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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본이 되는 교회 (살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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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이 되는 교회 (살전 1:2~7)  

뉴욕에 플리모스(Plymouth)교회가 있었습니다. 
1928년 12월 어느 주일, 팔순의 흑인 노파가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들어와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 끝날 무렵에 노파가 손을 들며 말을 합니다. 

"목사님, 한가지 간증을 하고 돌아가려 합니다. 이를 위해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목사는 간증을 허락합니다. "지금부터 60년 전, 1850년 12월 주일이었습니다. 제가 12살 때였습니다. 저와 오빠와 부모님은 교회 건너편에 있는 노예매매 시장에 팔려왔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네 식구가 흩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농장으로 팔려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식당으로 팔려 가셨습니다. 오빠는 공장에 팔려가고 마지막으로 제가 남았습니다. 경매에 올려져 7백불에 사라고 외칩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제가 나이가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노신사가 7백불에 저를 사겠다고 손을 듭니다. 그래서 그 분과 함께 온 곳이 바로 이 교회입니다. 알고 보니 이 교회 성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헌금을 하여 한 사람이라도 자유를 얻게 해주려는 운동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모인 7백불의 헌금이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저는 그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 노예 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여 저축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가 없어 양로원에 있습니다." 말을 마친 노파는 그 동안 모아 두었던 7만불을 헌금합니다. 

플리모스 교회가 영혼 구령에 힘을 다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참으로 본이 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은혜 받은 교인들이 모일 때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려는 교인들이 있을 때 본이 되는 교회가 됩니다.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려 힘쓰는 교회가 될 때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실라와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당시 헬라인의 무리와 귀부인들이 교회에 나왔지만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뒤에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핍박은 계속되었습니다. 고린도에 머물던 바울은 한번 가보려 했으나 사정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디모데를 보내어 사정을 알아보았는데 디모데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려움 가운데도 신앙의 동요 없이 잘 인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형제를 사랑하는 형제애와 바울을 향한 애정이 넘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악조건 속에서도 아가야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창립 31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도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되는 교회' 가 된 이유는, 


첫째로 믿음으로 역사하기에

흑인 해방운동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은 흑인인권운동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위협을 당했습니다. 집은 두 번이나 폭파되었고 칼에 찔려 죽을 뻔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협박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가 무수한 어려움을 당한 이유는 목사였기 때문이고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당한 고난이 믿음에 미친 영향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최근 수년 동안 거쳤던 수난과 고뇌하는 순간들은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고난과 박해를 즐겨 받을 수 있었고, 오히려 그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더 심화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분명한 믿음은 믿음대로 살아가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 즉 믿음의 결과가 나타나던 교회입니다.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역사는 습관적인 예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명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동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믿음의 역사(Work)에 달려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믿음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껏 전하고 가르치며 기도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드러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으며,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며, 이기적인 사람들을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선교의 열정으로 나타나 믿는 자의 수를 더하게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만이 교회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이 되는 교회가 되려면 믿음으로 역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인 물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고여 있다가 썩고 맙니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믿음도 살아있는 믿음이 될 때 일하게 됩니다.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랑으로 수고하기에

헐리우드(Hollywood)에서 배우들과 영화계 종사자들이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연설을 듣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미국 최고미인 열 명중에 뽑힌 콜린 에반스(Collen Townsend Evanns)가 초청되었습니다. 콜린 에반스가 나오자 박수와 휘파람으로 환호성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중대한 발표를 합니다. "여러분, 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의 한 마디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 외칩니다. "도대체 그 운이 좋은 사나이가 누구입니까?" 그녀는 대답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장내는 조용해졌습니다. 콜린 에반스는 사랑하는 그 분을 위해 영화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노라고 선언합니다. 그 후 선교활동을 위해 목사와 결혼을 하였고 그녀는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목사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콜린 자매는 헐리우드 스타의 자리를 포기하고 예수를 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대답합니다. "저는 헐리우드의 스타나, 영국의 여왕 자리나, 미국의 대통령 자리라 해도 지금의 나와 바꾸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에게 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 콜린 에반스는 예수를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인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사랑의 수고와." 여기의 '사랑의 수고' 라는 말에서 '수고' 는 '코포스' 입니다. '채찍으로 때리다' 를 의미하는 동사인 '코프트' 에서 유래했습니다. 따라서 수고는 단순히 일을 위한 수고를 가 아니라 고통을 동반하는 수고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수고의 고통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굶주림, 잠 못 이룸, 매를 맞고 핍박받는 고통과 고생 역시 주님을 사랑하기에 행하였던 수고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수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과 함께 고통도 감수하는 수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수고하는 곳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수고 하셨듯 사랑으로 수고하여 본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소망으로 인내하기에

숲 속에서 벌목꾼들이 백년이 넘는 거목을 벌채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힘들게 나무를 잘랐을 때 그들은 기이한 나이테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무의 수명을 보여주는 10개의 나이테가 있었습니다. 다섯 개는 다른 나이테와 달리 촘촘히 위치해 있었고, 나머지 다섯 개의 나이테는 바깥쪽으로 넓은 간격을 두고 있었습니다. 벌목꾼은 조밀하게 붙어있는 다섯 개의 나이테를 보고 말합니다. "이 나무는 5년의 가뭄기간 동안 전혀 자라지 못했군." 그러자 다른 벌목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합니다. "물론, 가뭄기간에 크게 자라지는 못했지. 하지만 가뭄으로 인해 부족한 양분과 수분을 얻기 위해 나무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뿌리가 강화되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네. 고난을 이겨내었기에 거목이 될 수 있었던 거야. 그 이후에 생긴 나이테가 넓은 간격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세." 이를 듣고 있던 벌목꾼이 끄덕이며 말합니다. "그렇다면 5년의 가뭄이 나무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군". 

본문 3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억함이니" 여기의 '인내' 는 '휘포모네'입니다. '아래에' 란 뜻을 가진 '휘포' 와 '머물다' 의 뜻을 가진 '메노' 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즉 인내는 '아래에 머물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아래와 같은 고통에도 인내하는 것입니다. 시련 중에도 주님을 소망하며 인내할 수 있음이 본이 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본이 되는 신앙인이 모인 교회가 본이 되는 교회가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본이 되는 교인들이 있었기에 인내로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견디며 믿음이 더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이 되는 교회로서 바울에게 칭찬을 받았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Juan Carlos Ortiz)목사는 '제자입니까(Disciple)' 라는 저서에서 현대교회의 성장은 바른 성장이 아니라 몸만 커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성숙한 것이 아니라 비대해졌다는 것입니다. 

3백명 교인으로 목회 하던 그가 6백명의 교회로 성장되자 우쭐댑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너는 교회가 자랐다고 생각하느냐? 성장한 것이 아니고 조금 살이 쪘다. 너는 교회가 부흥했다고 생각하느냐? 부흥이 아니고 조금 비대해진 것이다. 3백명이 모일 때나 6백명이 모일 때나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조금도 자라지 않은 거야". 한마디로 몸만 커진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룡은 거대한 몸 때문에 쓰러져 지구 최초로 멸망을 당한 짐승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는 대형화되는데 왜 세상에 조롱을 당하며 본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벧엘교회는 31년의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전통이 있으며 저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에게나 본이 되는 교회로 남아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디 31주년 창립기념을 맞이하여 본이 되는 교회를 이루고야 말리라 결단을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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