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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첫 열매 (고전 1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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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첫 열매 (고전 15:20~26)

오늘은 부활주일(復活主日, Easter Sunday)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앞에 경배하는 여러분에게 부활의 참 기쁨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1] 부활의 역사성 :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를 믿는 성도들의 부활에 관해 아주 가장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부활’ 장(章)이라 부릅니다. 여기 보면 제일 먼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이 글이 기록된 1세기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지어낸 이야기(fiction)라면 성경이 거짓이 되고, 기독교는 더 이상 존립의 기반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이 분명히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 즉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전15:3~4을 보시죠.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성경에 예언되었던 말씀대로 성취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면 성경 전체를 부인하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가당치도 않죠. 2천 년이 지났지만 성경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만일 성경이 없는 야기를 지어냈거나 거짓을 기록한 책이라면 어떻게 오늘날까지 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욱 실감나는 증거는 부활의 목격자들의 존재입니다. 바울은 고전15:5~8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목격자가 많으니 직접 가서 물어볼 테면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더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순교도 불사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사도 요한만 밧모섬으로 귀양 갔다가 그 후에 자연사를 했을 뿐 모두 다 순교했습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초대교회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교자가 무려 6천 6백만 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이런 일은 도무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분명한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바울은 본문 20절에서 뭐라고 표현합니까? “그 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잠자는 자들이란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부활을 마치 잠을 자다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한 겁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활하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처럼 성도들이 부활할 것을 암시합니다. 
  

[2] 첫 열매의 의미 : 성도의 부활에 대한 보증, 견본, 소망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 되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살펴봅니다. 

이 말을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구약 성경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출23: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 ” 이것은 앞으로 거두게 될 모든 열매들을 미리 바친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큰 추수가 있을 것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리고 그 추수의 견본이요, 소망입니다.

① 보증 :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입니다. 본문 21절~23절을 보시죠.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인류의 시조 아담 때문에 후손된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짓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사람들(정확하게 말하면 믿는 성도들)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그리고 장차 부활할 겁니다. 그런데 순서가 제일 먼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이런 원리를 가리켜 ‘대표의 원리’(롬5:12~21), 그리고 ‘연합의 원리’(롬6:1~11)라고 부릅니다.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인 것처럼 예수님이 모든 믿는 자의 대표로 믿는 자들을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예수님께 연합되어 있으므로 예수님과 똑같이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으므로 우리 죄가 사해졌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새 생명 즉 영생을 얻었고 장차는 부활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② 견본 :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이 부활하되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 것인지 그 견본이 됩니다. 빌3:21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예수)는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무슨 말인가요? 장차 성도들이 부활할 때 그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부활체가 견본 즉 샘플이라는 겁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모델 하우스와 같은 겁니다. 아직 집이 지어지지 않았지만 모델 하우스는 샘플로서 장차 지어질 집의 모습을 미리 보여줍니다. 마찬가지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 우리 성도들이 장차 예수님 재림 하실 때 부활할 모습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전12:7)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가 새 옷을 갈아입듯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그때 우리 성도들의 부활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의 몸과 전혀 다릅니다. 완전히 변화됩니다. 눅24:36~43 보면 예수님의 부활체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갑자기 한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유령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못 자국이 난 손을 보여주면서, 구운 생선 한 조각을 잡수어 보이심으로 유령이 아닌 부활체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부활체는 시공을 초월한 자유롭고 신기한 몸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게 과연 가능할까 의아하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겨우내 추위 가운데 단단해진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늘 보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 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신기한 부활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42~44에 부활체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지금의 우리 몸은 ‘생로병사’입니다. 약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썩고, ... 그러나 장차 성도들이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썩지 않고 죽지 않고 강하고 아름다운 몸입니다. 

③ 소망 :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항상 소망이 됩니다. 우리는 비록 늙고 병들고 죽는다 할지라도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겁니다. 육체가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예수님 재림 시에 반드시 부활할 겁니다. 고전15:51~52 보시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 험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님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고전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는 천국이 확실하기에, 부활이 확실하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고, 괴로운 일을 겪어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조니 에릭슨이란 여성이 계십니다. 본래 다이빙 선수 출신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지긋하지만, 그분이 17세에 다이빙을 하다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목 아래부터 거의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생각해 해보십시오.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앞길이 창창하던 젊은이가 갑자기 그렇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좌절, 분노, 자살 충동 ... 우울증 등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런 사람을 구족화가라고 하죠? 장애인 후원단체를 만들어 자선 사업을 펼칩니다. 사람들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생겼을까 ... ? 그녀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하다가 변화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처럼 꼼짝 못한 채 십자가에 달려 비틀리고 마비되고 고통당하시다가 부활하셨다면 자기도 소망이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자신도 장차 온전한 몸으로,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자 모든 근심과 걱정, 우울증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분은 지금도 강연과 저술 등으로 통해 많은 사라믈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소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의 소망이 있으면 심지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별의 슬픔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영광과 상급이 분명하기에 세상의 일로만 분주한 게 아니라, 주의 일, 즉 복음 전파와 사랑의 실천 등 영원히 가치 있는 일들에 헌신하게 됩니다. 심지어 목숨도 바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영국의 한 마을의 교회에 목사가 새로 부임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구경하러 모였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단짝 친구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풍랑을 만나 타고 있던 배에 물이 차오르고 파선할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등대지기였던 소년의 아버지가 발견하고 보트를 저어 급히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탄 배는 그만 뒤집혀버렸습니다. 문제는 아버지가 타고 온 보트는 노를 젓는 아버지 외에 한 명만 더 태울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을 더 채우면 뒤집히고 맙니다. 그 사실을 아는 소년의 친구는 잔뜩 겁에 질립니다. 그 아버지가 당연히 자기 아들인 소년을 구할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그 소년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러다 멈칫 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손을 거둡니다. 놀란 소년이 아버지를 쳐다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다. 너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 네 친구는 아직 예수님을 안 믿잖니... " 소년은 아버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인사합니다. “그래요. 아빠 ... 천국에서 만나요 ... ” 아버지가 소년의 친구를 구한 것입니다.” 목사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에 가득 눈물을 흘렸습니다. 

뒤편에 앉았던 동네 불량배 몇이 수군거립니다. 
“뭐야, 저게 ... 세상에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어? 완전히 소설을 쓰네." 
“그러게 ~ ” 
그때 그들의 뒤에 앉아있던 한 노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닐세. 그 아버지가 바로 날세. 그리고 저 목사님은 바로 죽은 내 아들의 친구라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화라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부활의 확신과 소망이 있으면, 성령 충만하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주일 아침에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에, 크리스천으로서 영생과 천국, 그리고 부활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험한 세상 살지라도 죽음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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