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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날 밤에... (행 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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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에... (행 23:10~11)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994년 11월 14일 저녁, 땅거미가 지고 짙은 어둠이 몰려올 무렵 성경번역 선교사인 척 월튼(Chuck Walton)은 남부 필리핀 빵우따란(Pangutaran)섬의 자택에 침입한 열 두 명의 무장 괴한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눈을 가리운 채 쾌속정에 실려 네 시간 남짓 끌려가는 동안, 그리고 깊은 정글 속 비좁은 철창에 갖혀 지낸 23일 동안 그의 마음은 줄곧 시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8-10)

월튼 선교사는 자신이 살아서 돌아갈 것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테러범들이 선교사를 인질 삼아 몸 값을 요구할 때 그 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선교 단체들이 시행하고 있는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단의 총회 세계 선교회도 규약에 선교사가 납치되면 어떤 경우에도 인질 범들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규약이 있습니다. 왜냐면 일단 몸값을 지불하기 시작하면 도처의 선교사들을 붙잡아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일단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되면 끝내 순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 두 명의 무장 괴한에게 납치된 월튼 선교사는 자신에게 죽음이 아주 현실적으로 앞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81년 콜럼비아에서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어 끝내 순교하고 말았던 위클리프 선교회 소속 ‘비터’ (Chet Bitter) 선교사의 경우를 떠올리며 자신에게도 순교의 잔이 놓여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현실적으로 자신의 앞에 왔을 때 하나님의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사의 여부를 초월하여 강력한 위로와 평안의 근원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강한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강한 임재를 느낄 수 있었고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의 평안하고 의연한 자태에 오히려 테러범들이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결국 테러범들은 월튼 선교사를 죽이지 않고 풀어 주었습니다. 윌튼 선교사가 인질로 잡혀 있을 동안 그를 평안하게 해주었던 것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나를 사랑하는 내 주님이 내 곁에 만 계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이색적인 공모를 했습니다.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비행기를 이용해서,
기차를 이용해서,
자동차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답이 나왔는데 영예의 일등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라면 물리적 시간은 많이 걸려도 심리적 시간은 아주 짧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낮선 사람과 인사도 없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끼는 몇 초 동안의 짧은 시간은 심리적으로는 몇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그리고 마음 통하는 친한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짧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록 환난과 고통이 있어도 마음 기쁘고 즐겁게 인생 길을 가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날 사랑하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람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겪었던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목을 그 날 밤에 ...라 했습니다. 본문 11절에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날 밤이 어떤 밤인지 그리고 그 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1. 그날 밤은 어떤 밤인가

그 날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날들에서 어떤 특별한 날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 날 밤이란 어떤 날입니까? 
그 날 밤이란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보통의 날이 아니고 특별한 날임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터진 날입니다. 그것은 군중들에 의해 죽을 뻔한 그 날 밤입니다.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열매을 맺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크게 오해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무시하고 폐하는 교훈을 전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행 21:21절에 보면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전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교를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시 모세의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육신으로 할례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복음의 내용이 그들이 비록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오래도록 율법적 전통과 관습에 매여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해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율법을 모독한 자로 몰아 세워 죽이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성전에 있을 때에 수많은 군중들이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가서 폭행하였습니다. 바울을 죽이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은 바울을 쳤습니다. 그 때 온 성이 소란한 것을 보고 치안의 책임자였던 로마 군의 천부장이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군중들의 손에서 바울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영내로 데리고가서 바울을 성난 군중들의 손아귀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행23:10절에 보면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로마의 군대의 힘을 빌려 하나님의 종 바울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난의 밤 환난의 밤에 말입니다. 밤이란 대개 큰 어려움, 곤란함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인생의 시간에도 밤 시간이 있습니다. 찬란하게 밝아 오는 아침 같은 시간이 있는가 하면 캄캄하게 어두움이 짙어 가는 밤과도 같은 시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밤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밤을 당하여 고통 할 때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우리가 주의 길을 갈 때 어렵고 힘든 일들이 찾아오지만 그 때 마다 주님은 우리 곁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 날 밤은 질병의 밤일 수 있습니다. 실패의 밤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 날 밤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날 밤 일수도 수도 있습니다. 물질에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은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밤을 만난 여러분, 그 밤에 주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왜 나타나셨습니까?

1) 연약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바울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연약함 때문에 주님이 그 밤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의 약함아시고 그를 담대하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울은 군중들의 함성에 놀라고 떨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두려워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아내나 자녀들 앞에서 강한 척 해야 하나 속으로 연약함을 이기지 못해 울고 있는 가장은 없습니까?
친구들 앞에서 또는 이웃들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 앞에서 강한 척 하지만 내면의 약함 때문에 절망하고 슬퍼하는 사람 아닙니까?
겉으로 강한 것 같을 수록 내면에 약함이 큽니다. 겉으로 완벽할 수록 내면의 약점이 큰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을 자신은 압니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고통스럽습니다. 그 약함 때문에 주저하고 낙심하고 힘든 것입니다.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 경찰서로 끌려가서 순교하시기 전 산정현 교회의 마지막 설교를 하시면서 마음깊이 울었던 것이 바로 인간의 정 때문에 한없이 약해지는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꾸만 약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산정현 교회의 교우들에게 자신의 80이 넘은 병든 노모와 늘 약했던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부탁하고 일경들에게 끌려가서 장렬한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위대한 순교자도 연약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분노한 군중들의 외침은 그를 한 없이 고독하게 했을 것이며 두렵게 했을 것입니다. 그때 바로 주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에게 밤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을 살펴보면 두려워 떨 때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고전 2:3절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향락과 음행이 만연한 고린도의 죄악 된 모습을 보면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밤에 나타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행 18:9절에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2) 사랑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에게 그날 밤에 나타나신 것을 바울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을 사랑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주께서 바울 곁에 서셨다” 했습니다. 사람들은 약하고 힘없고 부족한 사람곁에 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떠나고 버리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만일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곁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바울에게도 연약함이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 곁에 서셨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을 사랑하셨기에 그 사랑 때문에 약한 바울을 떠나실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책에서 사랑한다는 건 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건, 손끝만 스쳐도 그의 마음 깊은 곳 까지 느껴지는 것
사랑한다는 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의 하루가 다 보이는 것
사랑한다는 건,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가 벌써 그리워지는 것
사랑한다는 건, 아무리 멀고 오래된 소식이라도 오늘 이야기가 되는 것
사랑한다는 건, 그에게 입힌 작은 상처 하나가 내 평생의 아픔이 되는 것
사랑한다는 건, 슬픔은 등에 지고 희망은 가슴에 안고 끝까지 곁에서 같이 걷는 것

사랑을 잘 표현해준 아름다운 글입니다. 특히 마지막에서 “사랑한다는 건 슬픔은 등에지고 희망은 가슴에 안고 끝까지 곁에서 같이 걷는 것” 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 방식입니다.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 가장 부족한 그 부분을 가슴에 안으시고 끝까지 내 곁에서 나와 같이 걸어 주시는 그분.... 바로 주님이십니다. 
저는 주님의 그 사랑이 없으면 내 인생을 살수도 사명을 목회자로서의 길도 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고통과 외로움을 연약함으로 감당해야 하는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연약함을 끝까지 곁에서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나를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3) 사명 때문입니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에 나타나신 세 번 째 이유는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입니다. 행23:11절에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 라고 했습니다. 

로마에 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할 사명이 아직 바울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주님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 해 주신 사명이 있는 이상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는 이상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있는 모습 그 대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쓰시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게 하시며 주를 위해 죽는 자는 결코 영원히 죽지 않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아직 바울에게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약함을 도우셨고 사명을 일깨워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명 때문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일경은 서슬이 퍼런 어조로 "누가 시켰나?" 라고 물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나를 붙잡았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일경이 화를 내며 "빨리 대답하라"고 소리치자 이상재 선생은 "2천만 모두가 했소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2천만이 당신을 시켰는가?"
일경이 고개를 저으며 묻자 이상재 선생은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2천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시켰소"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하나님이 시켜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은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습니다. 목숨도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누가 시켜서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명감에서 한 것입니다. 
사명을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월급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월급의 양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거나 요구하면 그만 두어 버립니다. 그러나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하고, 대가가 아닌 보람을 위해 일합니다. 

그 일 자체를 즐기며 일하는 사람이 사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월급의 액수에 구애받지 않고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 43: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중국 청도에도 국제 학교를 개교했습니다. 아직은 학생 6명밖에 없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정체성으로 무장된 주님의 일군들을 양성할 것입니다. 믿음의 거장을 키우는 학교의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교남 우리교회의 지교회로 왕태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의 지교회가 또 지교회를 세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중국에서는 활발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보냄을 받았고 신변의 위험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주의 복음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누가 시켜서 하겠습니까?
선교는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시키신 일이 사명입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받았고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이번에 열리는 선교 바자회도 역시 사명 때문에 움직여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난의 밤을 만났을 지라도 자신의 약함을 주님께 맡기는 사람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의 깨닫고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그 사명을 완수 할 수 있도록 언제나 나타나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인생의 고통과 환난의 밤이 닥쳤을 지라도 약함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믿고 주님만 의지합시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바로 깨달읍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반드시 나타나셔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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