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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이 없는 사랑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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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사랑 (롬 8:31~39)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들에게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부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게 된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남편은 자신의 무능함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여러 날 고민하던 남편이 마음에 한 가지를 작정했습니다. 아내를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남편은 값싼 인삼 한 뿌리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산삼을 캐는 꿈을 꾸고서 산에 올라가 산삼을 캤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걸 먹으면 아마 나을 거야. 꼭꼭 씹어 먹어!” 아내는 고마워하면서 정말 잔뿌리까지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처럼 밝은 얼굴로 인삼을 먹는 아내는 보며 남편은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인삼을 먹은 후 병세가 금세 호전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몹시 기뻤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내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던 날, 남편은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염려하지 말아요. 나는 인삼도 산삼도 먹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먹고 나은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해서 죽는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비록 가난하고 어려워도 사랑이 있으면 그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며 사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적인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무능한 인간인지라 더 이상 무엇을 해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엄마의 품속에서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젖먹이 아이가 엄마 젖을 물고 있는 사진입니다. 자신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성애가 눈물겹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해도 더 이상 책임져 주지 못하고 떠나는 어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또한 유한한 인간인지라 오래 오래 사랑하고 싶은데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잡지에 게재된 한 주부의 글입니다. 2년 전 시부모님에게 핸드폰을 각각 선물로 사드렸답니다. 문자 보내는 법을 알려드렸더니 서로 문자를 보내면서 좋아하셨답니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갑자기 발병되어 돌아가셨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핸드폰을 금세 없애기 뭣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여보! 나 오늘 늦게 들어가. 그러니 어멈이랑 저녁 식사해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됐는데, 혹시 아버님이 사별의 충격으로 치매에라도 걸린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며칠 후 또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김 여사! 비가 오는데 우산 갖고 몇 시에 마중 나갈까? 아니, 내가 미쳤군. 보고 싶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서 평소대로 문자를 보내셨다는 겁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지만, 더 이상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인간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며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요, 사랑 그 자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4: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God is love.)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한계가 없는 사랑입니다. 영원하고, 완전하고, 전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끝이 없는 사랑!(Endless Love)


[1] 하나님의 사랑 :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끝이 없는 사랑 

① 사랑의 보증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놀라운 사랑이 우리들에게 부어주십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 증거가, 그 확실한 보증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을 때, 하나님을 거역할 때, 범죄할 때, ...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신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흔히 많이 사랑할 때 뭐라고 표현합니까? 하늘만큼 땅만큼 ...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표현으로 모자랍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정확합니다. 예수님만큼!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크리스천은 예수님 짜리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어떤 것의 가치를 매길 때 ‘얼마 짜리’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 삼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피값을 투자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짜리’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액수를 계산할 수 없는 ‘무한 값’(priceless)입니다. 그 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우리가 인간적으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정성을 기울였기에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독생자를 투자하시고 우리를 얻으셨는데 어찌 포기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 짜리’인데 포기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무한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없는 사랑입니다. 

② 끝이 없는 사랑 :

렘31:3 “ ...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 ” 여기서 영원한 사랑이란 말은 예전에 사용하던 한글개역성경에 보니까 ‘무궁한 사랑’으로 번역되어 있고, 영어 성경(NIV)에서는 ‘everlasting love’(영속적인 사랑)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소홀히 하거나 잊어버리는 불완전한 사랑이 아니고, 완전한 사랑이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젖먹이 자식을 둔 어미가 어찌 그 자식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놓치지 않으시고,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로마서는 흔히 ‘성경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귀중한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8장은 가장 빛나는 하이라이트입니다. 그 중에서도 본문 31절~39절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선포한 ‘환희의 찬가’와 같은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우리 인생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 모습을 설명합니다. 


[2]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 : 인정, 공급, 보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만 살펴봅니다. 

① 인정해 주시는 사랑 :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의인으로, 천국 백성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를 ‘칭의’(稱義)라 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뭐래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1절 보세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어서 33절~34절을 보시죠.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다 치러주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라가신 후에도 계속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변호해주시고,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나쁜 사람이라고 고발하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눅15:11~32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졸라 유산을 타낸 후 멀리 떠납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그 많던 재산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된 후 그제야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 많던 돈 어디가 썼냐? 무슨 짓을 했냐? 이게 무슨 꼴이냐? 다그치지 않습니다. 무조건 받아줍니다. 돌아온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큰 아들이 불평을 합니다. 자기에게는 소홀히 하면서 저런 나쁜 자식에게 어쩌면 이렇게 잘 해 줄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끝까지 감싸줍니다. “죽었다가 살아서 돌아왔는데 무슨 소리냐? 즐거워하는 게 마땅하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용서해 주시는 사랑, 감싸주시는 사랑, 편들어 주시는 사랑, 허물을 보지 않는 사랑, ...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 때문에 인정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벌였습니다. 체벌 교사의 처벌 요구했는데 학교 당국이 이를 거절하고 주동 학생들을 징계하려고 해서 수업을 거부한 것입니다. 운동장에 모였다던 학생들이 교무실로 우르르 몰려갑니다. 교사들은 슬슬 피해버립니다. 그런데 유독 나이 지긋한 선생님만 남아서 학생들을 만나 호통을 칩니다. “야! 이놈들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썩 나가지 못해!” 그러자 흥분한 학생 몇이 선생님을 구타합니다. 선생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구타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손으로 다른 데를 가리지 않고 끝끝내 눈만 가리고 있는 겁니다. 사태가 겨우 수습되자 학생들은 큰일 났다 싶어 그 선생님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빕니다. 죽을 죄를 지었노라고. 선생님은 웃으면서 잘못을 뉘우쳤으니 괜찮다며 격려합니다. 그러자 안심이 된 학생 들 중에 하나가 질문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왜 눈을 가리 계셨어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거? 나를 때리는 학생을 보고 싶지 않아서 ... 나도 인간인지라 두고두고 나쁜 감정을 품게 될까봐 그랬지.” 그 말씀을 들은 학생들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이 선생님의 사랑과 같은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사랑스런 아들딸로 보십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고 세상에서 누가 뭐라 하든 기죽지 말고 늘 담대한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② 공급해 주시는 사랑 :

본문 32절 보시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고도 남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특별히 바울은 수사의문문 형식으로 그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도 어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마6:31~33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늘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궁급하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만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노력도 해야 되겠죠. 그러나 결국 우리의 생애를 책임져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노후가 걱정될 수 있지만, 하나님 사랑이 노후대책입니다. 아무쪼록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보호해 주시는 사랑 :

본문 35절~37절 보시죠.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바울 당시 성도들은 세상의 많은 핍박과 시련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만 못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 이런 저런 핍박과 시련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이기에 우리를 충분히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요즘 안양 초등학생 살인 사건 때문에 학부모들의 걱정이 큽니다. 등하교 시간에 학교 옆을 지나가면서 보면 동반하는 부모님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정말 걱정이 되죠. 그런데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세상은 위험합니다. 안양 살인 사건으로 한창 떠들썩하고 부모님들이 조심하고 있을 때 일산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뉴스에 나온 동영상을 보니까 얼마나 끔찍한지! 어디서 일어났나요? 자기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대책은 세워야겠지만,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해도 부모라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험한 세상이지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염려하지 않음을 간증합니다. 고후4:8~9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hard pressed)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정말 바울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망하지 않았음을 당당히 증거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지하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사랑을 받은 자의 태도 : 승리의 확신, 사랑의 실천 

그러면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과연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① 승리의 확신 :

본문 38절~39절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보장해 주시므로,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체념하고 포기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바울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이런 저런 상황이 닥쳐도 결국은 모든 것을 조화시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증거한 말씀입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확신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② 사랑의 실천 :

요한일서 4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요일4:8, 11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게 분명하다면 자동적으로 우리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 안에 사랑의 변화가 없다면 신앙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흔히 헬라어 단어로 ‘아가페’(αγαπη) 사랑이라고 부르죠.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불가능한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 우리의 삶속에서 실천되어질 때 놀라운 변화와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것으로 우리 인생이 풍성해지고, 어두운 세상을 밝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Hellen A. Keller)를 잘 아시죠. 그런데 그의 배후에 앤 설리번(Anne Sullivan)이 있고, 또 그 배후에는 로라(Laura)라는 老 간호사가 있습니다. 사랑의 릴레이가 놀라운 기적을 연출한 겁니다. 헬렌 켈러는 시각, 청각, 언어 삼중 장애인이죠. 그런데 장애인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고난을 극복한 위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훌륭한 사람은 그를 키워준 설리번 선생입니다. 거의 50년간 옆에 붙어서 가르치고 도와준 분입니다. 대단한 사랑이죠. 그런데 설리번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로라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이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앤 설리번입니다. 그 소녀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 소녀는 미쳤고, 실명까지 했습니다. 날마다 자살을 기도하고, 괴성을 지르고 ... 결국 회복 불능의 판정을 받고, 지하 독방에 격리 수용됩니다. 보호소 측에서는 치료도 중단시켰습니다. 

그런데 老 간호사 로라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합니다. 특별한 치료보다 그냥 친구가 되어 날마다 먹을 것을 들고 가서 책을 읽어 주고 기도해 줍니다. 처음에는 담벼락처럼 무반응이었습니다. 음식도 먹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콜릿 한 개가 없어집니다. 앤이 집어먹은 겁니다. 용기를 얻은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 주고 기도해 줍니다.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이야기를 하더니, 2년 만에 정상인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 후 맹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최우등으로 졸업합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을 받고 눈도 뜨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광고 기사를 보게 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를 돌 볼 보모를 초빙합니다!” 앤은 자기가 받은 사랑을 그 아이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대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 낸 것입니다. 그 아이가 바로 헬렌 켈러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인간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이와 같이 하나님을 닮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사회에, 온 세상에 ... 이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끝이 없는 사랑! 이것만이 우리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온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끝이 없는 사랑을 날마다 체험함으로 승리하시고, 더 나아가 그 사랑을 전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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