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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부부, 행복하지 못한 부부 (삼하 6: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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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부부, 행복하지 못한 부부 (삼하 6:16~23)
      
  미국에 T. D. Jakes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 최고의 흑인 설교가요 가히 미국 최고의 설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집회를 열면 전국에서 수만 명씩 참석해서 일주일동안 그의 설교를 듣습니다. 특별히 T. D. Jakes 목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퍼런스로 유명합니다.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에 대한 컨퍼런스에서 남자가 설교한다는 것이 좀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여성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는 초미에 자기의 아내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흑인교회의 문화인데 사모를 first lady - 영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자기 아내를 청중 앞에서 일으켜 세우고 ‘나의 아내, 나의 베스트 프렌드요, 나의 연인이요 나의 여자 친구요, 나의 반려자입니다.’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텐데 미국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좋아합니다. 저는 사람 앞에서 자기 아내를 그렇게 추켜세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드리는 김에 또 다른 사례를 말씀드리면 Kenneth Copeland라는 미국의 부흥사가 있습니다. 그는 소위 번영의 신학을 대중화시킨 인물입니다. 그의 부인 Gloria Copeland도 부흥사입니다. 그래서 집회를 열면 낮에는 부인이 설교하고 저녁에는 남편이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Kenneth Copeland가 자기 아내를 소개하기 전에 이런 일화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총각이었을 때 미국 아칸소 주의 어느 호텔 바에서 아주 술에 취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중년 남자가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하는 말이 ‘내 딸은 아칸소에서 가장 미인이다.’ 그러더래요. 술 취한 사람이 말하는 것을 곧이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 그러세요.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고 무시했는데 그 딸이 술 취한 아버지를 모시러 호텔 바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아버지 말이 맞더래요. 정말로 아칸소 주에서 가장 미인이더래요. 그게 바로 지금의 나의 아내라면서 자기 아내를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되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뭔가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자랑하면 뭐라고 합니까? 팔불출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내를 깎아내려야 되는 것처럼 인식이 돼 있지만 사실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말하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앞서 말씀드린 T. D. 제익스 목사가 정말로 자기 아내를 베스트 프렌드이고 연인이고 여자 친구이고 반려자라고 생각하면서 산다면 그는 매우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여자들을 위한 컨퍼런스에서 강사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남자들을 위한 컨퍼런스를 하더라도 참석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행복한 부부를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아브라함과 사라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행복한 커플이라고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건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아브라함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산 것 같습니다. 자기 아내가 그 당시에 자기 아내가 60, 70 정도 되었는데 그래도 남편의 눈에는 아내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였다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두 번째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으니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씀을 듣지 않고 어떻게 생존하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삼천년 전에 아브라함이 아내의 말을 존중하고 아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뭔가 그들의 결혼생활의 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슬퍼하며 애통해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닉슨 대통령의 영부인 베티 여사의 장례식 장면을 TV로 잠깐 본 적이 있는데 닉슨 대통령이 얼마나 우는지 그걸 보니까 정말 가슴이 찡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 아내의 장례식에서 그렇게 슬퍼하는 것은 그건 뭔가 그들의 인생의 반려자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아브라함도 물론 재혼을 하기는 했습니다마는 자기의 아내의 장례식에서 애통하고 슬퍼했다, 그 장례식 장면이 창세기에서 한 장을 차지합니다. 한 장을 할애했습니다. 그만큼 거기 비중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네 번째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십 오년을 기다려서 아들 이삭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믿음을 가르치시고 인내를 가르치시고 여러 가지 영적인 교훈도 담겨져 있지만 그들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이십 오년을 기다리게 하셨다는 말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서로 열심히 사랑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약속이 그들의 삶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과정에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스토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삶에 트러블이 없었느냐? 천만의 말씀. 트러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고 결국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성경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부부는 누가 있었을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과 미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의 부부싸움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느 부부도 부부싸움 한 번 하고 갈라서지 않습니다. 권투시합과 같습니다. 권투선수가 KO 당하는 것은 강펀치 한 방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고 시합 도중에 맞는 모든 펀치가 누적되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과 미갈도 여기에 기록된 이 부부싸움 이전에도 다투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동안 누적되었는데 오늘 이 갈등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파경을 맞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이 파경을 맞았는지 어떻게 아느냐? 23절에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왜 자식이 없습니까? 서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부의 관계가 더 이상 성립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부부가 꼭 이혼을 해야만 파경을 맞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가 장부상으로는 파산을 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파산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서류상으로 이혼을 안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파경을 맞은 부부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다윗은 재능이 많은 위대한 인물이에요. 요즘말로 하면 잘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용맹이 있고 예술적 감각이 있고 사람들에게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에게도 집안일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집안일로 인해서 많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자식들끼리 서로 죽이지를 않나, 또 이복누이를 겁탈하지를 않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지를 않나, 집안에 풍파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최고의 임금이면서도 시편에서 그의 아픔, 하나님에게 그의 하소연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갈은 또 누구입니까? 제가 한번은 어느 미술 갤러리에 심방을 간 적이 있는데 갤러리의 이름이 ‘미갈’이에요. 그래서 성경에서 이름을 따왔나 보다 그랬더니 알고 보니 그게 아니고 아름다울 美자, 아름다움을 갈망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미갈이라고 지었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미갈은 그런 미갈이 아니고 오리지널 미갈입니다. 사울왕의 딸입니다. 공주에요.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구절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결혼은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입니다. 적어도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결혼이 파경을 맞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윗과 미갈은 그야말로 선남선녀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최고의 신랑감, 미갈은 공주, 엘리트 중의 엘리트끼리 만나서 결혼했는데 그리고 처음에는 애정이 있었습니다. 잘 살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혼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못했습니다.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면 배경, 학벌, 가문,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될 사실은 그것이 결혼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냐 하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주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혼율이 높아지고 결혼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봤더니 재미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많고 또 이혼을 쉽게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 중에 부모님이 헤어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부모가 이혼한 친구가 많을까, 그러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이게 이들의 현실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도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제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배경이나 학문이나 가문이나 이런 것보다도 과연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살 것이냐 이것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됩니다. 결혼 생활이 성공할 것이냐를 고려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도 양보하고 자식도 양보해야 됩니다. 부모는 자기의 요구사항만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모도 양보해야 되고 자식도 자기 고집만 부려서는 안되고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부모님의 지혜,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됩니다. 서로 양보해야 됩니다. 부모는 자식의 애정, 판단을 좀 더 신뢰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결혼하는 당사자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하고 정직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만약 남의 이목을 의식한다든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결정하면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혜롭고 겸손한 마음으로 판단해야 되는데 그것도 사실은 축복이에요.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여기에 몇 가지 이들의 결혼생활의 파경의 이유를 가늠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데 첫째는 16절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미갈이 남편을 업신여기니까 입으로 비판하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걸 남편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아첨에 약합니다. 빈 말이라도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해요. 당신은 멋있어요.’ 그러면 진짜인줄 압니다. 그러나 업신여기면 그것은 파경으로 가는 첩경입니다. 미갈이 왜 다윗을 업신여겼느냐?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의 의견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울의 딸이기 때문에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서 춤추는 것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그것을 숨길수가 없는 것입니다. 업신여기니까 결국은 그것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이 결혼생활에 큰 상처를 입힙니다. 온달 같은 남편과 결혼했을지라도 존중해줘야 됩니다. 그것이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한 번 자존심 상한 말을 들었다고 삐졌습니다. 이게 정말로 대장부인지 한번 자존심 상한 말을 들었다고 아내를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은 남자는 쪼잔한 남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무슨 남자가 이렇습니까. 한번 마음이 상하면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면 사람이 남자가 어떤 수고를 하든, 어떤 공로를 세우든 그것을 사람들이 다 알아주면 좋지만 다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세상이에요. 그것이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것이 아니에요. 

  제 친구 목사가 한번은 제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내에게 물어보더라구요. 
  ‘당신은 내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나요?’
  그 말을 듣고 친구의 아내가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sometimes - 가끔’ 
  그렇게 대답하던데 저 같으면 자존심 상했을 겁니다. 저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답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실 아내가 남편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다면 그 자체가 대단한 것입니다. 같이 사는 남편의 설교를 들으면서 한번이라도 은혜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위대한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남자가 자존심이 상할만한 일은 세상에 많습니다. 남자들이 쉽게 싸우는 이유가 뭐냐? 자존심 때문입니다. 마치 수사슴이 서로 뿔을 마주대고 싸우는 것처럼 남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싸웁니다. 그러나 동시에 남자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느냐? 자존심을 굽히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군대에서도 배우고 직장에서도 배우고 가정에서도 배웁니다. 

  사자의 세계에서는 새끼 사자가 아빠 사자보다 먼저 먹이를 먹으려고 하면 아빠 사자가 새끼 사자를 뭅니다. 그래서 누가 보스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남자의 세계에요. 남자들은 그러므로 자기의 자존심을 굽히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이건 신앙적으로도 필요한 것이고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고 가정에서도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도 어른들 앞에 자기 뜻을 굽히고 또 세상에서 대접을 받더라도 가정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대접받는 게 아닙니다. 다윗이 세상에서는 임금이지만 자기 아내에게도 임금은 아닙니다. 자기 아내에게는 남편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임금대접 받기를 요구하다가는 본인도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부부와 다윗 부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무엇이었느냐? 아브라함과 사라는 트러블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다윗과 미갈은 트러블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해로를 했고 다윗과 미갈은 파경을 맞은 것입니다. 트러블이 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트러블 없는 부부 없습니다. 다 트러블이 있습니다. 그러나 트러블 때문에 파경을 맞는다면 세상의 어느 부부가 같이 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함께 트러블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 트러블을 극복하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애정에 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애정은 참 귀중하게 보존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남편 필립공 사이에 이런 일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의견차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필립공이 화가 나서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잠갔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가 똑똑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요?’
  ‘나 여왕이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또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냐니까?’ 
  ‘당신의 아내요.’ 
  그랬더니 삐거덕 거리면서 문을 열어주더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상처도 이해해줘야 되지만 남자의 상처도 이해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상처를 입기 쉬운 존재에요. 다윗 같은 남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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