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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에 대하여 주시는 가르침 (벧전 2: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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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하여 주시는 가르침 (벧전 2:19~25)

세상사는 데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가지 고난이 따릅니다. 이 세상에 고난이 없이 산다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여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나는 고난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고 지금도 고난이 없이 산다 하는 분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니 여러분만이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사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고난이 어느 분에게는 질병일수도 있고 어는 분에게는 물질일 수도 있고 어는 분에게는 사고일수도 있고 어는 분에게는 자식이요 이웃일수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는 고난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하나를 건너면 또 하나가 나오고 하나를 건너면 또 하나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 많은 고난을 지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을 이기는 지혜입니다. 고난을 잘 건너 가는 지혜입니다. 징검다리를 잘 건너면 물을 건너 가 육지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듯이 고난을 잘 건너가면 거기에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고난을 잘 건너 가는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우리가 당하는 몇가지 고난의 유형에 대하여 말씀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고난입니다. 나는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고난을 당합니다. 군대 생활을 하다보면 단체 기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기합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잘못한 사병 하나 때문에 전체가 기합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억울하지요. 

그런가 하면 내가 저지른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마땅히 당 할 고난입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시비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교통 법규를 어겼습니다. 당연히 벌금을 내가 물어야 합니다. 거기에 무슨 말이 필요 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내가 잘못을 해 놓고도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려서 구속이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저지른 죄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그다음에 고난은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거룩한 고난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바로 이 거룩한 고난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성경에 주님을 따르는 많은 자들이 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값 있는 고난입니다. 보람 있는 고난입니다. 자랑스런 고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고난 속에서 우리는 어떤 고난도 이길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고난은 불행이아니라 축복입니다. 고난을 이기는 지혜를 배워 여러분의 삶이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말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9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으라. 중요한 말씀이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압니다. 나의 억울 함을 압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생각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 가억울해서 견딜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상대를 미워하느라 죄를 짓고 원망하느라 죄를 짓고 원수 갚는다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는 애매한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생각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이 억울함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생각하고 선으로 풀면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따라 올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사도가 A.D. 64년 경에 로마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 때는 네로 황제에 의해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해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단순히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잡혀 죽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 가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애매한 고난입니다. 

그러나 모든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잘 견뎌냈습니다.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카타곰이라는 지하 묘실에서 믿음을 지켜 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로마가 기독교국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혁명으로 이룬 나라가 아닙니다. 기도로 믿음으로 이룬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성경의 욥만큼 고난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욥의 고난은 애매한 고난이었습니다. 왜 고난을 당하는지 욥은 몰랐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유가 있으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내함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갑절의 건강, 갑절의 물질, 자녀의 축복뿐만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도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고난중에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이 축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다음 성경에는 20절에 '죄악이 있어서 고난 당하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죄악이 있어 고난을 당하는데 누가 칭찬 하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형벌입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 성경에 가득합니다. 성경에 가득하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약1:5절 말씀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번 선거는 깨끗하게 치러졌는가? 했는데 37명이 선거법에 걸려 구속이 되는가 봅니다. 잘못하면 감옥에 가고 벌금을 물고 당선 된 것도 무효가 되는 것이지요. 이들이 당하는 고난은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이런 죄로 인한 고난은 받을 필요도 없고 받아서도 안됩니다. 이런 고난은 무가치한 고난이요 부끄러운 고난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걷어 차는 고난입니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죄의 고난은 참을 고난이 아니고 회개해야 할 고난입니다. 참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요.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요 하나님께 회개해야 자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선하신 하나님이 회개 하는 자의 눈물을 받아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고난에서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다음에 주시는 말씀은 20절후반에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선을 행하라는 것이지요. 주를 따르는 자들이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사람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한 일에 쓰임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악한 일에 쓰임 받는 자 들입니다. 이 악한 일에 쓰임 받는 자들이 불행 한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는 받는데 악한 일에 쓰임 받습니다. 선한 일에 쓰임 받는 자는 쓰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일에 쓰임 받는 자는 쓰임 받은 후에 버림을 받습니다. 

저는 어려서 회초리를 많이 맞았습니다. 회초리를 많이 맞았다 는 것은 제가 어떤 아이 였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런데 회초리를 가지고 저를 때리고 난후에 우리 어머니가 나를 때린 회초리를 탁 꺽어서 집어 내 버리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지금 그 생각을 합니다. 자식을 때리는 일에 쓰임 받은 회초리는 더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데 이방나라들을 사용 하셨습니다. 이방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포로로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세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들이지금은 다 망하였습니다. 흔적도 없는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바울은 선한 일에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선한일은 없습니다. 그 일을 위해 고난을 자처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는 그의 출세의 발판이 되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고난에 뛰어 들었습니다. 수없이 옥에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합니다.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강에서, 바다에서, 광야에서 숱한 위험을 만납니다.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의 고난은 장 차 받을 영광에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 주님 가신 길을 당당히 따라 갔습니다. 그의 거룩한 고난으로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는 축복이 이루어 졌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 22절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짖도 없으시며 23절,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 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 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주님은 자신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대항하지 않으시고 욕하지도 않으시고 두고 보자 소리도 아니 하시고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억지로 진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고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오직 바라 본 것이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그 결론이 무엇인가요?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 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우리들의 구원을 이루어 냈습니다. 거룩한 고난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주를 바라보고 삽시다 주를 붙들고 삽시다. 그러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바위나 배 밑창에 붙어 사는 조개 삿갓, 바위 자체를 깰 수는 있어도 거기에 붙은 조개삿갓을 뗄 수는 없다.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오래동안 파도와 싸운 결과라는 것 시속 3백마일의 바람 속에 서있는 것과 같은 파도 속에서 조개삿갓은 바위와 한 몸처럼 밀착한 것 주와 밀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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