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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는 겉보기와 다릅니다 (고후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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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겉보기와 다릅니다 (고후 6:1~10)

외국에 어떤 나라 세무 공무원이 하루는 목사님 가정에 방문을 했습니다.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무공무원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가정에는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목사님이 선뜻 대답하셨습니다. “예, 우리는 엄청 부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되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예, 저는 우선 하늘나라에 영원토록 살아갈 좋은 맨션 한 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처소는 영어 성경으로는 맨션이라 나와 있습니다. 그러자 세무공무원이 “아니 그거 말구요.” 그리고 저에게는 자상한 아내가 있습니다. 아니 그것 말구요. “저에게는 의좋게 살아가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아니 그것도말고요. “저에게는 오늘밤에 아무 걱정 없이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는 침대도 있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세무공무원은 더 안 들어도 알겠다는 듯이 목사님의 말씀을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정말 엄청난 부자네요. 그러나 세금은 매길 것이 없네요.” 라고 말하곤 돌아갔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계십니까? 

이번에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보니까 다들 몇 십억씩, 몇 백억씩 소유하고 있던데, 여러분은 얼마나 됩니까? 

나는 아직 우리 교회에서 최고의 부자가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최고의 부자지요? 여기있는 최목사입니다. 가진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하나님 것이 다 제 것입니다. 

혹시, 자기가 최고 부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내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까요? 재산이 많고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면 행복할까요? 성경은 그것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많이 가졌는지 적게 가졌는지 거기에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랍니다. 경제 수준은 세계 200등정도 되면서 행복지수는 최고로 높답니다. 반대로 유럽 선진국은 40%정도도 안된 답니다. 

오늘 성경을 살펴보니 행복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음”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비록 적게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는 사람은 마음에 감격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한 삶의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봉독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부요함이 넘쳤습니다. 

본문 말씀을 9절 10절을 다시 보세요.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우리 성도는 겉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만을 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불쌍하다고 하기도하고 바보 같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 때문에 속상하거나 괴롭거나 힘들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굶으면 배가 고팠고, 병들면 아팠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음이 심히 답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주안에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주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니 인생이 100% 달라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는 주안에서 자신을 보니 엄청난 부자로 보였습니다. 주안에서 부족함이 없으며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고 남쪽을 다녀오는데 최근에 새로 생긴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얼마나 좋은지.... 막 달렸습니다. 그러면서 이 도로는 나를 위해 만든 도로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 만들었으니 내 것입니다. 저 태양은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아버지 되시니 그것도 내 것입니다. 저 달도, 저 별도 내 것입니다. 그래서 저별은 나의 별 하는 노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누려야 할 믿음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는 부자다,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내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할렐루야! 

제가 유심히 보니 몇 분은 입을 꽉 다물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지요. “그런다고 부자냐?” “나는 지금 찢어지게 가난하여 힘들어 죽겠는데 뭐가 부자라고 따라한단 말이냐?”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뭘 갖고 있었을까요? 

그는 집 한 채 없던 사람입니다. 부인도 없었습니다. 자식은 더욱이 없고요. 가진 것이라고는 이마도 언제라도 떠날 때 가지고 갈 가방 보따리 하나, 그리고 주님 사랑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고백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삶을 살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겉보기와 다른 존재입니다. 겉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고 가난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엄청난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 성도는 겉보기와 다른 것일까요? 

1. 하나님이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겉보기는 초라하고 하잘 것 없어 보여도 실상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입니다. 

1절을 다같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꾼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부심, 그 자존감을 아무도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무도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세가 어떻게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수 있었을까요? 
그는 분명 애굽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숨어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막강한 왕 앞에 선단 말입니까? 

모세는 처음에 하나님이 가라 했을 때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했는데 그 말이 뭔 말입니까? 그 말뜻은 “나는 그 앞에 설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으로 도망쳐 나온 사람인데 어떻게 그 막강한 바로 앞에 선다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결국은 갑니다. 뭐 때문이죠?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출3:12절을 보세요.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십니다.  

그래도 입술이 둔하다, 말을 할 줄 모른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면서 핑계하자 하나님이 노를 발하십니다. 그리고는 모세의 형을 붙여 주십니다. 그리고는 아론에게 말하면 하나님이 그 입에 함께 하시겠답니다. 

출4:15~16절을 보세요.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하나 합니다.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할렐루야  

다시 말하면 모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하나님의 말이라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니 그가 일어서 갑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일하기에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겉보기와 다른가? 


2. 막중한 직책과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세요.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부르셔서 아주 중요한 직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이 직책은 고린도 후서5:18절을 말합니다.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다. 
누구와 화목일까요? 사람 사이에 분쟁이 있을 때 화평케 하는 것도 화목의 직책이지만 하나님과 사람관계를 회복하게 하기는 것이 화목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전도입니다. 그래서 죄를 깨닫고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직책과 사명을 받았습니까? 왜 그 직책을 받았습니까? 그 사명 왜 주셨을까요? 그 사명은 영혼 구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지 10년쯤 지났다면 나 때문에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 적어도 5명~10명은 되어야 진짜 크리스천입니다. 

여러분은 trouble(분쟁) 메이커가 아닌 peace(화평) 메이커가 되시길 축원 합니다. 또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다른 것일까요? 


3.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인생관이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과 우리 성도가 다른 것입니다. 또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하는 가치관도 우리는 세상 사람과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기에 인생을 사는 방향도 방법도 다른 것입니다.  

바울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족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실상 그의 삶은 한순간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4절부터 다시 보세요.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그렇습니다.  

“환난과 궁핍과 곤난”“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이런 것이 그의 전도여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복할까요? 세상 사람과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관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현 세상만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나라까지 바라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면 성공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상 받는 것이 성공이기에 삶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왜 이런 것을 모를까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세상 사람은 모릅니다. 


세상 사람이 모르는 두 가지 그것이 무엇일가요? 

1.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절하반절을 다시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또 2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참으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한국은 어디를 가나 교회가 있고, 어디를 가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어딜 가도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 받기에 보족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요?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기가 어릴 때 엄마 품에서 어머니의 은혜가 뭔지 모르고 살듯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면서도 그 은혜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누리고 사는 자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요? 지금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기에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 대부호 캐리에게는 죠지와 윌리암이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으며 장래가 크게 촉망되어 가문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형 '죠지'는 돈도 많이 벌었고 국회의원까지 되어 부자로서 정치가로도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윌리엄은 출세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모두 마다하고 난데없이 인도의 선교사로 지망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놀라서 강력하게 만류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친구들은 '굴러 들어온 행운과 명예를 저버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비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대영 백과사전에 두 사람을 나란히 소개하고 있는데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무려 1 page 반을 할애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나 죠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윌리엄 케리의 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케리는 자신의 명예를 얻기 위해 선교사로 간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와 명성이 예약되어 있는 길보다 그리스도인으로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었습니다. 왜요? 그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샘솟듯 넘쳐 오르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은혜를 모르기에 바울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울은 무명한 자 같았습니다. 죽는 자 같았습니다. 또 근심하는 자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적인 평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기록된 그의 편지를 읽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는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2.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른 결정적 이유는 우리 속에 거하신 성령님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속에 거하면서 엄청난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권능이 power입니다. 그 힘이 제자들에게도 임했고 바울에게도 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임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그 성령의 능력 때문에 엄청난 모습을 보여 줍니다. 

9절 10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할렐루야! 

우리 성도는 겉보기 하고 확실히 다른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름 없는 사람 같아요. 그러나 실제로는 유명한 자입니다. 

여기 서 있는 최 목사가 그렇잖습니까? 겉으로 보면 곧 죽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절대로 죽지 않고 일어서는 자요. 근심걱정 투성이 일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또 겉으로는 가난하여 남의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 같으나 실제로는 많은 사람을 부자 되게 만드는 사람이고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죠? 우리 속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 능력을 모릅니다. 세상은 성령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고 오로지 운명과 팔자를 따라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지극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겉 사람,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이런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는 겉보기와 다른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할렐루야 

자신이 누군가를 올바로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는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답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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