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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 (고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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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 (고전 1:1~9)
 
  청교도 시대가 남긴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 사람이 예수님를 믿으면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서 그를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 들이기 위하여 교회 위원회가 입교 문답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자매가 입교 문답을 받을때 나이 든 장로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매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자매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장로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자신을 어떻게 느낍니까?’ 자매는 ‘지금은 전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그러면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자매가 했던 대답이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제가 죄를 향해 달려가는 죄인이었지만 지금은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아직도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죄 문제와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에게 죄와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더욱 집요하게 공격하고 유혹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가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는 죄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순으로 시작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책 순서에서도 우리들은 귀한 교훈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인류의 시작과 죄의 시작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류에게 죄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고통을 애굽의 노예 생활로 보여 주시고 죄의 종노릇하는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애굽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11장44절에서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방인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하기오이’로 이는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읽어보면 거룩함의 의미를 더 깊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지난 주에 이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행정적인 조직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여진 사람들’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셨습니다. 성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하기오스’입니다. 거룩하다는 단어는 ‘하기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도인 ‘하기오스’와 거룩이라는 ‘하기오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면서 붙여주신 참 귀한 이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람들이기에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하나님 중심의 삶의 목적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왕자는 궁정 밖의 세상이 궁금해서 몰래 담을 넘어 궁정을 나왔습니다. 왕자는 길거리에서 자기와 닮은 거지를 보고 서로 옷을 바꾸어 입고는 역할을 바꾸어 살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왕자와 거지는 역할을 바꾸었습니다. 궁정으로 들어간 거지는 궁정의 엄격한 규범에 숨막혀 했습니다. 거지 생활을 하는 왕자는 구차하고 험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결국은 각자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가서 왕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왕자가 되었고, 거지는 나름대로 자기의 처지를 만족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성도’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성도로 불러 주셨는데 성도로서의 삶을 살기가 힘들고 싫다고 거리로 뛰쳐나가 우리 마음대로 산다면 거기에 과연 성도의 향기와 기쁨을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진정한 기쁨과 선한 영향력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들은 두가지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는 죄에 대해 끊임없이 ‘NO’하는 것은 배우는 겁니다. 성도가 머물면 덕이 되지 않는 자리에 요청 받았을 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로서 자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를 더럽히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생각이 밀려 올때 단호히 ‘NO’ 라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부, 그리고 권력에 대한 유혹이 다가와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NO’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된다면 ‘NO’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해 달콤하게 다가오는 죄를 향해서 단호하게 ‘NO’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죄를 향해 ‘NO’라고 말하지 못하고 죄에 끌려 다니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해야 할 두 번째 처방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는 ‘YES’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속되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분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시기 위해 구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신 것은 단지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라고 불러 주신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과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구별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 성도라는 의미를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성도로서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중심으로 봅니다. 그러기에 성도로서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도라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성도로서 해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악한 일을 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의 입과 혀로 감사와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과 게으름의 생각을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생각을 품고 그 일을 위해 손과 발로 섬기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계명이라고 말씀하면서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있는 단어는 ‘다하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소극적이고 부분적인 것으로 사랑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소극적인 거룩함이 아닌 적극적인 거룩함으로, 부분이 아닌 전체로 응답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우리 행복한교회가 창립된지 3주년 되는 주일입니다. 이곳 지하에 예배 공간을 마련하고 접의자를 펼쳐 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순간 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교회를 찾기가 어려워 몇 차례 전화로 확인하면서 찾아올 만큼 깊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배실도 지하 공간이고, 주차 시설이나 다른 모든 시설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교회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또한 성도 여러분들의 교회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결과입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사로서 성도 여러분과 교회 모든 일꾼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3년간 ‘나눔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 라는 우리 교회의 목회철학을 실천하는 일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적극적인 자세로 실천하고자 애를 쓰며 왔습니다. 그런 모습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3년 동안의 섬김의 삶을 통해 교회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이제는 이 기초위에 조금씩 더 귀한 사역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3장12-14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루어 놓은 것에 안주하며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새롭고 더 귀한 섬김의 교회와 더 성숙한 성도로 성장하는 꿈을 좇는 비젼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됨의 자긍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마지막 상을 위해 좇아가며 거룩한 꿈을 향해 힘차게 일어나는 성도 여러분과 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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