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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시 33:1~3, 18~32)

흔히 교회에 나와서 믿음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굉장하신 하나님이신데 굉장한 일을 해야 기뻐하시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굉장하십니다. 상상할 수 없고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높고 위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나오는 그 자세로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굉장한 것을 기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힘들고 어렵게 해야지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건 복음이 아니지요.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나옵니다. 이 분은 아람나라의 장군이었습니다. 참모총장, 국방부장관을 하신 분이에요. 이 분이 문둥병이 걸려서 병을 고치려고 해도 안 되고 어떤 방법으로도 낫지를 않았는데, 자기 집안에 있는 몸종중에 유대인이었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나아만에게 ‘이렇게 고생하시지 말고 우리나라에 가시면 하나님의 종이 있는데 거기 가면 나을 수 있습니다. 엘리사라는 선지자에게 한 번 가보십시오.’ 그래서 이 아람나라 왕이 친서를 써서 보냅니다.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많은 보화를 싣고 약대에다 온갖 보물을 가지고 많은 군대를 동원해서 찾아왔습니다. ‘좀 고쳐주세요. 문둥병을 낫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엘리사가 말하기를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으세요’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가만히 요단강을 보더니만 낙심을 하는 겁니다. 내가 무슨 이런 강에 목욕하러 왔느냐고, 굉장한 어떤 약을 처방을 하든지 굉장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할 줄 알았지 무슨 이런 이따위 강에다가 목욕하러 온 줄 아느냐고, 막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겠다며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밑에 있던 종이 말합니다. ‘아이 왜 그러십니까? 한 번 순종해 보세요. 어렵게 온 걸 말하면 더 힘들지 않습니까? 산에 천 번을 다녀오세요, 태산 같은 황금을 드리세요,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쉬운 것이니까 한 번 하세요.’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백배나 더 큰 강이 있는데 다메섹강, 아마나강, 바르발강이 있는데 했지만 그래도 시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마침 이번에 이스라엘에 가서 늘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레바논하고 시리아지역을 거쳐서 이스라엘로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 강이 있는 겁니다. 나아만이 말했던 그 레바논 강과 아마나강을 제가 보았습니다. 이 강이 레바논 산맥에서 시작하는 큰물이 흐르는 강이니, 요단강 이 골목에 있는 도랑물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이 그 강하고 비교를 하는 겁니다. 

이 분은 강이 크고 굉장해야 은혜를 받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니까,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낫는 것이지 강이 커야 은혜를 받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물고기일 것 같으면 강이 커야 좋겠죠. 하지만 강이 크면 고기야 클 수 있겠지만, 강의 크기와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는 다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서 크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복을 받는 것이지, 물고기와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동물 같으면 산이 깊고 높으면 동물한테는 깊고 높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산이 높은 것과 물이 깊은 것 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언덕에서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믿음의 산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은혜로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이지 산이 높거나 강이 커서 기적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은 언제나 육적으로 굉장해야 거기에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장엄한 일을 해야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이 강이나 저 강이나 하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무슨 신분에 관계없이 은혜를,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은혜 받고 아무리 중한 짐도 벗을 수 있고 아무리 무서운 질병도 나을 수 있고 아무리 저주와 어려움도 하나님은 넉넉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적인 일을 가지고 평가를 해서, ‘아이고 나는 어떻게 이런 것 가지고 사냐!, 이게 무슨 소용이 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도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지 않았습니까? 홍해도 지팡이만으로 가르시는 하나님이신데, 그걸 하나만 들어도 만군의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우리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물맷돌로 골리앗을 이겼고, 다윗은 수금으로 노래 부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니까 마귀가 물러가고, 사울 왕이 불치의 병으로 고생했을 때 다윗의 노래를 통해서 마귀가 물러가지 않았습니까? 요사이는 음악으로 치료하는 것이 현대의학으로 굉장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게 이미 옛날에 사무엘서에 나오지 않습니까? 찬송하면 마귀가 물러갑니다. 

이번에 마침 이스라엘  구약학 교수인 장교수님하고 같이 갔는데, 이 분이 시편을 연구해서 그것가지고 박사학위를 받으셨답니다. 자기가 시편을 연구하면서 너무 많은 걸 깨달았다고 하시면서,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말씀은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지만 찬송은 하나님도 기쁘게 하고, 사람도 기쁘게 하고, 자기도 기쁘고 모두가 좋은 것이 찬양이라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늘 찬양하고 목동으로 있으면서도 늘 찬양했던, 그런 감동적인 찬송이 가득차 있는 것이 시편이지 않습니까? 다윗은 왕으로 있을 때에도, 성가대원, 항상 찬송하는 사람만 4천명을 세워 놓았습니다. 나는 이번에 장교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정말 성경에 역대상을 보니까 4천명이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찬양을 좋아하시는 겁니다. 찬양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내게도 은혜가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기도요, 찬양이요, 믿음이요, 예배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동물은 삶의 목적이 없지만, 인간의 삶의 목적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므로 행복하고 하나님이 함께하므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서도 안 되고 자기를 더 낫다고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나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위에만 굳게 서면 일생동안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오늘 찬송가에도 부르셨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힘이요 기쁨이 되셔서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신명기 6장 24절에 보면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요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실 것임이라 우리가 그의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 바로 그게 복입니다. 기독교는 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교인들은 복을 받으려고, 행복하려고, 성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삶만 살아가면 이런건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떡이나 찰떡이나 똑같은 말이듯이, 물이나 워터나 똑같은 말이듯이, 생수나 물이나 다 똑같은 말이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복이나 다 똑같은 말입니다. 잘 믿으면, 하나님을 잘 믿으면 저절로 복이 안 올 수가 없는 겁니다. 잘 믿는 것이 축복이고, 하나님을 잘 믿는 그게 의로움입니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 물론 없지만, 설령 의롭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죄인이 되고 악에 빠지는 겁니다. 사람이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에 밀려오는 것이고 언제 악인이 되는 것,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남을 죽이는 사람이 제일 착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참다가 순진하게 생각하다가 술 먹고 욱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꼭 악해가지고 사람을 죽이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꼭 악해가지고 나쁜 일 하는지 아십니까? 선한 사람도 유혹을 받고 하다 보면 사기꾼에 휘말려서 사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한 순간에 넘어지고 타락하는 겁니다. 가족 간에도 어떻게 하다가 가정불화가 일어나서 한 순간에 밀다보니까 그 아내가 모퉁이에 맞아 귀에 부딪혀가지고 죽는 일도 있는 겁니다. 사람이 꼭 악한 사람만이 이 세상에 악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한 순간에 악에 빠져서 악의 길에 들어서서 악한 일을 행하게 되는 거고 넘어지게 되는 겁니다. 

알코올중독자가 태어나면서부터 중독자가 어디 있습니까? 태어나서부터 나쁜 사람이, 사기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모두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악한 세상에, 악에 노출되어 악에게 이용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 내가 비록 악한 생각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겁니다. 

우리도 낙심할 수 있고 화를 낼 수 있지만, ‘얘야, 김집사야 왜 화를 내냐 하고 성령이 감동하잖아요. 싸우려고 해도 얘야 너 은혜 받고 예배드리고 왜 그러느냐’ 성령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지 않습니까!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낙심될 때, ‘너 왜 그리 낙심하냐!’ 그래서 우리가 낙심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도 다 같이 넘어질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이 있어도 성령은 때마다 우리를 도와주셔서 힘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한 순간도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뭐 내 힘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하나님을 꼭 경외하는 게 필요하냐? 그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절대적입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냥 살기만 하면 또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믿음이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과 내 영혼의 축복과 내 영생과 죄 사함과 자유와 내 삶의 충만함을 위해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아래 우리는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여러 지도자를 뵙는 중에 특별히 200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아우만 교수님을, 히브리대학 교수인데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서 얼마나 이 분이 순진하게 웃는지, 인터뷰할 때 웃는 이 사진을 좀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어린아이같이 웃는 분을 처음 보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고 이런 노벨상까지 받은 분이고, 어깨에 힘을 당당하게 줄 수 있는 분이고, 나같은 사람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을 분이지만 만나서 너무도 기뻐하는 겁니다. 

자기는 하루에 꼭 두 시간씩,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게 있는데 그게 성경 외에 탈무드를 읽는 겁니다, 저는 이 탈무드가 우리나라에 번역이 된 것이 그냥 유치해서 안 읽었는데 탈무드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 분 이야기가 성경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게 탈무드라고 하고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열심히 읽는답니다. 자기는 50년을 탈무드를 하루도 안 읽은 날이 없이, 매일 2시간씩 읽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겁니다. 

이 탈무드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걸 한 번 다 읽으려면 11년 7개월을 읽어야 이 탈무드 전체를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안식일마다 하루 종일 자기 가족들하고 읽는답니다. 매일 기도생활을 하고...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무식한 사람인 줄 아십니까? 유대인들은 이렇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지, 살아가는데 전심전력하지 않습니다. 돈 벌려는데 전심전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전심전력합니다. 

제가 헤브론에도 가보니까, 많은 유대인들이 저녁이 되니까 저녁 기도시간에 할아버지가 애들 손자들 전부 손잡고 기도하러 올라오고 수많은 남자들이 와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모든 생활이 바로 그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생동안 박사학위를 받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이렇게 읽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늘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겁니다. 세계의 경제, 세계의 과학, 세계의 정치를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 시간이 있어서 예배드리고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기도를 꼭 할 필요가 뭐 있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이 믿음으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현대인들이, 하나님 없는 우리 마음들이 얼마나 공허합니까?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내 머리에 하나님의 말씀 지혜로 채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저들은 방황하지 않습니다. 세계에 유대인이 무슨 사기를 쳤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유대인이 껄렁껄렁하면서 해매는 걸 본 일이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사기꾼이 이글이글하고, 놀고먹는 놈팡이들이 이글이글하고, 엉뚱한 짓하고, 평생 술이나 먹고 술에 빠진 사람이 이글이글하고, 할 일 없이 놀면서 빈둥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박꾼이 수백만입니다. 도대체 무엇입니까? 온갖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외로워하고, 공허해하고, 뭐를 잡지 못해서 사람을 만나면 그저 남의 불평불만이나 하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없는 우리 마음은 일생을 살아도 고아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를 가져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기쁨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34편 9-10절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자도 늙은 사자는 힘이 없지만, 젊은 사자는 산속에서 왕이지 않습니까? 그런 젊은 사자는 혹시 굶주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굶주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능력 있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의 힘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득 채워서 이 세상을 승리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 곡식을 심어보면 신비합니다. 밭에 씨는 뿌려야 됩니다. 그러나 잡초는 뿌리지 않아도 납니다. 곡식을 밭에다 심어서 잡초를 뽑아내고, 곡식을 잘 가꾸어야지 곡식을 가꾸지 않고 뽑아내 버리면 어디서 나왔는지 잡초가 우거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이 잡초, 잡초는 기르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겁니다. 음란의 잡초, 한 순간에 우리를 덮을 수 있어요. 예배를 드리면서 모든 정욕과 교만과 음란과 불의와 욕심의 모든 잡초를 뽑아내 버리기를 바랍니다. 원망과 의심의 잡초를 뽑아내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프랑스 대통령인 사르코지라고 하는 분은 자기가 주례했던 아가씨를 신부가 예쁘니까 그걸 탐을 내서 기어이 결혼했던 사람하고 이혼하게 하고 자기하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주례를 아무데나 맡기면 안됩니다. 그게 잘못했다가는 자기 아내를 빼앗겨 버리는 겁니다. 주례는 순수하게 그 집을 축복해 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나서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기도 버리고.. 결혼해서 오래 사느냐? 정욕이 있는, 음란이 있는 사람은 오래 못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하고 살다가 얼마 안 있어서 또 버리고 이번에는 이태리의 유명한 모델, 이 사람은 옷을 또 잘 벗는 사람이랍니다. 그 사람이 또 좋아가지고 사르코지가 거기에 또 빠져가지고 대통령일은 시시하게 두고 온갖 노는 데만 돌아다니고 그런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득 채워야 어두움이 찾아오지 않는 겁니다. 온갖 세상의 나쁜 것들이 찾아와서 오늘 이 좋은 세상을 자꾸 낙심하고 자살하고 이러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잡초입니다. 예배드리면서 잡초를 뽑아내 버리기를 바랍니다. 예배드리면서 하늘의 것으로, 위의 것으로, 성령으로, 신령한 것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2편에 보면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마음에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세상 것이 좀 잘 되어도 그게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대단한 것은 아니거든요. 하나님같이 영원한 축복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되나 안 되나, 있으나 없으나 세상은 다 그게 그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 믿음위에 굳게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많이 배워도 천하에 요사이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고 좋은 학교들, 물론 좋은 학교가 좋지요. 그러나 천하에 없는 일류대학을 나와도 몇 년 만 지나면 다 무식해지고 요사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지성인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 적으로 뭐를 가져보세요. 몇 년 지나면 유행이 다 바뀝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저 끝까지 믿을 수 있는 분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기쁨이십니다. 나의 힘이십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에 장교수님이 가서 말씀한대로 찬송이 참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찬양은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예배에도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한번 보세요. 찬양은 여섯 번 나옵니다. 기도는 두세 번밖에 안 나옵니다. 설교는 한 번이지요. 찬양은 주기도문 찬양이 있고, 그 다음에는 만복의 근원을 부릅니다. 그 다음에 또 찬양하지요. 성가대가 찬양하지요. 중창단 있지요. 그 다음에 설교 끝나고 찬양이 있지요. 마지막에 일어나서 또 찬양 있지요. 찬양이 얼마나 많습니까?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내게도 기쁨이 되고 듣는 사람도 기쁘고 늘 찬양하면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겁니다. 항상 찬양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찬미가 항상 있으리라 너희는 나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자 우리 함께 그 이름 높여드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나를 들어주시고 온갖 무서움 가운데서 나를 건져주셨네 우러러 주님을 보라 기꺼우리라 우러러 주님을 보라 기꺼우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할렐루야 오 할렐루야 오 할렐루야 주 이름 찬양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할렐루야♬ 

하나님만이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을 내 영혼에 가득 가질 때 이것이 힘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 세상을 살리는 힘, 가정을 살리는 힘, 행복의 힘, 지혜의 힘, 온갖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겁니다.

노벨상을 받은 분이 286명인데, 그 중 예수 믿는 사람이 73%입니다. 이건 미국의 과학 엘리트, 미국의 노벨 수상자들의 책에 나온 통계예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총명하잖아요. 지혜롭잖아요. 모든 분야에, 음악도 뛰어나고 과학도 뛰어나고 경제 분야도 다 뛰어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유대인이 19%,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 92%가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세계의 모든 위대한 문학가 솔제니친, 윈스턴 처칠, 슈바이처, 루즈벨트, 만델라, 마틴 루터 킹, 할것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화롭게 해야 인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고, 너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합니다. 사랑도 하나님이 없는 사랑은 너도 손해고, 나도 손해고, 받아도 손해고, 주어도 손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랑이어야 사랑이 살아나고 기쁨이 살아나고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유대인의 1/10이라도 따라가려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일에 얼마나 전심전력하는지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나는 유대인의 1/100도 따라올 수 없구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저렇게도 잘 할 수 있을까? 정성을 다 하는 겁니다. 세상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모두 바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여 영원한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미련하게 생각하고 쓴 웃음으로 비웃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쓰임 받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 큰 은혜, 큰 기쁨, 큰 축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때입니까? 봄이 돌아와서 너무 좋은 때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집에서는 집에서 대로, 들에서는 들에서 대로 항상 하루를 새롭게 살아갑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늘 감사와 감격으로 충만합니다. 

여러분, 봄 냄새를 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들에서 모든 풀들이 자라나고 솟아나는 그 소리를 듣습니까?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에 어쩔 줄 모르고 감격하십니까? 봄에 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봄비가 ‘속속속속’ 내리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밤하늘을 올려다보십시오. 한 번 쳐다보십시오. 얼마나 상큼하고 얼마나 산뜻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이 동산들을 보면서 여러분, 어떻습니까?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꽃 중의 꽃 진달래, 그 붉은색 하나하나의 하나님의 솜씨를 보셨습니까? 노란 꽃, 개나리를 보셨습니까? 너무나 아름다운 그 색깔이, 사람이 만든 이 세상의 어디에 가서 그런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까? 목련 꽃, 배 밭, 사과 밭, 들에 가서 보십시오. 봄나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향기롭습니까? 된장에다가 파뿌리를 그대로 통째로 넣어서 한 번 먹어보십시오.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이 계절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면서 늘 찬송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좋은 때인데도 문을 닫아 놓고, 기쁨을 모르고, 벚꽃을 내일 보러 가자고 하면 하필 그 전날 대판 싸움이 일어나서 그냥 봄을 통째로 보내는 겁니다. 술이 취해서 완전히 깨부수고 이 좋은 철에 아이들과 함께 사진하나 못 찍고 봄을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자연도 있고 하나님이 있어야 인생도 있고 가정도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자녀가 볼 때 소중하고 부모가 볼 때 소중한 겁니다. 

부모를 모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 요사이 왜 부모를 갖다 버리느냐? 왜 학대하느냐? 능력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부모 하나만 모셨으니까 모실 수 있는데, 요사이는 온갖 일을 하려고 하니 모두 피곤해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대화도 안 하려고 하고 모든 걸 안 하려고 해요. 애를 아예 안 낳으려고 하고, 안 살려고 합니다. 왜 그래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모든 능력이 살아나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만이 내 생각 속에, 내 마음 속에, 내 의지 속에,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겁니다. 

저는 산골 사람입니다. 내 주변을 돌아보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항상 내가 기쁨으로 살 수 있었고 감사하며 웃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늘 노래했습니다. 내 입에 노래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는 악기를 가져다가, 풀잎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도 수백 가지 할 수 있습니다. 잎마다 노래를 다 만들 수 있습니다. 풀피리 이거는 버드나무를 딱 빼가지고 불면 그것도 네 개, 다섯 개를 가지고 ‘펌버러범범’ 하면서 불면 하모니카가 없어도 하모니카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악기가 되고, 무엇이든지 천국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인생도 가정도 살아납니다.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구가 적어도 세계를 잡고 있습니다. 이번에 파리에서 온 친구들이 말하는데, 파리도 유대인들이 다 잡고 있답니다. 그 고급화장품들 샤넬이나 유명한 루이비통인지 하는 것도 유대인들이 다 잡고 있답니다. 세계의 패션, 세계의 보화들, 아르헨티나에도, 미국에도 유대인들이 다 잡고 있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그 사람들이 머리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머리를 따라 갈 수가 없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슴, 여러분의 머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있어야 만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하나님 없이 다 채워졌다 한들 뭐예요! 별 것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2003년 10월 7일 아침,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날은 토론토에서 집회를 마치고 그 교회에서 저에게, 토론토에서 한 시간만 오면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습니다. 버팔로에 있는 호텔에다 수고했다고 제일 좋은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나이아가라는 캐나다 쪽에서 보면 전부가 다 보입니다. 미국 쪽에서 보면 30-40% 정도 밖에 안 보입니다. 그 폭포위에다 세계 제일의 호텔을 지었습니다. 폭포가 바로 내려다보이게 지은 겁니다. 

그날 밤에 들어가서 자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려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얼마나 장엄한 지 그냥 팍 팍 치는데 너무 장엄한 겁니다. 폭포를 보고 황홀에 빠져 있는 순간에 저 동쪽으로부터 마침 태양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 끝없는 넓은 곳에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이미 붉게 물이 드는 겁니다. 무지개 같은 붉은 온갖 색깔들이 하늘을 쫙 덮더니 드디어 이글이글하는 태양이, 저는 그렇게 불이 타오르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막 불길이 이글이글 하면서 살아 있는 불덩어리들이 쑤욱 올라오는 겁니다. 그 장엄한 그 태양을 보면서 저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억 만 분의 일도 비교할 수 없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에 있는 이 모든 것 어느 것을 비교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무엇으로 비교하겠느냐 말입니다. 

태양도 저렇게 대단하거든 하나님 본체는 얼마나 더 위대하겠느냐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보시란 말입니다. 태양과 비교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태양을 비교할 수 없듯이 태양과 하나님을 또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믿으며 감사하며 그를 경외하는 일에 일생을 언제나 어디서나 어디 가든지 이 하나 위에 중심에 굳게 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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