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지막 설교 (신 26:5~11, 딤후 4:1~8, 요 14:25~31)

  • 잡초 잡초
  • 329
  • 0

첨부 1


마지막 설교 (신 26:5~11, 딤후 4:1~8, 요 14:25~31)

1. 오늘 구약본문이 들어있는 신명기는 전체가 모세의 고별설교입니다. 출애굽과 광야 40년을 끝내고 요단강 동편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한 말씀입니다. 「신명기(申命記)」라고 하는 성경 명칭은 “두 번째 선포한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함께 받은 율법을 출애굽 1세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출애굽 1세들은 신실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은 받았지만 결국 그 약속의 성취는 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신령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로 대표되는 율법, 또 그 율법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을 내다보고 기다리는 모형이라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옛 사람 즉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 1세와 같은 육에 속한 옛 사람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옛 사람이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 즉 중생한 새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명기는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들에게 가나안 약속의 땅 입국 직전에 요단강 동편에서 새롭게 선포한 모세의 두 번째요 마지막 설교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3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1) 과거를 회고하면서 준 말씀입니다. 즉 에벤에셀의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놀라우신 은혜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선민으로 선택하셨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놀라우신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크신 사랑으로 지난 40여 년 동안 광야 길을 인도하셨는가, 다시 말하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적들로부터 보호하시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해주셨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일, 오늘까지 에벤에셀로 지켜 인도해 주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가사처럼“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또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그래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1924년부터 시작했으니까 8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국교회역사로서는 짧지 않은 연륜입니다. 그동안 우리교회도 많은 시련을 거쳐 왔습니다. 제가 7번째 담임목사인데 10년 넘어 시무한 경우가 초대 이원영 목사님이 26년, 5대 김원진 목사님이 30년, 그리고 제가 13년, 합하면 70년입니다. 그 어간에 4분의 목사님이 더 계셨지만 다 5년 미만입니다. 목회 기간이 짧은 것은 교회의 내외적인 여건이 평탄하지 못했던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예배당을 이곳에 세워주셨고, 또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새 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세처럼, 이스라엘처럼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마땅히 감사하고 찬양해야하겠습니다.  

 (2) 모세는 현재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감사하는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즉 임마누엘의 은총입니다. 

   광야 생활은 평탄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며 지도자 모세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역해 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장차 들어갈 땅을 정복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들은 아직 이렇다할 전쟁 경험이 없고, 제대로 훈련된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두고 떠나야할 모세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지금도 여전히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 임마누엘 신앙을 확실하게 심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두 지금의 교회 현실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현재 건축으로 인한 재정적인 압박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교회나 교인들의 요구 또는 욕구는 매우 절실합니다. 이 괴리현상을 어떻게 조화시켜나가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 가지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독생자까지 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목숨을 주신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사실 말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신데 무엇을 아끼겠느냐?”고 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감당하고도 남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3) 모세는 이제 미래를 내다보면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은총입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을 강 저편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스라엘로서는 감회와 함께 우려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저 가나안의 원주민들과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금년 표어대로 말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지역을 넓혀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1:부터 이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한 사실이 있습니다. 1:30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안으셔서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을 뿐만 아니라” 장차 들어가게 될 그 땅에도 역시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33절에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 갈 길을 지시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긴 마지막 설교를 마치기 전에 한 번 더 말해줍니다. 31:3-에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하실 것이니....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하시며.....떠나지 아니하시며....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지만 오늘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들을 생각할 때 마음과 어깨가 무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앞서 가시는 분, 먼저 가시는 분 즉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아름답고 화려한 미래 청사진은 우리 가슴 속에, 우리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갈 때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서신 디모데 후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만년에 기록한 편지로서 바울에게는 유언과도 같은 글입니다. 

  먼저 그는 아들과도 같은 디모데에게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피부로 느끼면서 비장한 마음으로 주는 말씀입니다.  

 (1) 먼저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고 직무를 다하라”고 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남은 삶이 많지 않음을 이미 감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조만간 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러면서 장차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오늘 여기서 주님 앞에서 살라고 하십니다. 

  일찍이 예수님 말씀에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에 충성한 종과 불충한 종에 대한 교훈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이냐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인정받았느냐, 내가 세상에서 한 일이 어떠냐가 아니라 그날 주님이 보실 때 어떨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 목표를 확실하게 설정해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아니 주님 앞에서 지극히 작은 일에라도 충성할 때 그날 거기서 주님은 우리에게 지극히 큰 것으로 맡겨주실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지금 노사도 바울은 지난날의 자랑도 아니고, 현재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도 아니라 오직 주님 만날 그날에 대한 소망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그날 그에게 씌워줄 의의 면류관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사람이 젊을 때는 이성에 대하여 매력을 느낍니다. 나이가 좀 들게 되면 돈에 매력을 느낍니다. 더 나이가 들게 되면 명예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먹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그 과실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때로는 주님도, 교회도, 신앙도 두 번째, 세 번째로 어쩌면 맨 나중으로 밀쳐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야할 그날을 생각할 때 그토록 아름답던 세상의 부귀영광과 모든 욕심꺼리들은 분토만도 못한 것으로 그 빛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가치관에 이런 변화가 와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재고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 사는 것이요,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신앙이요, 그리고 그 나라 백성으로 준비하는 길입니다. 


3. 복음서의 말씀은 소위 다락방 강화라고 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나누신 고별설교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골고다 길을 가시면서 우리 주님은 무엇보다 이 사역을 계속해 나가야 할 제자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받게 될 충격을 생각할 때 정말 마음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면 보혜사가 오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보혜사가 오시면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주님이 그동안 가르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제자들이 주님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씀을 자꾸 들려주시는 주님이 야속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오순절이 되어 성령께서 강림하셨을 때 주님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은 저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마치 어린 자녀들 대하듯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은밀하게 그러면서도 확실한 약속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집에서 가축을 키워보면 처음에는 어미들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젖 뗄 때가 되면 그렇게 새끼들을 보살피던 어미들이 사정없이 새끼들을 물기도 하고 떠받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면서 어미에게 접근하는 것을 금합니다. 새끼들이 볼 때 얼마나 야속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성장을 위한 어미의 배려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것으로 여러분과의 마지막 설교를 하게 됩니다. 제 마음이 아프고 섭섭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목사의 영광이 목회인데 정년을 3년 앞둔 이 시점에 도중하차할 때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새 예배당을 봉헌한지 겨우 작년 1년을 지났을 뿐이니 왜 아쉬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오직 교회의 평화만을 먼저 생각하면서 아픔도 상실도 내게 주신 십자가로 지고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다소 서운함이 있을 것입니다. 소위 13년을 함께 지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서로 헤어져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도 다시금 성장하게 되고, 여러분의 신앙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십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정말 이 교회의 주인이 되시도록 하십시다. 이 시점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전적으로 사랑해 주시고 협력해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주 안에서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