경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관이 그 복만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그 복은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르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그렇게 살지를 못합니다.  어리석은 부자 관원처럼 예수님을 뒤로하고 물질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있는 것까지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예수님께서 오르시고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하였더니 그날 그는 대박이 터졌습니다.  실패의 밤이 행복의 아침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빈 배가 만선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만선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해야만 했던 그 목적이 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만선의 배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자신만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함께 했던 동업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웃을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 혼자만 잘 살고, 잘 믿고, 나 혼자만 예수님을 따르면 안됩니다.  나를 알던 이웃의 아무개도 함께 예수를 믿게 해야 합니다.  옆집의 아무개 엄마도 함께 소명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내 가정에 찾아오셔서 참 평안과 만족을 주시는 이유, 그것은 먼저는 나로 하여금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제자를 삼아서 함께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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