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 (골 3:1~4)

  • 잡초 잡초
  • 422
  • 0

첨부 1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 (골 3:1~4)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그리스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모두 길에서나 집에서나 흥얼거리며 부르기 좋아하는 찬송가 하나씩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중 하나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일 것입니다. 
  이 찬송은 최고의 오페라 가수도 수없이 불렀고 팝가수도 예수님을 믿으면 제일 먼저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가사가 감동을 주고 곡조 역시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찬송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가사와 매력적이고 호소력 깊은 멜로디 뒤에 담겨진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찬송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자기 인생을 기적적으로 변화시킨 한 사람의 극적이고 참다운 인생 역전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찬송가를 작사하신 분은 존 뉴턴(1725~1807)이라는 목사님입니다. 그는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1살 나이에 무역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는 후에 잔인한 아프리카 노예 무역선을 타기도 했고 노예무역선의 선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존 뉴턴은 자신이 노예무역에 관한 일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잔인했던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서 활동했습니다.  

  존 뉴턴이 목회하던 런던의 한 교회에서 이분 말씀에 깊은 영향력을 받았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계에서 사회개혁을 도모한 영국의 젊은 정치가 윌리암 윌버포스(1759~1833)라는 인물입니다. 이 당시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유혈혁명을 통해서 사회혁명, 정치혁명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무혈혁명을 통하여 변화했고 그 후 빅토리아 시대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영적인물이 바로 윌리암 윌버포스입니다.  

  부활절을 즈음하여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책이 나왔고,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인간의 내적인 질서가 변화하고 자기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변하고, 정치가로서 법률과 나라 전체가 변화되면서 역사의 개혁이 일어나는 내용입니다. 윌버포스는 아주 용기 있고 대단한 끈기가 있는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도하면서 정치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는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 강조하면서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땅 위에 살고 있는데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허공에 떠다니면서 살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세속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홀로 산속에 들어가 사회와 단절하고 거기에서 거룩하게 살라는 뜻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누려온 세속적인 모든 것, 직업과 달란트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성직자가 되어 목회를 하라는 뜻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 있을까요? 사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이런 고민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윌버포스 역시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연설도 탁월하게 잘했고 노래도 훌륭하게 잘 했습니다. 그는 21세 영국의 최연소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회심체험을 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치적 신분을 다 포기하고 성직을 택하면 어떻겠는가?’그 때 그에게 충고를 해준 분이 있었는데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의 작사자인 존 뉴턴이라는 목사였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진지하게 믿고 싶어 하는 분들, 삶 전체를 드려서 예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분들은 때로 마음속에 신앙적인 억압감이 있습니다. ‘내가 참된 신앙인이 되면 하나님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새벽기도에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면, 또 내가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드린다고 하면 지금까지의 직업을 다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나 선교사로 헌신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처럼 스스로 마음속에 부담이 생겨서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믿으려 하지 않고 새벽기도를 나와도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헌신을 해도 내 것은 조금 남겨두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철저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철저한 사회인이 되는 것입니다. 
철저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철저한 희극인이 되는 것입니다. 
철저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철저한 직장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는 것은 내 분야의 전문성을 포기하고 주님께만 나오라는 의미나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문성을 갖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영역을 떠나서 목회의 길을 가려고 생각했던 윌버포스에게 존 뉴턴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면서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선과 이 나라의 선을 위하여 자네를 들어 쓰실 것이라고 소망하고 확신하네.”

윌버포스는 영국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기 위한 비전을 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꿈과 기독교적인 이상,기독교적인 가치관, 하나님 나라의 고리를 가지고 사는 정치 세계,경제 세계, 사회 세계, 문화 세계 등의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장소로 바꾸는 것입니다. 세속적이라고 치부했던 자리에 하나님의 뜻,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만들어 냈던 인물이 바로 정치가 윌버포스였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흔히 갖고 있던 이원론의 요소를 극복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오면 교인답게 살고 사회에 가면 사회인답게 산다는 말에 늘 이중적인 삶의 고민을 경험하고 있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는 1787년 10월 28일 28살 때의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 가지 큰 목표를 주셨다. 하나는 영국에서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 일이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마음속에 소원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변화시키고 싶었기에 조국의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악한 인습이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팔아넘기고 흑인들을 상대로 하는 노예무역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자기 민족의 아픔을 보면서 탄식할 때, 자기 민족이 갖고 있던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보면서 가슴으로 아파할 때 그가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인들의 삶은 도덕적인 위기에 놓였습니다. 잔인하며 야만스러웠고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많았고 아동과 여성들의 성매매가 흔했습니다. 아동에게 과도한 노동을 시켰습니다. 경범죄에 대한 빈번한 공개 처형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형당한 죄수의 신체 해부를 공개적으로 했고 다시 화형을 행했습니다. 동물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잔인한 놀이들이 행해졌습니다. 이렇게 당시 빈번했던 수많은 사회적 악덕과 폐단을 시민들은 즐기고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머리부터 썩는다’라는 영국의 속담이 있습니다. 영국 사회는 위에서부터 부패했습니다. 왕족과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성적인 문란이 벌어졌습니다. 런던의 미혼 여성들 중 25%가 매춘부였습니다. 당시 런던 매춘부의 평균 연령이 16살이었습니다. 이는 영국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천대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살도록 하신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비천한 생활이 그들의 가장 적절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변화와 개혁도 바라지 않던 시기에 윌버포스는 개혁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민족의 아픔인 노예무역을 폐지했습니다. 

  영국에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사회 속에 남아있는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노예무역이었습니다. 윌버포스에게 악덕 무역 선장을 지냈던 존 뉴턴 목사는 이것이 얼마나 잔인한 인권모독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말해주었습니다. 젊은 정치인 윌버포스는 존 뉴턴 목사의 말씀을 들으면서 노예폐지 운동에 사로잡힙니다. 그리하여 결국 노예 해방 운동에 앞장서게 됩니다. 그러나 노예폐지 운동이란 법률적인 개정안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가 수입원 중의 삼분의 일이 노예무역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국가 수익에 걸린 국책을 누가 쉽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국가 기관이 관여되어 있고 왕족과 귀족과 국회의원과 법관과 선박회사 보험사와 같은 집단들의 이익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 윌버포스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18년 동안 지독한 투쟁을 하며 수없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이것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33년 윌버포스가 죽기 사흘 전에 하원은 영국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지 전체에 모든 노예를 해방시키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놀랍게도 이 여파는 영국에서 미국까지 영향력을 미칩니다. 미국의 에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합니다. 에브라함 링컨은 자기가 영향 받은 사람이 윌버포스였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올바른 생각이 소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민족에 대한 고통과 아픔을 바꿔야겠다는 열정을 가졌던 사람을 통해서 영국의 역사가 변하고 미국의 노예해방까지 일어났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잘못된 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과 어둠의 권세, 부정과 죄악을 타파하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낡은 것, 깨진 것을 부수고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낡은 것, 잘못된 것, 타락한 것, 부패한 것을 예수의 생명, 예수의 사랑으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외면적으로 쉽게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슴에 하나님 사랑이 들어 있는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는가, 하나님의 법도가 살아 움직이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와 나라를 변화시키는 신앙의 힘이고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땅을 떠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고고하게 혼자 살라는 말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적인 영역을 거룩의 영역, 하나님의 영역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땅 위를 밟고 견고하게 서있는 세속의 중심에서 거룩함을 창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 위의 것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으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말씀하는 거룩함과 신약에서 말씀하는 거룩함이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언급한 거룩함이란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개념입니다. 거룩하게 되려면 세속으로 떠나야 합니다. 부당한 것을 만지면 안 되고 자꾸만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약에 나타난 거룩함이란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진취적이고 새로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마음에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영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거룩함이 임하면 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몸이 거룩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한 마음, 거룩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만지는 것이 거룩해진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내가 만지면 거룩해지지 않는데,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면 내가 만지는 것이 거룩하게 되고, 내가 서있는 장소가 거룩하게 되고, 내가 움직이는 자리가 거룩함의 자리로 바뀐다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 그 거룩함을 들고 나갈 때 삶의 현장인 가정과 직장, 이 사회가 변화됩니다. 윌버포스는 세상을 바꾸고자 자기 삶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 더 올바른 세상, 더 정직한 세상, 더 사랑이 충만한 세상, 더 풍요로운 세상,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힘차게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잘못된 것, 부정적인 것, 악한 것, 게으른 것, 부정직한 것들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받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게 되면 그만큼의 도덕적인 위치가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적인 자리, 거룩함의 자리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할 도덕적인 의무, 사회적인 변화의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 함께 생명을 얻었으면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이런 꿈을 꿉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성도들을 통해서입니다. 우리 안에는 정치가, 기업가, 문화인, 직장인, 과학자, 법률가, 의료인, 교역자, 가정주부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주어진 삶의 영역을 통해서 민족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믿는다는 것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나만 홀로 믿고 마지막 날 천국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신앙만 붙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세계 이 모든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를 펼쳐나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가정과 직장, 나라와 민족이 바꿔지는 놀라운 꿈을 가슴으로 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을 예수님의 약속을 통해서 받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 생명의 역사, 거룩함의 역사, 진리의 역사, 평화의 역사, 공의와 은혜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