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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 최고의 가치 (빌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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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가치 (빌 3:1~9)

사람은 자신이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물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은 오로지 돈을 버는 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명예와 권력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투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기 위한 구제활동과 사회봉사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은 무엇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디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 고백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전부 배설물로 여긴다”라며 자신의 고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침입하여 복음의 순수성,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희석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에 구원이 있는 것인 양 성도들을 속이면서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단은 교묘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단의 최고 목표인 것입니다. 이에 속아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사단의 꼭두각시가 되고 맙니다. 복음이 아닌 것에 마음을 두고 허송세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영적 눈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 최고의 가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모든 성도 여러분이 어떠한 사단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성을 구축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유일한 자랑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 3:1) 본문의 ‘같은 말을 쓰는 것’이란 복음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반복하여 가르쳐 주는 것을 이릅니다. 바울은 이렇게 반복하여 가르쳐주는 것이 전혀 수고롭지 않으며 이것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참 진리를 밝히는 일은 아무리 반복하여도 지나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같이 말했던 까닭은 당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율법주의자들에게 속아 자꾸만 영적 진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아주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여 율법주의자들에 대하여 경고를 합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빌 3:2) 바울이 이렇게까지 과격한 표현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 외의 다른 복음,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외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육체의 할례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행해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 만에 생식기 끝을 잘라 피를 흘리게 함으로 하나님과 피의 언약을 맺은 것이 아브라함 때부터 내려오던 유대인의 할례 풍습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의 보혈로 영적인 할례가 이루어진 이후는 이러한 육신적 할례는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는 일반적인 상식의 수준에서 생각해 보아도 모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할례는 남자에게만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여자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인데 이는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듯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해하게 만드는 율법주의자들을 개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의 개는 애완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떼를 지어 떠돌아다니면서 오물을 먹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행인들을 공격하는 들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흔히 경멸스러운 존재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룩한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갈 1:8~9 말씀을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 분명히 못을 박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들이 진리라 여기며 믿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각 종교의 신앙과 교리는 인생을 사는데 있어 윤리적이고 올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근본 문제인 창세기 3장의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떠난 문제, 죄 문제, 사단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 3:3)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어떤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이란 헬라어 원문에서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성령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강단메시지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붙잡고 다시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궤도 수정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예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영적 최우선 순위인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율법주의자들과 같이 자기 것을 드러내게 됩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다가 결국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 진리의 참된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최고의 가치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 3:4~6)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예수를 믿기 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것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바울은 당대 최고의 것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왕족 출신인 베냐민 지파였으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 엄격한 규례를 따라 사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는데 열심이었고, 해박한 율법적 지식을 가졌던 바울은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그만큼 자부심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랬던 그의 삶이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7~9) 이는 바울의 체험적 고백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에게는 과거에 자신의 배경이 되었던 것들이 더 이상 최고의 가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에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이제는 도리어 해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의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방해거리가 될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선포합니다.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본문의 ‘가장 고상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페레콘’이라 하는데 이는 ‘탁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 최고의 가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더 나아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는 완전 복음 체질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 전체에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힘입어 마음껏 복음을 증거하고 싶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결단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게 됩니다. 마 13:44를 보면 예수님께서 ‘밭에 감추인 보화’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비유 말씀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밭을 갈다가 보화 상자를 발견하게 되자 그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은 왜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 밭을 샀을까요? 밭에 감춰진 보화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팔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붙들고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도 아직 과거의 것, 육신적인 것, 옛 습관에 매여 있다면 이는 배설물을 붙들고 있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최고의 가치가 있는데 왜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무익한 것은 모두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상태, 완전 복음체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9~11)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멸시하였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인생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육신 문제, 환경 문제, 경제 문제를 해결하여 줄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도 기독교를 이와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를 정화하고, 빈민을 구제하고, 선행을 베푸는 것이 기독교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영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 영원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며 그 핵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3)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더 찾을 것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 최고의 가치라는 분명한 해답을 찾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인생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발견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권력, 쾌락에 생을 걸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에 생을 걸고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인생 최고의 가치를 알고, 예배를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하여 성령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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