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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능력 (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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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능력 (롬 1:1-7)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것은 범죄한 우리 인생들을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활을 통해서만 입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예수 믿고 죄 사함 받는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도 지어낸 허구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도들은 거짓 증인들이 되고, 우리는 거짓말을 참으로 믿고 따르는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언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사복음서를 비롯해서 사도들의 서신들이 그것입니다. 이 증인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의 증언이 진실함을  자기들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보증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이 순교로써 사명을 마쳤습니다. 거짓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더니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죽은 지가 오래되어 혈액이 수분으로 된 혈장과 적혈구, 백혈구 및 혈소판으로 이루어진 혈구로 분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로 싸여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 속에 안치되었고, 무덤 입구에는 커다란 돌로써 막고, 로마 총독 빌라도와 귀인들의 도장을 쳐서 봉인했습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대제사장들은 혹시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갈까 염려가 된다고 하면서 빌라도에게 사흘 동안 무덤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리하여 세계 최강의 로마 군사들이 무덤 앞에서 밤낮으로 굳게 지켰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성전 군관들과 하속들에게 붙잡혀가자 일제히 스승을 버리고 도주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치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그 날 새벽의 정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1)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9)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여자들이 갈제 파수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제자들이 보여준 변화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주했던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랐는데,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허무하게 처형당하고 나자 완전히 절망했습니다. 살아갈 의욕마저 상실하고 망연자실하였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처형당하신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서 숨어 지내던 곳의 문을 박차고 예루살렘 거리에 나타나서 나사렛 예수가 죽음에서 살아나셨다고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하여 담대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전혀 배우지도 않은 외국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각국에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사도들이 그들 나라의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을 보고 조롱하여 말하기를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때 사도 베드로가 군중 앞에 나서서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 곧 아침 9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가 종말에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대로 성령의 부으심이 실현된 것이라 이제 하나님의 심판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오직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보내신 나사렛 예수를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며, 이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심판을 위임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그 날에 무려 삼천 명이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이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있었는데, 베드로가 그를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곧 바로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던 많은 백성이 이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사도들을 체포해서 공회에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하기를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사도들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만일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층이 사도들의 활동을 막으려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는 점을 증명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입증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묵시적으로 시인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오순절 이후에 사도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으며, 사도들과 성도들의 전도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는 그로부터 2천년 동안이나 존속되어 왔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교회가 수천년 동안 극심한 박해와 세속주의의 공격을 이겨내고 건재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교회를 지켜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므로 음부 곧 죽음의 권세가 교회를 넘볼 수 없습니다(히 13:8). 

그리고 우리는 사도 바울의 회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전에 바울은 사울이라고 불렸는데,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고 자부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으니 그럴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눈에 예루살렘에 예수교도들이 늘어가는 것이 좋게 보였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알고 기독교를 박멸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작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 사울은 그 사건의 증인을 자처하고 그들의 옷을 맡아서 지켰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시작으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사울은 대제사장에게서 권한을 위임 받아서 집집마다 수색해서 기독교인들을 색출해서 매질하고 옥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섬기는 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살기가 등등해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했습니다. 그것은 먼 이방 도시인 다메섹에 사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해 오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이 무리를 거느리고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였습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그만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 때 공중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했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 때 사울은 빛으로 인해 소경이 되어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예수님을 핍박한 것을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성도의 안수를 받고 눈을 보게 되었을 때 즉시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날부터 사울은 180도로 변해서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일에 자기의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은 너무나 극적이어서 그 때까지 그를 알았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를 보고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미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정신 차린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핍박자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9장 1절에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고 했습니다. 그가 본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경험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기 때문에 그 때까지 그가 아끼던 부와 명예와 권세와 자랑거리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말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하였는데, 과연 드넓은 로마 세계를 종횡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네로 황제에 의해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부활의 산증인인 사도들의 증언에 의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뵌 적이 없지만 사도들의 증언을 신뢰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도마가 대답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니,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증언이 너무나 진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 없이 믿고 주님께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로마서 1장 4절에 보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인정되었다”는 표현은 “선포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디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부활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우리를 능히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심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보증하는 분이 계신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인정에 의해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온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리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우리의 삶 속에 경험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핍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4장 8절 이하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주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서 어떤 핍박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습니다. 이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스데반 집사에게 역사하였다는 증거입니다. 2천년 교회사가 입증하는 것은, 핍박이 기독교 신앙을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제국은 근 250년 동안이나 기독교를 극심하게 핍박했지만 기독교를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없애기는커녕 핍박하면 할수록 더욱더 힘입게 전파되어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기독교 신앙을 무자비하게 핍박했으나 70년이 지나 공산주의는 무너졌으나 기독교 신앙은 건재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된 것에 비유하시면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그 어떠한 악의 세력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으며, 또한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이길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인간사회는 안정을 잃어가고 불의해져 가며 흉측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사회의 도처에서 썩는 냄새가 납니다. 썩는 것은 생명력이 결핍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히 2:14). 

심각한 사실은, 세속의 거센 물결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밀어닥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힘만 의지한다면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사망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처럼 타락한 것은 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무리 완벽한 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집행하는 인간들이 부패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모실 때 어두운 생각이 사라지고 맑고 밝은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마음을 다스릴 때 악한 생각이 감히 발붙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장차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에 의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뿐 아니라 성도들의 부활도 믿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2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고 하셨습니다. 영생이란, 우리의 영혼만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혼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은 몸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영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은 거듭남이라고 하지 영의 부활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붙잡혀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원형극장에서 수많은 군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맹수들에게 던져지거나, 기둥에 묶여 산채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습니다(히 11:35). 

부활의 때에 우리는 현재 이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에는 지금과 같이 늙거나 병들거나 아프거나 상하거나 죽지 않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21절에 보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를 믿는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주님의 강림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원 받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고,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사귐을 갖는 신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지만, 동시에 성령 안에서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사도들처럼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핍박과 세속의 도전을 이기고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여러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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