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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할주일] 부활의 증거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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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 (요 20:19-23)
 
  어느 노인이 신약성경을 다 읽고 나서 그 성경에서 가장 감명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노인은 두말하지 않고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존. S 웨일’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로 그 증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확신하는데서, 우리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그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하나의 환상이나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분명한 사실로 네 복음서와 그 밖의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증명하는 분명한 것은 빈 무덤입니다. 고고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자 그렇게 애를 써 보았어도, 그 빈 무덤의 확실한 증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빈 무덤과 함께 성서의 증언자들의 증언이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서신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께 전해드린 말대로, 여러분은 복음을 굳게 잡고 있으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그 복음으로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고전15:2-6)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드림으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모든 말씀은 사실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이 땅에 오심, 그분의 사역 십자가에서 죽으심 부활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시는 재림 주님의 신령한 부활처럼 우리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신천신지에서 영생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에대한 증거임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고전15:13-21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의 주님으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평강과 기쁨이 부활의 주님을 확증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가운데 기도교인들에 대하여 쓴,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드린다. 그들은 장례를 위해 묘지로 갈 때도 즐거운 소풍이나 가듯 노래를 부르고 행진한다” 부활의 주님과 살아가는 사람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그 환경에 지배되지 않는 평강과 기쁨의 사람들임을 말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가지고 삽니다. 이 평강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확신과 함께 사망권세를 정복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데서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는 평강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교회들에게 이 평강이 함게 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이 평강이 넘쳐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평강이 있음을 확증하는 데서 부활의 증거를 가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 살아감으로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의 확신을 가지게 되기에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더럽고 악한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어떤 영으로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더럽고 악한 영은 사단에게서 나오는 영입니다. 이 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더럽게 행동하고 악하게 살아갑니다. 비겁하고 흉악하며 파괴하고 멸망되게 합니다. 이 더러운 영은 사람의 본능을 도구로 삼아 인간을 철저히 욕망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더러운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이 죄인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무엇이 잘못이고 부끄러움인지를 깨닫지 못하도록 무감각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음란과 사치와 방종과 타락과 생명의 파괴와 정치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만든 더러운 인간역사 때문입니다.    

    (안양초등생 살인사건/ 정모씨의 금찍한 시체유기)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성품을 그리스도의 성품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이상으로 삼고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받으라고 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성령)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요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진리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에 부활의 주님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 사도들과 교회 이천년 역사가운데 보내어진 사람들 -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활의 증거가 분명한 것은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살아있는 체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들에게 부활을 확증하게 하는 체험은 무엇입니까?   

  눈먼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은 하늘 높이 날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지금 네 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니?” 그러자 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제 연이 지금 하늘 높이 날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넌 볼 수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 연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잡고 있는 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것을 보아서 제 연이 하늘 높이 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목격하고 확인하지 못할지라도 부활의 주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을 팽팽하게 당겨주어 생명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체험하기에 부활의 주님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한 인생을 살다가 가신 위대한 분만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셔서 영생의 삶을 주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구원자이십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의 삶을 만드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기쁘게 하셔서 능력과 평강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진리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 분은 2000년전 무덤에 묻히신 그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 분과 함께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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