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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이 샘솟는 인생 (빌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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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샘솟는 인생 (빌 4:1~7)

바울은 빌립보서 4장을 시작하면서 3장에 대한 결론을 요약하여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 4:1) 

바울은 “너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너희는 인생 최고의 배경을 가졌다. 너희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닌 하늘에 속한 자이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최고의 영광스러운 시간표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라”며 “주 안에 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배경을 가진 자가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참된 누림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기쁨이 샘솟는 인생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진단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지금 내 속에 기쁨이 넘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금 상태는 어떠합니까? 기쁨이 샘솟고 있습니까, 기쁨이 메마른 상태입니까?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기쁨이 샘솟는 최상의 영적 상태를 회복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기쁨의 oneness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 4:2~3)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 자녀의 영적 정체성을 가진 자는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고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영적인 싸움을 싸워 나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을 믿고 누리는 것에서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하여 우주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게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oneness를 이루는 것에 지역, 민족, 세계복음화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에서 oneness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oneness를 이루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행전 16장에 나온 바와 같이 루디아의 집을 모체로 세워졌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가 있던 마게도냐 지역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에게 큰 자유가 허락되어 있었고 사회적인 활동도 많았습니다. 

이런 문화적 성향으로 인해 빌립보 교회 안에서도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던 이 둘은 서로 대립하며 주도권 다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보며 시시비비를 가려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책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두 사람은 나와 함께 복음에 힘쓰던 자들”이라 밝힙니다. 교회에서 더 인정받으려는 욕심에 일이 틀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며 복음적인 해답을 주었습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로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삶의 주인이라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oneness가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며 우리가 하나의 성령으로 하나 된 존재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서로 경쟁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각 부서 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부서만 잘 되면 된다는 부서 이기주의는 전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약한 부분을 도와 서로 잘 되는 것이 그리스도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같은 부서, 기관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판단, 정죄가 아닌 이해, 수용을 통해 함께 기도해 주는 복음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빌 4:5) 관용이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설령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보이더라도 기도하며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며 도울 때 사단이 틈타지 못할 정도로 굳건한 oneness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용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관용의 삶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먼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고 강조합니다. 이는 주 안에서의 기쁨-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근본적 기쁨이 있는 사람만이 관용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의 잘못도 이해하고 용서하며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기쁨의 oneness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주어진 기쁨을 충만히 누리며 진정한 복음공동체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참된 누림의 비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생 최고의 가치와 배경을 가진 자가 그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비결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된 누림의 삶은 바로 기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의 현장 속에 사는 한 문제는 끊임없이 오게 되며 그로인한 염려와 근심도 계속됩니다. 기독교 상담학자 게리 콜린스는 “염려는 우리 시대의 공식적인 감정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염려는 창세기 3장 현장의 보편적 현상으로 이는 두려움, 불안감, 스트레스, 공포, 긴장감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것에 대해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며, 이렇게 해야만 참된 누림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어윈이 달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의 일입니다. 어윈이 탄 캡슐이 지구에 가까워 질 무렵 그는 착륙을 위해 낙하산을 폈습니다. 그런데 세 개의 낙하산 중 두 개만 펴지고 한 개가 펼쳐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캡슐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캡슐은 곧 지표면에 부딪혀 박살이 나고 말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어윈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마치 낙하산 한 개가 더 펴진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윈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간증하였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영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모든 일은 영적인 것에서부터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순서입니다. 

 염려라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두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불신앙의 산물입니다. 이 염려는 마귀가 주는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이간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불신앙을 심어 이간시키고자 염려가 생기게 합니다. 이러한 마귀의 속임수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도리어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합니다. 감사기도는 이미 승리를 선포한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아무리 짙은 안개라도 태양이 뜨면 다 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짙은 염려와 근심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누리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두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는 자에게는 그 마음과 생각 속에 참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누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죽음 지향적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 지향적 인간입니다. 창세기 3장 현장의 환경은 모든 삶을 죽음 지향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상태로 보게 하기 때문에 염려와 근심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이러한 창세기 3장 환경과 관계없이 생명 지향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이러한 삶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기도로 누릴 때 생명 지향적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나와 가정, 교회, 지역, 민족, 세계를 살리는  생명 지향적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임을 일컫는 단소승자(端笑勝者)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자녀가 된 여러분은 영적 단소승자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닥친다 해도 여러분은 최후의 승리가 보장된 존재입니다. 

본문 3절은 여러분의 이름이 이미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은 존재, 영광된 미래가 보장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특권 중의 특권은 세상의 어떤 환경과 여건도 우리의 기쁨과 행복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참된 평강으로 기쁨이 샘솟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늘 기도하며 이러한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확실히 누림으로 가는 곳마다 머무는 곳마다 죽음 지향적 환경을 생명 지향적 환경으로 바꾸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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