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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원수되지 않으려면 (약 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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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원수되지 않으려면 (약 4:4~10)

<원자력적인 하나님의 능력>이란 책을 쓴 “프랭클린 홀” 이란 사람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네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공기와 음식과 수면과 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공기 없이 물 없이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한가지가 더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이미 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좋으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넘치도록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 태평양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물이 없어서 죽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은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분명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해야 받게 되는지 몰라서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않고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이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않으려면 

1.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간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것이 경제일까요? 정치와 이념일까요? 아니면 인간관계 문제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입니다. 인간을 힘들게 하고 행복을 빼앗아가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심각한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 없습니다. 

4절을 보세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과 원수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4절 말씀을 보면 “세상과 벗된 그것” 입니다. 

롬8:7에서는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빌3:18에서는 세상 영광과 욕망대로 살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것을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죄란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 속에 빠져 하나님이 기쁘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세상과 짝이 되면 간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쾌락, 육체적 정욕을 추구하면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주신 은혜마저도 빼앗으십니다. 

그러기에 8-10절에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깨달았으면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두마음을 품었다면 이제라도 마음을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애통하며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온전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망하는 것은 죄때문이 아니라 죄를 회개치 못하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과거를 보시고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 죄 사함 받았다면 절대로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제게도 말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제게 말하지 머세요. 하나님도 묻지 않는데 제가 알면 뭐합니까? 전과 기록은 경찰서나 필요합니다. 

제게 말해봐야 저도 인간인지라 별로 좋게 보지 못하고 제 설교를 힘들게만 합니다. 그러기에 해결하실 것은 본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해결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아들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우리 속에는 죄의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스리고 살아야 합니다. 죄의 소원이 뭡니까? 죄의 소원, 우리 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있는데 죄의 소원은 우리를 멸망시키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다스려야 합니다. 

어느 집에 쥐가 너무 많아 먹을 것만 놓아두면 순식간에 없어지곤 하였습니다. 주인은 화가 잔뜩 나서 쥐새끼들을 다 잡아 칠 기회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고에 들어갔더니 목이 작은 단지에 쥐가 들어가서 단지 속에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화가 나 있던 중이라 그 단지 뚜껑을 얼른 막았습니다. 그리고 마당으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는 쥐를 죽일 목적으로 단지를 높이 들어있는 힘을 다하여 땅바닥에 던졌습니다. 단지가 박살났습니다. 그런데 쥐는 상처하나 생기기 않고 사뿐히 나와서 주인을 놀리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단지만 깨뜨리고 그 곳에 음식물만 못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못 살게 구는 죄가 참으로 많습니다. 죄를 없애려고 애를 써보지만 죄는 그대로 살아 있고 자기만 아픔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죄를 이겨 보려고 금식을 한 분이 있습니다. 금식을 하고 나서 몸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죄는 그대로 살아 있는 데 몸만 약해져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남편이 놀음에 빠졌습니다. 바람피우는 남편하고는 살아도 놀음하는 남편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놀음 습관이 사라지도록 금식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남편도 놀음을 안 하려고 결심하여도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장한 결단을 하고 왼 손가락 5개를 다 잘라 버렸습니다. 다시는 놀음을 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다짐이었습니다. 이제는 놀음과 완전히 이별한 줄로 알았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알았고 아내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없어졌습니다. 아내는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자 여기 저기 찾아보았습니다. 혹시나 하여 놀음하던 자리로 가 보았습니다. 남편이 그 자리에 둘러 앉아 놀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왼 손에 붕대를 감은 채 화투를 끼고 “장땡이다”하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단지는 깨지고 쥐새끼는 살아 비웃는 것처럼, 손가락을 잘라도 죄는 살아 비웃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소원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죄의 소원, 죄짓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그것에 끌려 다니지 말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요? 우리의 의지나 결단으로 안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속에서 충만하여 내 전인격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죄를 깨닫게 할뿐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특별히 성령은 우리가 다른 것을 사랑하고 하면 시기하면서 까지 우리를 사모합니다. 

5절을 보세요.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여기 '시기'한다는 말의 원문의 뜻은 ‘뜨겁다’는 뜻의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 붓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령을 품고 하나님을 사모하되 불붙는 마음을 갖고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남녀가 연애를 하게 되어 사랑의 불이 붙으면 뵈는 것이 없게 됩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되고 판단능력도 사라집니다. 그러기에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서 결혼 하셨지요? 안그런척 해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다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받을 자가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 은혜 귀한 줄 모르면 돼지나 개에게 진주를 던져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은혜가 주어져도 그 은혜의 가치를 모르기에 짓밟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07:9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라” 했습니다. 또 역대하16:9에도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에 j국에 가서 성찬과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찬과 세례의 감격이 대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은혜를 사모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면 은혜가 임합니다. 기적을 사모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열 두해를 혈루 증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이 주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소문을 듣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불이 붙었습니다. 나도 그분에게 나가면 내 병도 고침 받겠다. 하는 믿음이 확~ 생겼습니다. 그녀는 12년 동안 수많은 의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별짓 다해보았습니다. 결과는 더 악화되었고 재산은 다 날아갔습니다. 이정도 되면 이제 자포자기 상태일 텐데 그녀에게 빛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소문입니다. 남들은 무심코 흘려버리는 소문이지만 이 여인은 복음으로 들렸고 주님을 사모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워 공개적으로 치료를 요청치도 못하나 주님이 지나가실 때 그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손만 대도 낳겠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혈루근원이 그 순간 깨끗이 치유된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치료의 비법은 사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뭐라 하십니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사모하면 주님의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를 저버리고 무시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됨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3. 순종과 복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교만입니다. 

6-7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물리친다.'는 말은 적을 대적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시고 적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만할 때는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경고의 사인을 주십니다. 깨닫고 회개하라고 주시는 사인입니다. 그 경고 사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고나, 질병 또는 재난과 사건을 통해서도 주십니다. 자식을 통해서도,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도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도 주십니다. 

제가 오늘 이 설교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은혜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왜요?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교만 죄를 지어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우리 속에도 계속해서 교만 병을 심어놓습니다. 그래야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교만한 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자기 실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의 티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교만한 모습을 모르고 겸손한 줄 알고 착각하다가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 싫어합니다. 외식하는 사람이 외식하는 사람 싫어합니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교만한 자를 아주 미워합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교만의 이유는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만하면 탐심이 가득하여 자기 이익에 눈이 어두워집니다. 가난한자가 보이지 않고 긍휼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물과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도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내가 무엇입니까?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면서 나를 낮추고 나를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겸손할 때 왕권을 주셨지만 교만하자 왕권을 빼앗으셨습니다. 다윗에게는 교만한 아들이 있었고, 겸손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교만했고 솔로몬은 겸손했습니다. 압살롬은 교만하여 자기 아버지 왕좌를 빼앗으려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왕이 될 때에 ‘나는 부족하고, 어린아이와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압살롬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솔로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세요. 우리가 겸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靈權을 주시지만 우리가 교만하면 주신 영권도 빼앗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하셨습니다. 늘 겸손히 자기를 꺾고 순복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10절을 보세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겸손과 순종의 사람이 되려면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절 하반 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만 쫓아내도 우리의 삶은 천국으로 변합니다. 우리를 교묘하게 미혹하는 원수 마귀를 대적할 때 우리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어떻게 대적해야 합니까? 

엡6:10-11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했습니다. 

믿음의 방패, 의의 흉배, 진리의 허리띠, 그리고 진리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갖고 살면 마귀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원수로 만들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 중에 실상은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을 보세요. 엘리가 하나님에게 무관심할 때 그 가정과 나라에 어려움이 왔습니다. 아무리 성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적 감각이 무뎌지면 그게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경고 사인을 보냅니다. 

두 아들이 범죄를 합니다. 그래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결국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비보를 들은 엘리는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그의 며느리는 해산하다가 그 소식을 들고 ‘이가봇’이라고 외치며 죽어갑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다른 것이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 멀리하는 것이 불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한 사무엘을 보세요. 그는 엘리 제사장 밑에서 성장했으면서도 늘 하나님과 가까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 입의 말 한마디로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73:28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1)말씀을 가까이 하면 됩니다. 2)기도를 많이 하면 됩니다. 그리고 4)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가까이 하시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보세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교회를 나오는 것이 그렇게 부담이 됩니까? 왜 기도를 하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듭니까? 왜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도 엄청난 은혜가 임하게 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죄를 해결해야 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겸손과 순종이 함께 하는 사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늘 하나님과 가까이 살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원하는 바는 원수가 아닌 친구요. 원수가 아닌 동지입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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