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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계신 주님 (눅 24: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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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주님 (눅 24:30~36)  

신앙은 2가지로 구분을 한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아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알기는 너무나도 잘 압니다.
.옛날에 회장도 해 봤고요, 
.교회에 대해서는 별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교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요,
.토론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알기는 아는데 믿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이해하고, 알 뿐이죠.

두 번째로는) 믿는 신앙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나타난다”는 막16;17절의 신앙입니다.

성경의 기록된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주님의 부활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시고,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당당하게,
.일어나시고,
.담대하여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기는 알아도, 믿지를 않으면 절망을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보세요.
저희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신데도 주님인 줄을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러 가지 이적과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에 앞날의 출세는 따고난 장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아무런 힘이 없이 끌려가신단 말입니다.

뭔가 다를 실 줄 알았는데 매가리 없이 그냥 십자가 위에서 그냥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속았구나! 
속았구나.

자조 합니다.
한탄 합니다.
그래서 돌아 선 것입니다.

어디로요?
엠마오로 돌아 선 것입니다.
17절 에서는 아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었다” 하였습니다.

나머지 11명의 제자들은 어느 집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포기 합니다.
이미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보았지마는, 오직 하나 부활의 믿음이 없으니, 슬픔과 절망으로 빠지는 것입
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그냥, 언제나 걱정 근심이 끊이지를 않고요,
낙망하고,
절망하고,
흔들거리고요,

그 원인은 부활하신 주님,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믿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표적이 있는데, 알기는 알아도, 믿음이 없으니까,  
.불안하고, 
.두렵고, 
.낙심되고, 
.소망이 없고, 
그런 거 에요.

낙심이란 매우 무섭습니다.

세계2차 대전 때에 사망자가 20만 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전쟁이 무섭고, 또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서  죽은 사람이 자그마치 100만 명에 달한다는 거 에
요.

절망과, 낙심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5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부활하신 주님,
살아나신 주님을 모르면, 
낙심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은, 
.절망을 이기게 합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뀌게 합니다.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 서게 합니다.

침묵 하시는 것 같아도요,
가만히 계시는 것 같아도,
심지어 우리를 내 버리신 것 같아도,

부활의 믿음은 결국 우리를 소망으로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절망이 찬송으로 바뀌는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확신이 없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31절에서는 “눈이 밝아졌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찾아와 주셨고,
.확신을 주셨고,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엠마오를 향하던 두 명의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 달라졌습니다. 

32절을 읽어 보세요.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하고”

우리에게는,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이 마음이, 뜨거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마음이 뜨겁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은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이고,
.주님이 나를 떠나시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이 뜨겁다는 것은 나의 생활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언제나 마음이 식어지지 아니하고, 뜨거워지시기를 축원합니다.v

부활의 신앙을 가지면, 부활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니 즉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33절을 보세요.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살아 계신 주님을 믿으면 주님을 전 하게 됩니다.
삶의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33절에 ‘곧’ 이라는 단어는 지체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비록 날이 저물어서, 이미 해가 다 기울었지마는 그래서 29절에 “때가 저물어  가매” 했지마는 날이 새기
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주님을 만나면 즉시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목표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목표가 사라지면 쉽게 절망하고, 너무 쉽게 인생을 포기합니다.

.네로황제는 로마의 통치자로 15년간 군림 하였습니다.
.그가 사는 궁전의 복도는 1마일이나 되었고,
.궁전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꾸며졌고,
.천장에서는 값진 향수를 뿌리는 시설이 되어 있고,
.10만 불이 되는 왕관을 쓰고,
.한 번 입은 옷은 다시는 입지 않았고,
.수많은 향락을 즐기면서도 만족이 없었고,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대한 야심과 세상의 부귀에 집착을 하고 살았지마
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살아계신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이 믿음 그리고 이 전파는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에 참된 기쁨과 감동을 줍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
삶에 의미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삶의 푯대를 심어 줍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지셔서, 뜨거운 가슴으로 기쁨을 전하고 언제나 소망이 가득한, 행복한 인생을 사시기
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아멘.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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