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창립]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 교회 (롬 12:1~2)

  • 잡초 잡초
  • 311
  • 0

첨부 1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 교회 (롬 12:1~2) 

(설립 17주년 감사예배)

오늘 우리 교회 설립 17주년을 맞이 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며 짧은 간증을 하고자 한다. 설립 한 해 전인 1990년 봄, 앞으로 진로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1)영국으로 유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2)카나다의 한인교회의 초청을 받아 부임하는 것

이 문제를 놓고 새벽에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몇 개월 동안 기도하고 있는데 어느 날 새벽에, 영국 유학도 카나다행도 내 마음 속에서 사라졌고 교회 개척에 대한 기도만 계속 나왔다. 교회 개척에 대한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왜 이런 마음을 주시는가?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일까?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하면 할 수 록 더욱 확신을 주셨다.

이듬해 1991년 2월, 설날 다음 날, 개척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님께서 위원장이고 나와 아내가 위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무작정 인도하심을 따라 걷다가 소사동 구종점 주유소 맞은 편 2층 건물에서 교역자 부부 4명과 성도 3명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하기 전, 이 동네에 교회들이 많은 데 굳이 교회를 세울 필요가 있는가에 대하여 기도하며 묻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확실한 마음을 주셨는데 우리 주보와 달력에도 적혀 있는대로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이란 3가지 설립정신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면 아무리 교회가 많아도 문제가 될 것 없었다. 그리고 마음에 자신감도 생겼다.

17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급속한 성장은 아니지만 꾸준히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며 성장해 왔다. 오늘 우리의 현재 이 모습이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증거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동고동락해온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지난 120년의 개신교 역사 가운데 가장 위기적 상황을 맞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7월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의 아프칸 테러 인질 사건과 올 초부터 일기 시작한 공영 방송과 인터넷 상의 교회에 대한 부정적 보도들로 인해 기독교의 위상이 실추되었고,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물론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과 일부 대형교회들과 목회자들의 부도덕한 행동들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허물을 한국교회 전체의 타락인양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지나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영방송 관계자나 또는 인터넷 상에서 악성 댓글로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과연 당신들이 교회를 향하여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향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항변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질책을 달게 받고, 교회의 개혁과 그리스도인 자신의 신앙적 갱신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피차 간에 실망스런 모습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교회마다 찬송 소리, 기도 소리는 높으나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는 신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오늘 우리는 17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 교회로 한걸음씩 더 나아가는 결단을 한다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로마서를 둘로 나눈다면 오늘 본문의 내용이 분수령이 된다고 할 수 있다. 1~11장까지는 구원과 관련된 기독교 교리에 관한 주제에 대한 기록이고, 12장부터 마지막 16장까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관한 주제,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2절은 그 주제에 대한 서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서론 1-2절 부분의 핵심은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는 날마다 변화되어야만 한다. 만약 변화되지 않거나 변화되기를 싫어 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그의 삶에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되는 성도는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요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변화의 과정을 여러 단계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단계는 마음의 변화이다. 


1.마음의 변화
2절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이란 선물을 주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갑자기 거룩해지는 것 아니다. 믿자 마자 갑자기 술이 끊어지고, 욕심이 사라지고, 시기와 미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변화된 것이 아니다. 단 한 가지 나의 신분이 변화된 것이다. 죄인된 신분이 의인된 신분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에 이민 간 사람이 시민권을 얻으면 미국 사람이 된다. 그러나 시민권을 얻는 순간 갑자기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고 미국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30년이 지나도 코리아 타운에 살면 영어 못해도 산다. 한국식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예)교통 위반으로 걸린 이민자가 면허증에다 10불 짜리 한 장 끼워줬다가 망신당한 일, 학교 교사들에게 봉투주는 습관. - 한국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은 행동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이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경이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직분이 장로라 할지라도 그의 생각은 여전히 세상적이고 인간적이다. 

그러나 교회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그의 생각이 점점 성경적으로 바뀌게 된다. 행동을 바꾸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읽고, 매일 매일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기 바란다. 주의 말씀이 그의 생각, 그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변화시켜 주는 것이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2.행동의 변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표준번역)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받아서 유익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들이 건축 양식으로 보면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들어가려면 관람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그 교회당에는 성도들이 거의 없다. 유럽의 물질적 풍요가 신자들을 세상으로 몰아냈기 때문이다. 세상의 유행과 쾌락을 따라가다가 그들은 신앙마져 잃고 말았다. 그들은 태어나서 목사나 신부에게 세례 받고 결혼식을 교회당에서 하고 장례식도 교회당에서 한다. 그렇다고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본 받아야 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본받아야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다. 앞서서 행동을 바꾸기 전에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결국 주님을 생각하게 되고, 주님을 본받게 되는 것이다.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벽에 부딪히는 것이 술, 담배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분들에게 술 담배를 끊고 나오라고 하면 대부분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우선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서 들으면 술 좌석에 앉았을 때, 술 잔을 만졌다 놨다 하게 된다. 그러다가 말씀이 생각나서 결단하게 된다. 
하루 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수도 없이 반복해서 실패한다. 그래도 계속 예배 나와서 말씀을 듣고, 억지로라도 성경공부에 참석하면 생각도 바뀌고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낙심하지 말고 안되면 될 때까지 시도해 보라. 안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애벌레가 나방이 되려면 반드시 번데기를 뚫고 나오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약 그것이 안스러워 가위로 구멍을 넓게 만들어 주면 애벌레는 결국 날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삶의 좋은 습관을 깃들이기 위해 고통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멋진 삶의 주인공이 되기 원한다면 고통을 감내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3.변화의 수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 하)

어느 정도로 변화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정도까지 변화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누구든지 처음 예수 믿을 때 삶의 중심은 항상 나 자신이 우선이다.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할 때 짜증이 나고 교회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있는 모습과 같다. 그들은 자기가 좋은 하는 치킨, 핏자, 햄버거, 콜라만 먹기를 원한다. 두유를 먹이면 뱉아내고 만다.

40대 후반이나 50대가 넘어가면 식단이 주로 야채, 잡곡, 무농약 식품 쪽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에 대한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나 중심의 생각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게 된다. 높은 산에 올라 갈 수록 멀리 보고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성장하게 되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르려면 반드시 말씀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과정과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훈련의 과정을 통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 분별을 가질 때 우리 자신을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다. 할 말인지 아닌지, 가야 할 곳인지 아닌지, 먹어야 할 것인지 아닌지... 우리 모두 성숙한 분별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4.몸으로 드리는 예배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네 번째 단계는 결론이다. 사도 바울은 연역적 방법으로 서술했고, 나는 귀납법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결론적 목표는 같다.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비난 받는 이유도 이중적인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으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크게 둘로 요약할 수 있다. 

1)교회의 공식 예배에 충실한 것을 말한다.
이전에는 주일날 비가 오면 목사님들이 근심했다. 오늘 날이 궂으니 예배 빠질 사람들이 많겠군..., 그러나 요즘에는 비가 오면 목사님들이 좋아 한다. 비오는데 놀러가는 것 포기하겠지...

대통령 재임 때보다 퇴임후 더욱 빛난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이 있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다. 그는 재임 당시 매 주일이면 워싱턴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주로 날아가서 주일 예배드리고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충실히 감당했다고 한다. 

꼭 그렇게 극성을 부려야만 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예배를 통해 영적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예배를 쉬면 영적 공급선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주일날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라. 그리고 수요예배도 중요하다. 그것은 냇가의 징검다리와 같다. 나는 소망한다. 예배때 마다 성도들이 기쁨으로 나와 함께 예배드리는 그날을...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를 소망한다. 

2)교회당 밖에서의 예배
안에서의 예배는 성공하지만 밖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청교도들은 이와 같은 이중적 태도를 거부했다. “교회 안에서 거룩하고 나가서 막 사는 것은 성도의 삶이 아니다. 설교도 거룩하지만 목동이 양떼를 지키고 농부가 농사 짓는 일도 거룩하다.” 성속을 구별하지 않았다. 
예)1년에 100명 씩 전도하는 이발사 집사님 이야기.

이것이 삶의 예배요, 거룩한 산 제사요, 영적예배인 것이다. 주일의 예배가 평일날 삶의 예배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밤 늦게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이 육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단횡단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은 예배와 삶이 나뉜 것이다. 예배의 실패다.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줄 아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교회 바로 앞에서 교통신호 지키도록 하세요. 예배와 관계 없다고 한다면 아직 분별력이 없초신자라 할 수 밖에 없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그러나 고인물은 썩는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매일 매일 변화되고 성장하지 않으면 무능력해지고 세속화되고 만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맛을 잃으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밟히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분 분하지 않은가? 여러분, 부끄럽지 않는가? 정말 각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말씀을 가까이 하라. 모이기를 힘쓰라. 그리고 옛사람의 습관들을 과감히 버리라. 그리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고 내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변화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인식하라. 우리가 성도다움을 회복할 때 심령의 부흥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시대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예수, 오직 교회라고 믿는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가졌던 교회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불안하고 혼란한 세대 가운데 이 곳에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 모으셨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건강한고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교회, 그 교회를 위해서 우리를 불러 모으셨다. 

여러분, 적당한 신앙생활로는 이 사명, 이 목표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부족한 줄 알고, 또한 교회를 향하여 세상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해도 이것이 옳은 일이요, 사명이라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 목표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반드시 이루실 줄 믿는다. 

우리는 지체예요. 서로 도와야 해요. 저는 부족합니다. 절 좀 도와주세요. 사랑합니다.
 (원영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