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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은 예수, 산 예수 (요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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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수, 산 예수(요21:1~11)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주말이 되자 목사님이 주보 원고를 작성해서 인쇄소에 보냈습니다. 원고를 검토하던 인쇄소 직원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일이 부활주일도 아닌데 부활 찬송이 들어 있네요. 혹시 목사님이 실수로 그러신 게 아닌지요 ... ?”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거요? 제가 일부러 그 찬송을 고른 건데요. 부활절에만 부활 찬송을 부르나요? 매 주일이 부활절인데요, 뭐.”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어쩌면 우리도 그 인쇄소 직원처럼 부활찬송은 부활절에만 부르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건 전적인 오해입니다. 부활절 절기는 1년에 한 번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늘 살아계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부활찬송을 부를 수 있고, 또 불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절은 한 번 지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내년 부활절까지 덮어두는 게 아닙니다. 부활절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매주일이 부활절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신약 시대인 지금 주일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안식일 후 첫날’인 지금의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주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더 나아가 매일이 부활절입니다. 왜 그럴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매일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도 중요하고, 장차 성도된 우리가 부활할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왜 많은 크리스천들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갈까요? 분명히 예수를 믿는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부활하셔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십자가에 죽은 예수만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관념적으로, 이론적으로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스타일의 신앙으로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와 같은 신앙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 실패의 밤 : 죽은 예수를 추억하는 제자들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세번째 나타나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등 개인에게 나타나신 것을 포함하면 일곱 번째 나타나신 사건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제자들이 디베랴 호수(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 하도 커서 바다라 부르기도 함)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만나자고 전갈을 보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어 번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어리벙벙한 상태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여전히 ‘죽은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실패의 밤을 경험하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에 머물던 제자들이 무료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당장 먹을 게 없어서 그랬는지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그들 중에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베테랑 어부들이 끼어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특성 상 주로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낮에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밤새 그물질을 하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3절. “ ...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제자들은 밤새 수고하였지만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날이 샜습니다. 정말 날이 샜습니다. 안타깝게도 바로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도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여전히 ‘죽은 예수’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그들의 문제였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이런 문제점을 잘 지적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안식 후 첫날(지금의 주일)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 시신에 향품이나 발라드리려고 간 겁니다. 그런데 바위 문이 치워져 있고 무덤이 비어있습니다. 여인들은 당황합니다. 그때 천사들이 나타나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눅24:5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는데, 어찌하여 ‘산 예수’를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죽은 예수’만 추억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빈 무덤’과 ‘빈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상을 보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달려 있는 십자가상과 그냥 십자가상입니다. 둘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우리는 ‘빈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이제는 부활하셔서 비어 있는 그 십자가를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왜 베드로와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까? 그들이 왜 실패의 밤을 맞이했나요? 산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죽은 예수 생각에만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멀리 떠난 것과 같습니다.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믿는 게 아닙니다. 불신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죽은 예수만 추억하고 있으면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바로 그런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5절 보니까 예수님이 다가오셔서 묻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들은 쓸쓸히 대답합니다. “없나이다.” 철저히 실패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분명히 그들은 경험도 많고, 기술도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왜 허탕을 치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합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제아무리 땀을 흘려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이 없이는 결국은 실패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입니다. 제아무리 잘난 가지라도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별짓을 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지에게 있어서 최우선순위(first priority)는 붙어 있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시편 127편 보면 그 잘나가던 솔로몬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인간의 삶은 헛수고라는 겁니다. 재주가 많아도 소용없고, 노력을 해도 소용없고, 부지런해도 소용없습니다. 


[2] 승리의 아침 : 산 예수를 만난 제자들

그러므로 산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실패의 밤을 끝내고 승리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산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잘 보면, 부활하신 예수 즉 산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상황이 역전됩니다. 실패가 승리로 바뀝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일이 부활절이라고 생각하고 ‘산 예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매일이 부활절이라고 생각하고 ‘산 예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의 삶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실 때 남기신 말씀입니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잘 보면 이상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함께 있겠다니 ... 말이 됩니까? 말이 됩니다! 어떻게 말이 됩니까? 성령을 통해서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성령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인데, 그 중 요14:16~19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예수님이 승천하시지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말은 ‘곁에 와서 도와주는 분’ 즉 ‘도우미’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또 다른 보혜사를 상담자(NIV - another Counselor), 위로자(KJV - another Comforter), 그리고 도우미(NASV - another Helper)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주목할 것은 ‘또 다른’(another)이란 단어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 바로 성령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육신적으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영적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겁니다.

막16:19~20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어떻게 함께 해 주시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육신적으로는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계시지만, 영적으로는 지상의 제자들과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놀라운 표적이 나타납니다. 이게 바로 산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방식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의 신앙 방식이요 생활 방식입니다. 이처럼 산 예수와 동행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승리의 비결 : 산 예수와 날마다 동행(의지, 순종) 

그렇습니다! 우리가 산 예수와 동행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산 예수와 동행, 성령님과 동행, 이게 바로 참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이 있으면 우리가 부족해도, 어떤 형편 가운데 있어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산 예수와 동행하는 방법이 어떤 것들일까요? 

① 산 예수를 의지할 것 :

본문을 보면 제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반전되는 모멘트(계기)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처음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 봤습니다. 그러다가 맨 먼저 요한이 알아봅니다. “얘들아~ 주님이야!”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첨벙거리며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다른 제자들도 배를 급히 몰아 예수님께 갑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맞이합니까? 9절 보시죠.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조반을 미리 준비해 놓고 그들을 맞아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갈릴리 해변 숯불구이 파티가 벌어진 겁니다. 산 예수와 함께 하기에 이제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평안과 기쁨, 그리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면, 산 예수와 함께 하면 모든 공포가 사라집니다. 평안이 넘칩니다. 요20:19~21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죠.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 공포에 질려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평강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하늘의 평강이 넘칩니다. 

마11:28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은 근심과 걱정이지만, 예수를 만나면 평안과 기쁨입니다. 심지어 죽음의 공포조차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여러분,『쿠오바디스』라는 영화를 아시죠. 폴란드의 소설가 솅키에비치(P. Sienkiewicz 1846∼1916)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네로 황제 당시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미치광이 네로가 로마 시내에 불을 질러 놓고 궁지에 몰리자 기독교인들의 짓이라고 뒤집어씌우고 박해를 가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교회의 존립을 염려한 성도들이 수사도인 베드로를 급히 피신시킵니다. 로마를 막 빠져나가는데, 마침 동편에서 해가 떠오릅니다. 찬란한 광채 가운데 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가 깜짝 놀라 묻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내 양떼를 버리고 가니 내가 로마에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리라.” 그러자 베드로는 무릎 꿇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복음을 증거하다 체포되어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산 예수를 의지하면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겁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데, 죽어도 천국인데 ...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산 예수를 의지함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과 풍성함을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② 산 예수께 순종할 것 :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때 그 말씀에 순종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6절 말씀 봅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얼마나 많이 잡혔나요? 11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 하였더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대목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많이 잡았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이룬 것들은 바벨탑입니다.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부작용이 있습니다. 줄줄 샙니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무언가 많이 이룬 것 같은데 공허하고, 돈을 열심히 버는 것 같은데 줄줄 샌다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그물질을 하면 빈 그물이 되거나 잡혀도 그물이 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부작용이 없습니다. 안전합니다. 견고합니다. 그러므로 괜히 자기 힘과 재주를 믿고 꺼떡거리지 말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함으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크리스천 문인인 오혜령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현재 전도사로 목사의 아내로 ‘평화의 집’을 운영하며 무의탁 노인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을 때 예수님을 멀리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미션스쿨을 나오고 미션스쿨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터라 예수를 지식적으로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명 작가로 잘 나가던 시절 예수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털컥 위암과 임파선암에 걸렸고,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을 기억했지만,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와 찬양으로 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온 몸에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느낌이 이상합니다. 겨드랑이에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겁니다. 또 복수로 차올랐던 배도 꺼져 있었습니다.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한 오혜령 씨는 후일『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기도묵상집) 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 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중략) 날마다 호숫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멀리 떠나서는 별수 없는 빈 그물 인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떤 예수를 믿고 살아갑니까? 죽은 예수 입니까? 산 예수입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살아계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매일 부활절입니다. 산 예수와 함께 하면 실패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기적의 현장, 축복의 현장이 됩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고 모쪼록 산 예수를 의지하고, 산 예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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