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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로 있을 때 (벧전 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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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로 있을 때 (벧전 1:17~25) 
 
  현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교회는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입니다. 

  어렷을적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하고 간식거리가 없는 시절에 먼 주막까지 막걸리 한 주전자 사가지고 오라는 부모님 말씀에 술심부름을 간 어떤 자식이 있었더랍니다. 부모님 심부름이어서 무더위를 이기면서 술을 사가지고 오는데 목은 마르고 베는 고파오고..... 그래서 한 모금만 하자, 어찌 한 모금 목을 축이는 것이 죄가 되겠느냐 어찌 한 모금 먹은 것을 눈치체시겠느냐 하면서 한 모금 한다는 게 결국은 먹다보니 한 주전자의 술은 다 없어지고 술에 취하여 부모님 앞에서 술주정을 한 자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이 사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하나님의 한 단면은 광야의 하나님, 즉 나그네의 하나님이시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제시하는 인간 역시 나그네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우리가 나그네로 있을 때 나그네의 인생길을 가는 성도들이 쉼을 얻으며 나그네 길을 가는데 영적 능력을 공급받는 영적인 주유소입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이 시간도 내 생애는 한번 지나갈 뿐입니다. 그래서 이대로 종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도 우리 생애는 다시없는 역사의 종말입니다. 인생은 한번 살다 갑니다. 그래서 일생입니다. 

  "지구는 여관방, 여관방 주인은 하나님, 인생은 나그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라고 하는 여관방에 와서 하룻밤 쉬어가는 존재와 같이 인생은 나그네일 뿐입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머무는 자가 아니라 떠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 중에 50년 후에 이 땅에서 다시 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천상병시인의 '소풍'이란 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그네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만년 머물러 살것처럼 합니다. 
  사람이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교훈을 받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의욕과 야심의 표시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힘써서 돈을 벌고, 지식을 얻고, 권세를 얻습니다. 그런데 떠날 때는 손을 쭉 폅니다. 세상 것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붙잡아도 내놓을 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할 나그네들입니다. 

  만일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산다면 이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며 자유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는 나그네임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위해 쓸 수가 있고 하늘나라에 투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나그네라는 의식, 나그네라는 정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삶은 '나그네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욥 다니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사도들......... 그들이 만약 나그네 정신을 버렸다면 그렇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곳에 나그네로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든 성도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나그네는 사명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나그네가 나그네된 사명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이시며 그 나그네에게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명의 크기만큼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에서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사명자는 나그네로 있을 때 허랑방탕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합니다.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행한 행위대로 진실하게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린 일정 기간 왔다가 가는 나그네지만, 대충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잠시 사는 세상, 잠시 사는 삶이지만, 시간이 제한된 삶이지만, 마치 천년 만년 살것처럼, 영원히 살것처럼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겉모양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현재의 삶 너머에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곳에서 잠깐 머물다 가는 삶을 대충 살 수 없습니다. 잠시 살지만 천년만년 살것 같은 책임감으로 사는 겁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우리의 구원이 자랑스럽게 되도록 조심해서 나그네 길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얻은 구원의 값은 이 땅에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이 엄청난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받았습니다.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흘리신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어떻게 구원받은 줄을 알아 합당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 나그네는 좋은 안내자를 만나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의 첫째 아들에게는 '게르솜'이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 이름들 속에는 모세의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게르솜은 나그네란 뜻이고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입니다. 이는 모세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길 가는 나그네이며 나그네의 삶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을 살다 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하며, 신기루를 좇기도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나그네의 발에 등이며 나그네의 길에 빛"입니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는 믿음의 살마들은 주의 말씀과 신앙생활이 "짐이 아니라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시119:54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천국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이 이 세상에 흩어져 살다가 주일날 모여서 힘을 공급받는 영적 휴게소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늘나라가 고향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하늘 고향의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와 고향집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기도를 통해서 좋은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힘과 용기와 소망을 얻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을 힘차게 천국지향적 신앙을 가지고 살아나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마음의 고향, 영혼의 고향에 한걸음씩 다가가게 됩니다. 


  3.  나그네는 여장이 가벼워야 합니다.

  나그네 길은 단촐한 삶이 특징입니다.꼭 필요하지 않는 짐들은 길 가는데 부담이 됩니다.오히려 피곤하게 만듭니다.설사 가지고 가더라도 얼마안가 힘에 겨워지기 때문에 버립니다.
  여행할 때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짐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짐이 무거우면 인생의 순례길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짐에 눌려서 여행의 즐거움, 인생 행복을 잃게 됩니다.   

  지금은 해외여행도 이웃집 가듯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처음 해외여행할 때는 잘 몰라서 이것저것 다 가지고 갔습니다.여행가방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그후 자주 여행할 기회를 갖다 보니 가급적 간단하게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실감합니다.꼭 가지고 가야할 것만 골라서 가지고 떠납니다.잠시 후면 돌아올 길이기 때문입니다.천국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버려야 합니다.그래야 가볍고 편안하게 갈 수 있습니다.


  4. 나그네는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또 특별히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하나님 안에 믿음과 소망을 두고 형제를 피차에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거짓없는 사랑의 실천은 나그네 길을 힘차게 하고 외롭지 않게 할 것입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는게 뭐가 있습니까. 뭘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가장 보람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구원받은 우리를 서로 사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내게 주신 내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욕심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하구요, 기분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하구요 주님의 영원하신 말씀처럼, 변함없는 사랑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젖소와 돼지가 한 집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올 때마다 젖소에게는 등을 만져주면서 "고맙다" 그러는데 돼지는 볼 때마다 "뒈져라" 하면서 돼지를 향해서는 멸시와 천대를 합니다. 그래서 돼지가 사람들이 자기를 천대하고 멸시하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날 캄캄한 밤에 젖소를 찾아갑니다. "젖소야,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너와 나는 한 집에 같이 사는데, 너는 젖이라고 아침에 좀 짜주고, 밤에 좀 짜주면 그만이고 나는 죽으면 통째로 주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서 족발까지 삶아먹으면서 왜 나만 보면 욕을 하니?" 하고 돼지가 불평섞인 말을 하니까 젖소가 점잖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나는 살아서 주고 너는 죽어서 준다. 그것이 다를 뿐이다." 
  살아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 주어야 합니다. 

  나그네로 살아갈 때 자기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그네로 살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운 구원을 이루어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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