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 말을 하매 노가 풀리니라 (삿 8:1~3)

  • 잡초 잡초
  • 414
  • 0

첨부 1


이 말을 하매 노가 풀리니라 (삿 8:1~3)

옛날에 힘이 아주 강한 강대국이 힘이 아주 약한 약소국을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약소국 왕은 강대국과 싸워보아야 쑥대밭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지혜로운 사신을 보내어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하지 않게 하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사신은 고민을 하면서 강대국으로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하여야 강대국 왕이 전쟁을 그칠까?”

사신은 강대국 왕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보니 우리나라 왕은 조그만 초승달 같고, 대왕은 아주 큰 보름달 같은 왕이십니다. 보름달 같은 대왕이 초승달 같은 왕을 쳐서 무엇 하십니까? 싸워보나 마나 우리가 지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전쟁을 그만 두시는 것이 어쩌는지요?” 

이 말을 들은 강대국 대왕은 기분이 좋아서 전쟁을 포기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말로 전쟁을 그치게 하고 돌아 온 사신은 자기 왕 앞에서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왕은 수고하였다고 그 신하를 치하하면서 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상을 주자 말자 도로 확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빼면서 대노하여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전쟁을 끝낸 공로로 마땅히 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적국의 왕을 보름달로 비유하고, 나를 초승달로 비유하며 내 자존심을 심히 상하게 하였다. 고로 너는 사형이다.”

그리고 왕은 칼을 빼어 신하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신하가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나이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십시오. 보름달은 점점 작아지는 달이지만 초승달은 점점 커지는 달이 아닙니까?”

이 말 한 마디에 왕의 노가 스르르 풀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신하는 말 한 마디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야 할 전쟁을 그치게도 하고, 말 한 마디에 왕의 노를 그치게도 하였습니다.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일컫는 이야기입니다. 옛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양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옆에 미디안이라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미디안은 얼마나 군사가 많은지 인해전술을 쓰며 이스라엘을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사사에게 300명의 아주 적은 용사를 주시면서 미디안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300명의 군사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쫓겨 가던 미디안 군대는 에브라임 산지로 도망을 쳤습니다. 기드온은 적을 진멸시키기 위하여 에브라임 산지까지 따라갔습니다.

미디안의 패잔병들은 이제 기력이 다하였습니다. 기력을 다 상실한 미디안 패잔병들은 맥없이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들어 갔습니다. 이때 그곳에 살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 족속들이 미디안이 전쟁에서 패하고 에브라임 산지로 쫓겨 오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전쟁에 동참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멀리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대장 오렙과 스엡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를 베어 들고 당당하게 기드온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삿 8;1)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이 보통 사람 같으면 대단히 화가 나서 에브라임 사람들과 심한 언쟁을 하며 싸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군인 미디안 사람들이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을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무서워서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적군이 패하는 것을 보고야 에브라임 사람들이 전쟁에 동참했으니 아주 얄밉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을 전쟁에 부르지 않고 기드온이 혼자 나가서 공을 차지하려고 했다고 기드온을 비난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성격이 온유한 농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화가 나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이렇게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8;2-3)

기드온이 이렇게 말했더니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의 노가 풀렸습니다. 그리고 서로 화목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 살다 보면 참으로 열 받을 만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투며 싸우다가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말은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달래주고 기분이 좋게 하였습니다. 자칫 형제들끼리 싸움을 하고 원수가 될 상황에 말 한마디로 인하여 서로가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에 대한 격언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16:2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오늘 기드온의 말은 상대방의 노를 풀어주고 상대방과 화목하고 하나가 되는 귀한 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드온의 이 말을 통하여 상대방과 화목하고 하나가 되는 비결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1.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화가 잔뜩 나서 적군의 두 장군 목을 들고 와서 말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기드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8;2-3)

이 말 한 마디에 에브라임 사람들 노가 다 풀리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은 자기를 가리켜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맏물포도가 아무리 좋아도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말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 같으면 상대방이 나를 향하여 얼토당토않게 비난을 하며 화를 내며 말을 할 때에 같이 화를 내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향하여 “뭐가 어쩌고 어째?”라고 말하며 다투기 쉽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아무리 적반하장으로 말할 때에도 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며 말하는 것은 대단한 지혜요, 대단한 여유요, 대단한 용기요, 대단한 관용입니다. 어찌 보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드온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존심이 상하여 기드온에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여유를 가지고 에브라임 사람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름 아닌 상대방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5)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미국의 지도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에게는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 스승은 학식도 많았습니다. 인격도 좋았습니다. 생활도 검소하였습니다. 그 스승의 집에 들어가려면 문이 낮아서 머리를 많이 숙여야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프랭클린이 인사차 스승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 갈 때에 문이 낮다 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습니다. 

프랭클린이 스승과 함께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가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시간에 깜박 고개를 푹 숙이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나가다가 머리를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스승이 프랭클린에게 소리를 질렀었습니다. “여보게, 머리를 숙이게!” 그리고 스승이 이렇게 프랭클린에게 권면을 하였습니다.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부딪치는 일이 많을 걸세. 그러나 스스로 머리를 푹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을 것일세.”

그 후에 프랭클린은 인간관계에서 부딪칠 일이 생기면 “여보게, 머리를 숙이게!”라는 스승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스승의 말씀처럼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낮아지고 상대방을 높이다보니 싸움을 피해갈 수 있는 지혜롭고 포용성 있는 관용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기드온의 말은 이렇게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높이므로 상대방이 노를 풀어주는 말이었습니다. 
2. 하나가 되게 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노하였을 때 모든 지파가 하나가 되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8;2-3)

그러나 사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좀 못된 근성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이 사건 이 후에도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그때에 입다가 생명을 걸고 나가서 암몬 족속을 물리쳤습니다. 이때에도 에브라임 사람들은 전쟁에 동참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입다가 전쟁에서 이기니까 그제야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삿12;1)

참으로 열 받게 만드는 말입니다. 이렇게 에브라임 사람들은 남을 열 받게 만드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이때 입다는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삿12;2-3)

물론 이러한 입다의 말은 이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사실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자존심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더욱 감정이 나빠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둘은 크게 싸우게 되고 마침내 전쟁으로까지 비화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억지를 부리며 덤비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끝까지 따라가며 죽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요단 나루터로 도망가는 것을 군사를 보내어 잡아 죽였습니다. 

그때 입다의 군사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십볼레’라는 말을 하게 하였습니다. ‘십볼레’라는 단어는 땅 이름으로 ‘강물의 흐름’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레’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십볼레’를 ‘씹볼렛’이라고 된 소리를 냈습니다.

한국에도 보면 경상도 사람들이 ‘쌀’이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살’이라고 발음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 캘거리 교역자 가족수련회가 있어서 차를 타고 캐나다 1번 도로 서쪽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캘거리를 빠져나가다가 보니 문뜩 제 눈에 이런 지명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Sibbald' 이 단어를 읽으면서 성경의 십볼렛’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저희 집 사람에게 저 단어를 한번 발음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는 제대로 ‘십볼드’라고 발음을 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어- 제대로 발음을 잘하네! 죽지는 않겠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 아내가 “무슨 말씀을 하는 거예요?” 하고 영문을 몰라 하며 물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성경에 나오는 ‘십볼렛’ 이야기를 하며 서로 웃었습니다.

아무튼 ‘십볼렛‘이란 단어로 입다가 죽인 에브라임 사람들의 수가 4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기드온과 입다가 거의 똑같은 상황 속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지만 그 결과는 이렇게 천양지차가 나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못된 근성이 있었지만 그들과 화목하고 하나 되는 말을 했고, 입다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억지를 부리는 그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어찌하든지 오래 참고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화목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지 싸우고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에게 끌고 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돌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로 그들의 모든 노를 풀어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아무도 돌로 그 여인을 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흥분과 노를 가라앉히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그 여자 둘만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물론 간음한 여인은 충분히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성을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죄짓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누구나 죄성이 있습니다. 혹은 에브라임 사람들처럼 이치를 모르고 억지를 부리며 덤비는 비정정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때 이를 논리적으로 상대한다고 말을 하면 서로 비난이 오가며, 감정이 나빠지고, 마침내 싸움이 나고, 원수가 되고 맙니다. 이때에는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높여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화목하고 하나 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5:9)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 가면 세계에서 제일 큰 예수님 동상이 서있습니다. 팔 하나만도 3톤이나 되는 아주 큰 동상입니다. 이 동상은 칠레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가 친선을 도모하며 평화의 상징으로 세운 예수님의 동상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예수님 동상은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팔을 벌리고 서있습니다. 말하자면 칠레를 등지고 있습니다.

칠레 정치가가 대중 앞에서 분노하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꼴입니까? 예수님 동상이 우리나라를 등지고 있습니다.” 이 말에 그 자리에 모인 칠레 군중들은 모두 분노하였습니다. 이때 유명한 신문 편집국장이 칠레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조금도 노할 것이 없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은 잘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칠레보다 아르헨티나가 복음화가 덜 되었습니다. 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칠레 국민들은 노를 풀었습니다. 여러분, 똑같은 상황을 해석할 때 노를 일으키며 이간을 시키는 말도 있고, 노를 풀어주며 서로 간을 화목하게 하는 보석보다 귀한 말도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높이는 말입니다. 서로를 화목하게 하고 하나 되게 하는 말입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의 노를 풀어주며 화목을 도모하고 하나 되게 하는 말을 하는 복있는 입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