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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 (고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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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 (고전 1:1~3)
 
오늘은 이제 고린도전후서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가장 심각한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의 모습이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땅, 흙바닥에 이마를 대시고 또 땀방울이 핏방울과 같이 되셨다는 그런 심각한 기도를 드리셨는데 그 기도의 제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이 십자가 아니고도 인간 구원의 길은 하나님에게 있습니까?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런 갈등 속에서의 겟세마네 기도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큰 문제,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이것이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또, 이런 문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똑같은 문제로 다가오고 개인적 신앙에도 똑같이 부딪힙니다. 예를 들어 내가 결혼하려고 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을 안 하신단 말입니다. 그런 것이 고민이 될 때가 많고, 어떤 때는 사업을 하려고 하고, 또 이민을 가려고 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 삶에 부딪히는 문제를 놓고 고민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실히 알면 아무 상관없잖아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이상의 고민이 필요 없고 내가 하면 되는데 잘 모른단 말입니다. 그랬을 때 오는 고민이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바울 시대에도 마찬가지이고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고민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는 무슨 책이냐?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급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취급해야 되느냐 하는 그런 문제에 답변하기 위해서 기록된 성경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 고린도후서를 다 하고 나면 아주 유익한 신앙생활에 도움을 얻게 됩니다. 

바울 선생은 이제 사도행전 18장에 가서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내려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사도행전에 나오잖아요? 거기 아덴을 떠나서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어서 고린도교회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곳에 가서 사람을 만나지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그 사람을 만나지요? 이 사람들을 왜 만났느냐 하면 “업이 같은지라.”라고 했습니다. 

천막제조업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본래 로마에 살던 사람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데 로마에서 유대인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 역사에 유대인 박해 사건은 그렇게 많습니다. 유럽에서는 유대인 배척 운동이 일어나서 지금도 프랑스에서 가끔 “유대인은 프랑스를 떠나라.” 그런 데모를 하며 난리를 치고 그러잖아요? 옛날 러시아에서 는 3일 안으로 러시아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다 떠나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간 곳이 미국 아닙니까? 그래서 미국에 그렇게 유대인이 많아졌잖아요? 또, 지난해에는 러시아에서 중국 사람들 20만 명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쫓겨났습니다. 이런 문제는 이민을 산다든지 나그네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인구의 5~7퍼센트 사이를 중국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돈 80퍼센트는 다 그 중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0년에 한 번씩 중국인 추방 폭동이 일어나서 막 불 지르고 때려 부수는 겁니다. 숫자적으로도 열세이니 쫓겨나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 일은 세상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로마에서 잘 살고 있다가 유대인이라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와서 지금 천막 제조업을 하고 있는데 바울이 그 곳에 가서 자기가 그 기술이 있으니까 취직을 한 겁니다. 바울 선생은 자기가 일해서 돈 벌어 전도하는 자비량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겁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의 만남으로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이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고린도 도시는 항구 도시입니다. 외래 선박의 출입이 빈번하기 때문에 외래 상품의 수입과 수출이 많은 곳이며 또, 밀수업자들이 수없이 들끓던 약간 변칙적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 때문에 고린도는 그 당시에 첫째로 돈이 많았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성했습니다. 잡다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로마 사람, 희랍 사람, 유태인들이 섞여서 사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장사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인종적으로 다인종 문화를 이루고 경제적으로는 아주 풍성했습니다. 

옛날에는 인구가 10만 명만 넘어가도 대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항구 도시는 인구가 75만이었습니다. 또한 굉장히 흥청거리는 도시로 유흥업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아주 부패한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교육 수준은 세계에서 제일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고린도 지방에서 철학자, 수사학자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 

또, 이런 유흥도시는 죄도 많지만 따라서 거룩한 것도 많게 마련입니다. 세계 어디나 대형교회들은 다 제일 큰 도시에 있잖아요? 신전이 아주 많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대의 종교 유산 중 아프로디테 신전, 세라피스 신전 이것이 세계에서 제일 큰 신전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부서져서 기둥만 남고 그런 것을 우리가 보러가잖아요? 벌써 그 당시 바울 시대에 그런 세계적 대형 신전들이 많이 건축되어 있는 그런 종교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의 뭄미우스 왕이 기원전 146년에 도시를 멸망시켰었는데 100년이 지난 다음에 줄리어스 시저가 재건한 그런 도시입니다. 이러한 도시에 지금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자 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이 일하면서 돈 벌고 생활 하면서 도시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있었습니다.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1년 6개월 만에 고린도 교회를 잘 세우고 교인이 많아지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선생은 그 정도 되었으면 그곳을 떠납니다. 그래서 에베소로 가지요? 이때 같이 있던 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함께 에베소에 따라가서 거기서 3년 동안 열심히 전도해서 에베소 교회를 세웠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전도해서 세운 교회가 바울 지도자가 떠난 후에 수습하기 어려울 만큼 어지러운 신앙 갈등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에게 신자들로부터 소식이 들려온단 말입니다.

 “바울 선생님이 떠난 다음에 우리 고린도 교회에 이런, 이런 문제가 생겨서 지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바울 선생은 자기가 세운 교회가 그렇게 되었다니까 마음이 아파서 거기에 대해 긴 장문의 편지를 쓴 것이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라는 성경 기록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먼저 이 고린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이 고린도 성경에 잘 나옵니다. 무슨 특성이냐? 헬라 문화에 철학적, 사변적 경향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뭐든지 아주 차원 높은 철학의 사변으로 무엇이든지 해석하는 그런 높은 지식수준을 자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실제적 윤리 도덕 생활은 등한시 하는 이런 아이러니컬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풍조가 아주 만연해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소피스트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이 사람들은 말쟁이입니다. 사람들을 놓고 잘난 체 하는 것을 가장 기쁨으로 삼는 사람들인데 이 말을 사변적으로 막 꾸며서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뭐가 뭔지 잘 모를 만큼 그런 말을 해서 사람들 사이에 “저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지식이 많다”는 인정을 받는 것을 가장 재미로 생각하는 문화 풍조가 고린도에 생겼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누구나 다 지혜를 자랑으로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그런 풍조가 만연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들어가기 참 힘이 든 곳이었습니다. 

사변적 사고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고린도전서에 보면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바울이 많이 하잖아요? 왜 그랬느냐 하면 그 사람들이 안 믿는단 말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가지고 진리라고 전하고 있으니 우리 고린도 사람을 뭐로 보는 거냐? 세계적인 철학의 도시, 종교의 도시에 와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 우리는 이다음에 하늘로 올라간다 하니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이런 경향이 생겼단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이 고린도전후서에 앞으로 많이 나오지만 “헬라인은 지혜를 찾고….” 그게 다 그런 말입니다. 그 다음에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 생각이 개인주의입니다. 논리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개인주의적 논리적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의논해서 합의하는 것을 안 합니다. 자기 논리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것이 진리다.”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그 안에는 분파, 분열 이런 요소가 수없이 생겨나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이 헬라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인 것이 우리 역사에서도 잘 증명되고 있으며 우수한 재능은 화합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고 개인의 지혜자랑에 목적이 되어 있는 바람직하지 아니한 풍토의 도시가 이 고린도입니다. 누구 이야기도 잘 안 듣습니다. 자기가 더 똑똑하니까요. 이러한 배경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각기 주장하는 많은 문제점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할수록 교회가 목회하는 방법이나 내용도 점차적으로 달라지는데 제가 어렸을 때, 10대 후반 그 시절에 은혜 받는 부흥회는 수십 리를 걸어서도 다 쫓아다녔습니다. 불이 붙었는데 어떡합니까? 그런데 부흥회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듣기 위해 부흥사를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면 기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막 화를 내는 겁니다. “너 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러니?” 그래도 노여움이나 그런 게 없었습니다. 또, 조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면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어나서 벌 서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다 앉아있는데 일어나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은 욕하는 목사는 없어졌지요? 그때는 욕도 얼마나 했는지 아까 김 목사님이 부르셨던 
“♪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이 찬송을 부르는데 남자들은 이렇게 부르라는 겁니다. 
“♪ 나 같은 잡놈이 용서함 받아서♬” 

그렇게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그렇게 했습니다. 여자들은 또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 나 같은 쌍년이 용서함 받아서♬” 그렇게 막 시키는 겁니다. 

그래도 다 “아멘”하면서 재미나게 예배드렸단 말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 나잖아요? 문화의 수준과 지식의 수준이 다 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지방은 세계에서 제일 최고의 수준인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복음이 들어가는데 철학적으로 헬라 철학이니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소피스트들이 “누구 이름 말하는 거야? 바울? 이게 무슨 엉뚱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막 배척하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 들어온 교인들이 그런대로 신앙생활 해나가는데 저마다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고린도 교회는 적어도 일곱 내지 여덟 개의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 문제가 뭐냐 하면 파벌의 문제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오는데 파벌의 문제가 네 파가 생겼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 이렇게 네 파가 생겼습니다. 교리적 분파가 생겼습니다. 이 지식인에게 어떤 논리가 정립이 되었을 때는 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설득 안 당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는 바울파다. 바울이 옳다.” “아볼로파.” “게바, 베드로파다.” “그런 거 다 소용없다. 우리는 예수파다.” 파를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따로따로 모이는 겁니다. 

그래서 제3국에 전도하는 거 참 재미나고 효과도 많고 그런데 이런 도시는 참 힘듭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선교사들이 평가하는 가장 전도가 안 되는 어려운 선교지가 어디냐? 어디인거 같습니까? 일본입니다. 일본 선교사가 참 고생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기독교 퍼센트가 낮은 겁니다. 

그 다음에는 결혼의 문제가 교회 안에서 큰 문제로 발생했습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좋으냐, 안하는 것이 좋으냐? 또, 불신자와의 결혼은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결혼하고 사는데 지금 남편이 안 믿고 한쪽은 부인이 안 믿고 그러는데 한 사람만 믿을 경우는 끝까지 살아야 되느냐? 이혼을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렇잖아요? 그 다음에 그 곳은 신전이 많다고 그랬지요? 아프로디테, 이시스, 세라피스 세계적인 신전이 있습니다. 이 신전에는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리면 소를 잡아다 드립니다. 통째로 놓고 제사 드립니다. 그러면 그 제물을 버릴 수가 없잖아요? 또 다 그 자리에서 먹을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시장에 갖다가 그 제물을 팔았습니다. 

목사님 여러분과 스페인에 갔었는데, 저는 그 지역 목회자들에게 세미나 강의를 해야 됐습니다. 그 날 거리에는 “오랫동안 안하던 투우 경기를 오늘 저녁에 하는데 투우사 5명과 소 다섯 마리가 한다. 최고의 이름 있는 투우사들이 나오니 구경하라.” 광고가 크게 난겁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들이 “스페인까지 와서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다. 투우 경기는 평생 한 번도 못 봤는데 스페인이 제일 자랑하는 투우 경기니 가보자.” 

스페인의 처녀들은 결혼 상대 1호가 투우사입니다. 돈을 많이 벌거든요? 그러니까 “이곳 선교사님이 우리 명수대로 투우 경기 티켓을 이미 예약을 해놨으니 구경 가자.” 그래서 신난다 하며 다 가는데 저는 세미나 강사래서 못가는 겁니다. 저도 한번 구경 가고 싶었는데 세미나 때문에 못보고 다른 사람은 다 봤습니다. 

그런데 그날 거기서 투우사에게 죽은 다섯 마리의 소를 어떻게 하느냐? 그 자리에서 금방 처리해서 구경 왔던 사람들이 좀 싼 값에 고기를 사갑니다. 그래서 먹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신전에 바친 모든 제물을 시장에 조금 싸게 팔았단 말입니다. 다를 게 없고 조금 싸니까 사람들에게 우상의 제물이 인기가 있습니다. 싼 값에 쇠고기를 사가니까요. 그래서 잘 팔립니다. 그날도 소 다섯 마리 누가 사갔는지도 모르게 금방 사갔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우상한테 바쳐진 제물은 먹어야 되느냐 안 먹어야 되느냐? 문제가 되잖아요? 

그 다음에 성령의 은사라고 하며 고린도서에 바울이 은사 문제를 들고 나오잖아요? 어떤 것이 제일 좋은 은사이며 또 어떤 것은 우리가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냐? 이게 또 큰 문제가 되었단 말입니다. 은사, 계시 이런 것은 참 해석하기가 힘듭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때 출마했던 사람 중 한분이 예수 잘 믿는 기독교계의 한 지도자급에 계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과 같은 측근에 있는 사람이 제 사무실에 오셨습니다.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기독교 지도자급이신 그분이 무슨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서 그러시는 겁니까?” 
자기도 그러지 마시라고 뭐 하러 대통령에 출마하시는 거냐고 그만 두시라고 말렸다는 겁니다.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당신이 측근에 있으면서 왜 그렇게 말리지도 못하는 겁니까? 이게 대체 뭡니까? 창피합니다.” 제가 막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자기도 그렇게 말했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계시 받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주셨다니 어떡합니까? 그래서 자기도 더 이상 말을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안 되었거든요? 그러면 그 계시는 뭐냔 말입니다. 이런 문제가 옵니다. 

아니, 뜬금없이 별안간 어떤 처녀가 나타나서 
“계시 받았습니다.” 
“무슨 계시오?” 
“당신과 결혼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게 계시냐 말입니다. 

자기 희망사항을 계시로 연결하면 그게 계시입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문제는 항상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나는 선교사입니다.” 어떤 여자가 사무실에 약속도 없이 불쑥 들어왔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돈 20만 불을 주십시오.” 
“20만 불을 달라니요?” 
“오늘 새벽기도 때 하나님이 나한테 계시를 주셨는데 이 목사에게 가면 20만 불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이 엉뚱하게 온 겁니다. 그러면 그게 계시입니까? 제가 실제로 당한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답변할 길이 없잖아요? 
“나도 계시 받았습니다. 그 여자가 오면 당장 쫓아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이런 문제가 생긴 거란 말입니다. 그 다음에 특별히 이 고린도전후서는 부활의 문제를 많이 다뤘잖아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우리가 장례식 때마다 읽는 것이 있습니다. 육체적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 육체 부활! 영혼은 하나님께 간다고 하자. 우리 육체가 썩어서 다 무덤에 들어가서 없어졌는데 육체의 부활은 있느냐 없느냐? 믿기가 어려웠잖아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의 문화가 철학적이고 사변적 아닙니까? “없다. 그건 영이 하나님께 간다는 말이지 신체적 부활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파가 생겼단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답변을 해야 하잖아요? 도시에 유흥가가 많다고 그랬잖아요? 돈이 많고 유흥업소가 많으니 소송사건, 간음사건 이런 부도덕의 문제는 우리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온통 부도덕의 사회가 만연했는데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그 다음에는 주님의 성찬, 만찬에 참여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찬식 하면 썰어서 다 똑같이 하잖아요? 

옛날에는 성찬 준비를 자기가 해왔습니다.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준비해왔습니다. “다 같이 준비해온 성찬을 이제부터 나누겠습니다.” 라고 하면 그 준비해온 것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고급 빵을 크게, 많이 가져오고 포도주도 최고 좋은 것으로 준비합니다. 그래서 성찬식이 배부르게 먹는 겁니다. 또, 포도주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취하는 겁니다. 빵도 조금씩 먹는 것이 아니라 아주 큰 것을 계속 뜯어먹습니다. 저도 이 뜯어먹는 성찬식을 여러 번 했습니다. 

초대교회처럼 이 앞에 잔과 큰 빵을 갖다 놓고 “돌아가면서 자기 맘대로 빵을 뜯어서 포도주에 찍어서 먹으면서 하자.” 그랬더니 모자라는 겁니다. 많이 먹으면 축복받는 줄로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의미적으로 하는 것을 큼지막하게 떼어서 배부르게 먹는 겁니다. 장난인지 경건하지 못하게 그렇게 먹는 청년들이 많이 생긴단 말입니다. 이런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옛날에 생겼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준비 못해오는 사람이 있고 준비한 사람은 실컷 먹고 배부르고 이런 경건치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바울 선생이 답변하는 겁니다.

본서의 가치는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교회 공동체라 할지라도 교회는 언제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그 문제를 어떻게 훌륭하게 지혜롭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신학과 신앙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문제가 되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 한국 교회에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노회에서 항의가 올라왔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집사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전매청 직원이랍니다. 전매청이 뭔지 아세요? 한국 교회가 담배를 안 피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전매청 직원이 집사가 되었느냐? 이것이 고소 사건으로 올라왔다니까요. 

고린도 교회가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래서 그를 집사 시킨 담임 목사가 답변을 하기를 “그러면 무기 공장 다니는 사람은 집사 되느냐? 미국은 핵무기가 엄청난데 그런 곳에 직장을 두둔 사람은 교회 청지기 못하느냐? 전쟁은 악인데 군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교회 집사 못하느냐?” 이렇게 번져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슈퍼마켓을 생각해보자. 거기에 술도 있고 담배도 다 있다. 그런 사람은 교회 직원이 안 되느냐?” 문제가 끝도 없이 나가지요? 

LA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리코스트’라는 게 그렇게 많습니다. 잡다한 물건을 파는데 술 종류도 거기다 놓고 파는데 리코스트 주인을 교회에서 제직자로 임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 저도 거기 토론에 나갔던 사람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온단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런 문제를 만난 겁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도 개고기를 못 먹는데 왜 못 먹느냐 하면 우리 교회 목사님이 먹지 말라고 했단 말입니다. “목 메달아 죽인 것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먹느냐?” 라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난 절대로 평생 그것을 안 먹겠습니다.’ 한 것이 평생 내 머리에 입력이 되어서 지금도 그것을 먹으려고 하면 괜히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거 같아서 못 먹는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에 가니까 노회를 모여서 목사님, 장로님만 수백 명인데 저녁 식사로 개고기가 나오니까 나만 굶었단 말입니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이 여기서 수십 년 살다가 결혼을 했는데 잘한 것인가, 잘못한 것인가? 그것도 문제란 말입니다. “우리 집은 유교 가정이라 제사를 지내는데 나만 교회 다니는데 제사 지낸 음식 먹어야 됩니까, 안 먹어야 됩니까?” 이런 문제도 있고,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흑백 논리를 적용해서 이건 된다, 안 된다 할 수가 없는 하나의 복합 문화 속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단 말입니다. 이런 문제는 옛날 고린도교회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목회하다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저한테 그렇게 상담하신 분들은 용서하시고 들으세요. “목사님, 내가 영구눈썹을 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이 죄입니까?”, “나는 성형수술을 좀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본래 주신 것을 인위적으로 뜯어고치는 이것이 걸림이 되는데 해도 괜찮겠습니까?” 안 걸리는 게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마음에 꺼림칙하면 안 되잖아요? 자유함을 얻고 뭐든지 해야지요. 

광주 민주 항쟁 때 군사령관이 밤중에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한 밤중에 “목사님, 나 지금 목사님 안 만나면 제 인생이 큰일 납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군 통솔자입니다. 군대 대장이란 말입니다. “목사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당장 군대를 인솔하고 광주로 내려가라고 명령이 나에게 떨어졌습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가면 총 쏘고 사람 죽고 진압해야 됩니다. 목사님! 가야 되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군복을 벗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목사 되어 보세요.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다른 것은 말 안 듣다가 그런 것은 또 말 잘 듣습니다. 운동선수이고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자기 운동 팀에 그 사람이 안 나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찾아왔습니다. 기도해 달라고 왔습니다. “목사님! 주일날 경기합니다. 나가야 되겠습니까, 안 나가야 되겠습니까? 국가가 하는 일이라 어떻게 경기 날짜를 내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실업 축구팀의 감독입니다. “목사님, 주일날 게임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나가지 말라고 하면 안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감독직 떨어지는데?” 답변하기 힘듭니다. 이게 우리 현상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 문제는 문제도 아닙니다. 너무나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풀어나가느냐 이게 아주 힘든 문제이죠? 

이렇게 고린도 서론을 두고서 “이런 문제는 항상 있다. 최대 공약수의 신앙적 영적인 길을 찾아가는데 어떤 때는 도저히 불가항력적 사색부득한 일이 인간들에게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이렇게 처리하자.” 옛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미국에서 배타고 여기 오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노회에서 “여보시요! 당신 배타고 여기 오는데 며칠 걸렸소?” “예, 한 달 걸렸습니다.” “아니, 그러면 목사가 한 달 동안 교회 안 나갔구먼!” “그러면 태평양 바다에서 어떡하란 말이요?” 그게 또 문제가 되었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 안 걸리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이제 고린도서를 공부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지혜롭게 잘 판단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저에게도 영적 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도 영적 지혜를 주셔서 신앙생활에 유익한 고린도서 공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옛날 성장했으나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 교회 모습을 저희들이 오늘부터 조명해보면서 이 다양화된 복합 문화 속에서 신앙의 지혜를 찾고자 합니다. 성령님이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셔서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저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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