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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 신앙의 유익 (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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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유익 (고전 15:50-58)

    오늘은 부활절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된지 사흘 만에 다시 사신 날이다. 이 사건은 죽음 아래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복된 소식이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을 햇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로 이제는 우리 인생들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사단의 지배하에 있지 않아도 됨을 보여주셧다(히 2:14).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올까?("부활 신앙의 유익")

1, 더 이상 죽음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약해 질 수 박에 없다. 병원에서 의사의 나쁜 진단을 받을 때, 혹은 내가 탄 비행기가 공항에서 이륙하고 또 착륙할 때 사람들은 다 숙연해 진다.  - 혼자  배를 태워 멀리 바다로 내 보내면 무신론자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이 죽음의 공포는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릴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모두가 다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 떤다.  오히려 막강한 권력자가 죽음을 더 두려워 한다. 절대 권력자일 수록 죽음을 더 겁내고, 오히려 독재자가 죽음이 더 겁이 나서 자기 신변을 위해서 더 삼엄한 경호를 편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죽음이 우리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사망이 인간을 더 이상 묶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에수님처럼 부활할 뿐만 아니라 또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셨다.

   그런데 장차 부활 때의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충성스럽게 예수 믿다가 갑자기 당뇨가 와서 시력이 약해진 채  세상을 떠났을 때,  선교지에서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가 교통 사고를 만났을 때 팔 다리가 잘렸을 경우, 또 고혈압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어지나다가 최후를 맞았을 때,  치매가 와서 기억력을 상실했을 때, 한센씨 병에 걸려 온 몸이 문드러진 채로 임종했을 때, 암에 걸려 위를 도려내어 1/3 밖에 남지 않은 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등등 우리는 장차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까? 
   에스겔 선지자는 골짜기 지면의 마른 뼈가 살아 일어나서 극히 큰 군대가 되는 것을 보았다. 군인은 아주 젊고 왕성한 사람이어야 하고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된다. 시력,청각, 팔 다리 오장육부가 아주 튼튼해야 한다.  . 바로 그런 신체적 결함이 없는 완벽한 군인같이 부활케 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도 여러분!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움이 될수 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세상 끝날,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는 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장례식에서 앞서가는 성도를 떠나 보내면서도 찬송을 부르며 장례에배를 감사에배로 드린다.  그것은 성도들에게는 이미 죽음은 정복되었기 때문이다. 

2.견고한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어던 역경과 환란 중에도 담대한 신앙생활을 한다.  바벨론에 포로로  갔던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을 신으로 섬기는 일을 반대했다. 그리고 만일 바벨론의 다리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는 자는 사자 굴에 넣는다는 법령이 선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공공연하게 경배 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질 형편이 되었으나 그는 그때에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단6:10). 

    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나? 그에게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아벳느고도 느브갓네살의 금신상에 절을 안했다고 뜨거운 풀무 불에 던지웠으나 그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단3:17-18). 어떻게 그런 힘이 생겼을까? 그들에게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신자들은 많은 박해를 받아왔으나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들만 봐도 돌에  맞아 죽은자, 창에 찔려 죽은자, 끓는 기름통에 넣어 죽은자, 칼로 목베어  죽은자, 톱으로 잘려 죽은 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들이었지만  조금도 무서워 하지  않고 기쁨으로 담대히 죽으면서 도리어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스데반) 그들 모두는 부활신앙을 갖고 하늘 나라에 가는 희망에 넘친 미소를 띄우면서 찬송하면서 최후를 맞았다. 

3.생활의 변화(삶의 변화 - 인격의 변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신다. 딤후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바울 사도는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 같은 의미의 말씀이 갈라디아서에도 나온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오늘 세례식의 의미도 바로 그와 같다. 세례는 곧 엣사람이 장사되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골2:12-13). 그러므로 옛사람은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고(육체와 함게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다시 살자. 

    [208장] “주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망령된 행실을 끊고 ....주예수 내맘에오심  주예수 내맘에오심   물밀듯 내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예수 내맘에오심 .... 천성을향하여 내가 곧 가리니 그기쁨 비길데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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