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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속받은 구속자 (골 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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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받은 구속자 (골 1:13~14)

1. 어톤먼트

<어톤먼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어톤먼트>라는 말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용어인 '구속'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소설이나 연극 대본을 써서 13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문학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던 ‘브라이오니’라는 소녀와, 영국 명문의대를 졸업하고 그 앞길을 보장받은 ‘로비’라는 청년, 그리고 ‘로비’와 함께 자라고 함께 대학을 다닌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입니다. 

영국이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 전인 1935년, 영국 어느 시골의 한 부유한 저택에서 사건은 시작이 됩니다. ‘로비’와 ‘세실리아’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비’는 그 저택에서 가사를 돕는 여인, 가정부는 아니지만 그 집안일을 하고 있는 집사와 같은 여인의 아들이었고, ‘세실리아’는 그 집의 도도하고 이기적인 큰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실리아’ 말고도 ‘로비’를 사랑하고 있던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집의 둘째딸인 13세 소녀 ‘브라이오니’였습니다. ‘브라이오니’는 언니의 연인인 ‘로비’를 자신의 첫사랑으로 여기면서 아련한 사랑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그 저택 주인의 조카들인 세 남매도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런던에 가 있던 그 집의 장남이 당시 초콜릿 사업을 크게 하고 있던 친구와 함께 그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온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파티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부모의 이혼 때문에 친척집에 잠시 와 있으나 또 다시 어디론가로 가야하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던 주인의 어린 조카들이 몰래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로비’는 파티 중에 ‘세실리아’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그 집의 도서실에서 둘 만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실리아’의 동생인 ‘브라이오니’가 보고 맙니다. 이 13세의 소녀는 자신의 첫사랑이 언니를 사랑하는 것과 언니 역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런 중에 두 사내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아이를 찾기 위하여 어둔 밤길을 나서게 됩니다. ‘브라이오니’도 전등을 들고 사촌 남동생들을 찾으러 나서는데요. 집주변 후미진 곳을 지나던 ‘브라이오니’는 이상한 소리에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 갔다가 자신의 사촌 언니, 즉 두 사내아이들의 15살 된 누나인 ‘롤라’가 누군가에 의해 성 폭행 당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어두운 밤이라 피해자조차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그 사람을 분명히 보았다고 말함으로서 유일하면서 가장 확실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진 두 사내아이들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15세 소녀에게로 집중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 집과 주변에는 3명의 남자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 집의 아들, 아들의 친구인 초콜릿 사장, 그리고 ‘로비’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고 긴장하고 있을 때, ‘로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로비’는 두 사내아이를 찾아서 재미있게 장난을 치면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가 ‘롤라’를 성폭행한 범인이라고 ‘브라이오니’가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황 상 ‘로비’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고, ‘세실리아’까지 자신의 사랑을 밝히면서 애인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가족들과 경찰들은 “문학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13세 소녀의 말만 믿고 그 청년을 감옥으로 보내어 버립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영국이 참전하게 되었고,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되려고 했던 ‘로비’는 감옥살이 대신에 전쟁터로 보내어 지고 맙니다. 애인을 그렇게 떠나보내었던 ‘세실리아’도 가족들과 의절을 하고 다시는 집과 가족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전선에서 참혹한 전쟁을 치르던 ‘로비’는 두 동료 병사와 함께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로비’는 ‘세실리아’가 보내준 편지와 다시 만나면 함께 살자고 했던 바닷가 사진을 품고 어떻게든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애인 ‘세실리아’를 만나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영화는 갑자기 현대로 돌아와 한 방송사의 스튜디오에서 노 여류 작가와 진행자가 대담하는 장면으로 바뀝니다. 그 여류작가는 그때의 13세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그 대담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이야기 가운데 마지막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언니의 애인은 프랑스 전선에서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전사했습니다. 언니 역시 전쟁 중 간호사로 일하다가 독일 전투기가 런던을 공습했을 때 지하도에 숨어 있다가 사망했습니다. 한 사람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죄의 대가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먼 이국땅에서 죽었고, 한 사람은 사랑하는 애인을 못 잊고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쓸쓸하고 비참하게 사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했던 내용 즉 주인공이 영국으로 무사히 돌아와 애인을 만나 행복에 겨워하는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13세 소녀였으나 이제는 인기가 많고 존경을 받는 작가가 된 ‘브라이오니’가 언니와 언니의 애인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설 속에서 나마 무사히 귀향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브라이오니’는 그렇게 함으로서 언니와 그 청년에 대해 참회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거짓말이 두 사람을 불행의 늪으로 밀어 넣었으며, 결국 자신도, 나머지 가족들도, 그 청년의 홀어머니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평생을 가슴 아파 하다가 소설을 통해서라도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제가 영화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이안 맥이완’의 유명한 소설이었던 이 영화가 성경적인 ‘구속’의 의미를 가장 쉽게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구속’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2. 구속의 은혜를 입은 우리

1) 희생

“구속(求贖)”이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나를 구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속’의 교리를 말할 때,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구속’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속죄 제사’의 경우, 이 속죄 제사는 소나 양 등 제물의 죽음이 반드시 필요한 제사입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구속”이라는 말의 의미 역시 노예나 죄수를 위하여 일종의 보석금 같은 ‘속전’을 지불하여 그를 자유롭게 하는 일을 뜻하는 말로서, 그 일을 위해서도 속전을 내주는 사람의 물질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구속은 그것을 담당하는 이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구속의 교리를 그대로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속죄 제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범한 이후,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본능과 본성, 생각과 마음씀씀이, 그리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죄로 얼룩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병들고, 육체가 신음하고, 삶에는 온갖 저주가 다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성적으로 죄인이고 또 거듭해서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죄의 사슬과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다른 존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이런 인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는 모든 인류의 죄와 그 죄의 징벌을 대신 받으시는 희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여기의 “구속”에 해당하는 헬라어(아폴뤼트로신)는 말씀드린 것처럼 '몸값을 지불하여 그 사람을 놓아주다'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서신서 곳곳에서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등입니다. 이런 식으로 바울은 우리가 얻은 구속은 바로 예수님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구속’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속’이 가지고 있는 미래적인 의미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 보면,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몸의 구속”은 성도들도 장차 부활하신 주님처럼 그 육신의 변형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구속, 참된 구속은 장차 우리 앞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자, 다시 한 번 구속이라는 이 놀라운 말의 의미를 정리해볼까요?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구속은 우리의 죄에 대한 무시무시한 형벌이 면제된 것입니다. 구속은 우리가 이전에는 사람의 자식이요 세상의 아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의 상속자가 된 신분의 변화를 뜻합니다. 그리고 구속은 장차 예수님과 꼭 같이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장차 완전한 구속을 누릴 날이 우리 앞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구속의 은혜는 ”흑암의 권세에서“ 구출되어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복입니까?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이러한 구속의 교리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골로새 교회 안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 즉 이단들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주권들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1:16). 소위 천사숭배와 영 숭배에 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인들도 할례와 같은 특별한 종교의식을 행하여야 하며, 음식에 관한 규례와 기타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2:6~23). 이러한 거짓 가르침들은 헬라적인 이교의 요소와 유대교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었습니다. 

골로새의 잘못된 교사들은 죄 사함은 다만 세례 시 얻은 축복일 뿐이고, 더 깊은 축복의 단계는 율법을 지키고 천사를 숭배하며 억지스러운 겸손을 통해 얻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골로새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율법 준수나 다른 믿음의 대상이나 방법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입니다. 

2)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

자,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얻었다”는 말은 그 본래의 의미가 '가지다, 지니다, 소유하다, 획득하다, 점유하다, 보유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는 말은 ‘지금 구속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며, 그가 죽으심으로 죄와 그 징벌과 저주가 우리를 떠났으며,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는 장차 그분과 똑 같은 놀라운 신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변화된 신분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얻고 누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말입니다.

남미의 칠레에 있는 늪지대에는 ‘리노데르마르’라는 개구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개구리는 몸집은 작지만 왕성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구리의 왕성한 번식력은 수컷의 처절한 헌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암컷은 알을 젤리 같은 물질에 담아 낳습니다. 그러면 수컷이 그 알주머니를 삼켜 식도의 소리 주머니에 보관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수컷의 고난은 시작됩니다. 수컷은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먹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모두 포기해버립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 알이 부화하면 수컷은 하품을 하듯 입에서 올챙이들을 쏟아내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이런 미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저주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희생이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인 사탄의 입을 막아버린 희생이었습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고 누리는 것을 구속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미 누리고 있는 구속 곧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뻐 찬양해야 하며, 장차 이루실 그 완전한 구속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에게 이 놀라운 구속의 복을 주신 주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이루신 구속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3. 우리도 희생 제물로 살아야 ‧‧‧

설교 시작에 말씀드렸던 <어톤먼트>라는 영화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오늘 설교를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사랑하는 두 사람을 불행으로 밀어 넣었고, 나머지 가족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던 그 작가는 그들을 위해 자신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실제 내용과 소설을 다르게 기록한 일이며, 실화적인 소설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그 소설에 대해 ‘대부분의 소설은 실화이지만 마지막 부분만은 자신이 꾸며낸 것’이라고 밝히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함으로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그것이 그들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희생이었던 것이죠. 성도 여러분! <어톤먼트>라는 영화에 나오는 이 작가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의 크고 작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저의 경우, 저를 대학과 대학원까지 공부시키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은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고, 자신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막내 동생을 위해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야 했던 큰 형님의 희생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아내나 또 다른 가족들의 수고와 희생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희생, 나아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희생하신 그 놀라운 구속의 은혜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떤 보답을 해 보셨는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운 인생이었던 베드로는 자신의 마지막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것으로 자기 나름의 보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교회와 성도를 핍박했던 바울은 주님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수십 차례 죽음의 위험 속으로 자신을 던졌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주님의 희생에 감사하여 자신도 그 주님과 주님의 나라와 복음과 교회 위하여 또 하나의 희생 제물이 된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이제 주님은 그 역사 속에 저와 여러분들도 포함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하면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희생했습니까?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얼마만큼 희생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슴에 영혼 구원의 꿈을 품고 통증을 참으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는 이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여러분도 가족과 이웃과 이 땅과 복음과 교회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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