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려주일]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 (갈 6:14)

  • 잡초 잡초
  • 451
  • 0

첨부 1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 (갈 6:14)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여러분 너무 잘 아시지요.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십자가 하나에서 답을 얻고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또 우리의 모든 교회의 출발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출발하여 십자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항입니다. 어디를 갔다가도 다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우리는 주님을 이곳에서 만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기독교의 힘은, 우리 성도의 힘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교회가  2천년 동안 제려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세상의 모든 힘과 능력이 다 무너져도 연약한 교회가 오늘날까지 온 것은 어떤 재정적으로 든든한 배경이 있어서, 권력이 있어서 제려온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총이,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시고 앞으로도 새새 무궁토록 십자가의 깃발이 있는 곳, 십자가를 자랑하고 높이는 곳에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게 됩니다. 

해수욕장에 가면 모두 해수욕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한 달 벌어서 일 년 먹고 살아요.’ 우리 성도들은 그렇습니다. 이 고난주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난주간, 부활주간에 우리가 받는 이 은혜가 지난 일 년 동안에 우리가 흐트러졌던 모습들, 추하고 잘못된 우리의 모습들을 바로 잡고 소생하고 치료받고 회복하게 되는 주간이 바로 이 주간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 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얼마나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느냐? 이것도 이번 한 주간이 우리가 얼마나 십자가 앞에 새로운 은혜를 받고, 바로 서고, 십자가를 바로 바라보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잘 해 나갈 때 여러분의 앞으로의 가는 길은 분명히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온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까?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구원을 창세기 처음부터 계획하시고 우리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제셔서 우리를 위하여 나무에 달리게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면서 우리를 살리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흐름입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성경 전체를 모릅니다. 십자가는 바로 온 인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흘리는 피가 우리 인류의 죄를 사하고, 여기서 당하는 채찍 맞으심과 고통이 우리 인류를 모든 죄의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죽음에서 건져주시고, 마귀에게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하나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다시 살아나신 이 부활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나는 자랑할 것이 이제는 하나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이 하나만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마 개인적인 자기 자랑을 하려고 했으면, 이런 이 세상에 최고의 자랑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는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사이는 모두 피알 하는 시대이지 않습니까? 피알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 해서 피알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많이 알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도 얼마나 많이 알리려고 하는지 그래서 만나서 대화를 하려고 하면 자기 자랑이 60퍼센트고 남 비판하는 것이 40퍼센트라고 합니다. 분석을 해 보면 제 자랑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다음에는 100퍼센트 예수님만 자랑하고, 나는 나를 자랑하지 않고 나를 피알 하지 않아도 주님이 나를 피알 해주시기 때문에 만물이 나를 도와줄 줄로 믿습니다. 왕의 왕이신 전능하신 주님이 나를 피알할 때 제가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나는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한 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이 흉악한 죄인을 건져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만 세계만방에 드러제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진 것을 드러제고 싶어 합니다. 저도 안 그랬는데 한 일 년 전부터는 넥타이에 신경을 씁니다. 이게 제 얼굴에 맞는지, 옷하고 놓고 이렇게.. 이상하게 제가 그리 되었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넥타이 색깔하고 제 옷하고 맞는지 견주어 보고 그러는 걸 나대로 좀 하는 겁니다. 저도 좀 넥타이 하나라도 알리고자 하는 그런 욕심이 있나 봅니다. 사실 주님이 축복해 주셔서 교회도 부흥하고, 여러분이 교회에 나올 때 제가 맨 넥타이를 보고 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공연히 제가 그런데 신경을 쓰는 겁니다. 사실 이게 아무것도 아닌데, 제가 뭘 맨들 여러분이 낙심하겠습니까? 공연히 나 혼자 그러는 겁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새끼를 매고 나와도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참 중요한 겁니다. 제 할 일은 주님만 높이는 겁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죽지 않습니다. 나의 무거운 짐, 이 우주보다도 무거운 죄의 짐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으므로 제가 저주받지 않습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시므로 우리가 웃게 됩니다. 웃으며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 여기에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적었습니다. 저가 목마르다 하심으로 제가 목마르지 않게 되었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므로 여러분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겁니다. 이 일곱 마디 말씀은 다 나를 위한 말씀이에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엄청난 고통과 쓰라림 당하심으로 제가 이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고난당하신, 죽임 당하신 어린양, 우리는 늘 성가대에서 부르지 않습니까? 주님이 어린 양 고난을 당하므로 제가 이렇게 놀라운 금생과 내생의 영원한 이 은총을 받게 됩니다. 

  교인이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거기서 모두 출발합니다. 항상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여기에 나온 것도 십자가의 은혜 때문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 가는 것도 십자가의 은혜이고 천국 문이 십자가의 키로 열려지는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해 주신, 누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고통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이제는 늘 사랑하며 삽니다. 늘 감사하며 삽니다. 십자가로 옷 입고 삽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며 삽니다. 십자가를 제 입으로 증거하며 삽니다. 십자가를 찬양하며 살아갑니다. 제 의식과 의지와 삶은 모두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승리합니다. 어떤 환난을 당해도 십자가를 놓고 보면 다 참을 수 있고,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십자가 놓고 보면 예수님은 죄가 없는데도 다 죄인같이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억울한 일도 없어지는 겁니다. 불평 불만 물론 없어집니다. 십자가를 놓고 보는 겁니다. 항상 어디를 터치해도 우리는 십자가와 연결되는 겁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농구 선수는 농구 근육이 발달해서 농구 외에는 다른 것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농구 선수가 탁구를 잘 못한다고 그럽니다. 왜 그러냐면, 근육이 농구 근육이이서 그렇습니다. 축구 선수는 축구 근육이 발달했습니다.. 야구 선수는 야구 근육이 발달해서 다른 것을 잘 못한다고 그럽니다. 

지난번에 세계적인 골프 선수가 농구하러 왔다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왜? 골프 근육이 발달해서 다른 게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의 근육입니다. 십자가의 의식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의지, 십자가의 논리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항상 감사하고 기쁨으로 사는 것은 늘 십자가를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고난당하신, 나를 위해서 고난당하신 주님을 늘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노 크로스, 노 크리스천’ 십자가 없으면 교인이 아닙니다. 교인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그러지요? 제가 군에 있는 군목 이야기를 들으니 그럽디다. 군에서 제일 반가운 분은 지휘관이거든요. 어떤 지휘관이 오느냐에 따라서 군목정책과 활동이 바뀌니까 예수 잘 믿는 지휘관이 오면 너무 감사하답니다. 그 분이 다 알아서 해 주니까, 오늘 교회로 나와라 제가 거기서 훈시한다. 그러고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교회에 가라고 그러면 영향이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지휘관이 첫째로 좋고 그 다음에는 안 믿는 지휘관이 훨씬 낫답니다. 아예 모르니까 그게 더 낫다고 합니다. 가끔가다 한두 번 부딪혀도 모르니까 그렇게 간섭 안하고 인정해주고, 그 다음에 좋은 분이 누구냐? 타 종교 지휘관이 낫답니다. 

물론 여러 가지 깐깐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래도 군목활동에 대해서 인정해 준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교단에 있는 분을 인정하듯이 인정해 준답니다. 괜찮다는 겁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누구냐? 교인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세례는 받았는데 교회에 꼭 그리 나가야 되냐, 나도 성경 다 안다,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하나 비판하고 목사님, 그러면 되냐 그러고 완전히, 그런 걸 나일론 이라고 하는지 스티로폼이라고 하는지 이게 제일 문제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안 믿는 교인보다 더 나쁜 것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교인이 제일 문제입니다. 양쪽에서 양쪽 다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인류역사에 제일 문제가 교인 아닌, 십자가 없는 교인입니다. 다윈이라는 사람이 교인이지 않습니까? 니이체, 교인이지 않습니까? 스탈린, 교인이지 않습니까? 칼 막스, 교인이지 않습니까? 히틀러, 교인이었습니다.  김일성, 교인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야구선수가 온 가족을 비참하게 했는데 그 사람도 교인이라고 합니다. 항상 교인이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 받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도 버림받고, 모두에게 버림받는 겁니다. 참 교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알곡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시다, 그 분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피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뭐가 다릅니까? 피가 있는 것이 자녀입니다. 그 피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주님은 나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는 겁니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죄악 세상 이김으로 거룩한 길 가는 하늘나라 즐거움이 매일 새롭도다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우리는 예수님의 늘 울어도 눈물로 갚을 수 없는 은혜, 저는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가난해서 운 것 아닙니다. 제가 병들어서 운 것 아닙니다. 제가 환난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고난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대단히도 많이 울었습니다. 한 양동이는 쏟았습니다. 몇 십 년 울었습니다. 이 은혜가 너무 커서, 나는 큰 교회 목사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이 보혈의 은혜가 커서, 아 나를 어떻게 해서 불러주셨을까? 주님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다 나를 위함인데.. 하나님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십자가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우리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경부 고속도로를 닦을 때 얼마나 많은 분이, 수십 명, 수백 명이 공사하다가 돌아가신 겁니다. 그래서 그 길이 닦인 겁니다. 부상자가 수 천 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닦인 겁니다. 

오늘 이렇게 며칠 걸려서 가는 길을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것은 수고한 분들의 피가 그 도로에 있어서 가능한 겁니다. 경부 고속도로 400킬로도 누군가가 피를 흘려서, 고생하므로 그 길이 열렸는데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이 죄인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 누가 열었겠습니까? 우리가 그냥 힘으로 갈 수 있어요? 내 능력으로 갈 수 있는 겁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영원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온 겁니다. 여러분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이 보혈을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여기 나온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교만하지 않은 겁니다. 이 길을 우선하는 겁니다. 이 길을 감사하는 겁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십자가의 길,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도 주일 날 백악관에서 예배를 안 드립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이 나가는 교회가 있어요. 워싱턴 국회의사당 옆에 있습니다. 경호가 우리보다 열 배나 더 어렵지만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립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열어주신 이 엄청난 축복의 길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 놀라운 길, 아버지 앞에 나와서 아버지께 예배드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것은 아버지를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요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요 우리에게도 가장 큰 축복입니다. 

저도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제일 반가운 전화는 저희 자녀들입니다. ‘아빠’ 하면 너무 좋은 것 있지요? ‘아빠, 잘 계셨어요?’ 야! 신나는 겁니다. 뭐를 주어서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서 특별한 것 아닌 것 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은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 믿으셔야 합니다.

십자가는 이 하나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습니다. 저주, 하나님 앞에 빚진 것, 원수 맺은 것, 온갖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이 세상에 승리할 수 없는 모든 장애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두가 제거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이 이제 십자가와 함께 열려지고 행복의 길이 열려지고 건강의 길이 열려지고 축복의 길이 열려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의미가 동서남북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저주의 십자가가 외국의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기가 되었어요. 전 세계의 선진국들이 십자가를 국기로 사용하는 겁니다. 길이 열리는 겁니다. 사통팔달의 길이 열리는 겁니다. 십자가는 여러분의 가는 길을 열어 주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어제 텔레비전을 보니까 남북의 휴전선이 양쪽 2킬로씩 4킬로이지 않습니까? 155마일, 거기에 지뢰만 백만 개가 있답니다. 가면 터지는 겁니다. 쫙 깔렸습니다. 그 다음 양쪽 군대가 휴전선을 끼고 지키는 그 군대가 백만이 양쪽에 지킨대요. 전부 그 근처에 몰렸습니다. 올 수 없습니다. 자유를 찾아 넘어 올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참 자유는 십자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평안은 십자가로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가는 자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에게 십자가가 나타나서 ‘너는 이것으로 이겨라’ 하면서 십자가는 세계의 승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운동선수도 가톨릭의 선수들 보면 축구선수가 교체되어 갈 때도 십자가를 그으면서 뛰어갑니다.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가는 길에 주님이 여러분을 지켜줄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 열렸습니다. 사람은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법대로 심판을 받는 길이고, 하나는 용서함을 받아 사면 복귀되어서 완전히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법대로 하면 다 심판을 받기 때문에 심판을 아들에게 맡겨 심판을 받게 하고 우리는 사면 복귀시킨 것입니다. 모두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신 겁니다. 기독교는 그래서 은혜의 종교입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 없는 분도 교회에 오면 살게 되는 겁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겁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저주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갑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제가 편히 쉬리니 원수 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제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주소서♬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십자가 그늘 아래 있는 한 어떤 환난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길이 열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보혈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자랑을 못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려서 잘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못 될 사람은 없습니다.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주팔자를 보는 분이 저 사람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망할 사람인데, 입고 다니는 그 환경, 팔자가 너무 좋아서 이상하다 제가 배운 것 하고 너무 다르다 그래서 그 사람 가는대로 따라 갔더니 너무 좋은 집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문에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가 붙었더래요. 그래서 이 분이 때려치우고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도 무당이었던 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절간 지은 분도 나왔고 전국 회장도 와 있고 부회장도 와 있고 많습니다. ‘망할 사람도 망하지 않는다’ ‘사주팔자도 소용없다’ 예수를 믿으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바꾸어 버리는 겁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그래서 기독교는 모든 것이 반대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넘어지는 것을 일으키고 저주에서 생명으로 일으켜 주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늘 앞에 늘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그늘에 쉬러 나오는 것입니다. 시골에 보면 여름철 더울 때 마을에 하나 있는 그 그늘에 모든 동민들이 다 모여서 낮잠을 잡니다. 그늘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늘로 온 인류를 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에 뭐하러 나오느냐? 쉬러 나오는 겁니다. 제 영혼이 쉼을 얻는 겁니다. 주 예수 넓은 품에.. 찬송가 471장에도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이 세상 어디에도 쉼이 없는 우리 성도들, 우리는 잘 되어도 좋고 못 되어도 좋고 항상 예수 안에서 쉼을 얻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영어로 ‘보우스트(boast)’ 십자가를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헬라어로는 ‘카오카오마이(καυχαομαι)’ 십자가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높인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걸 부끄러워하는 분들도 상당히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분입니다. 정말 주님의 사람은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증거 합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 나는 집사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닙니다. 식당에서도 기도하고 언제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해서 그런 걸 드러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너희가 사람 앞에서 나를 숨기면 나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너를 숨기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람 앞에서 높이지 않으면 하나님 보좌 앞에서 제가 너를 높이지 않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높임을 받기 원하십니까? 사람 앞에서 교인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인들이 10대 기업의 큰 회사의 사장이 여러분 있습니다. 이 분은 5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건설회사 사장인데 이 분은 그 회사에 제일 말단에 들어갔을 때 건설 할 때마다 언제나 돼지머리 갖다 놓고 절하고 그랬는데 자기 혼자 안 했답니다. 자기는 그 회사의 과장도 될 소망이 전혀 없었지만, 딱 따로 서서 있었답니다. 그래서 모두들 찍었대요. 너는 죽었다 하고 너는 이 회사에서 끝났다. 그랬는데 부사장이 되고 마지막 사장이 되어서 기도 받으러 와서 목사님, 제가 이 회사에 사장이 되어서 이끌어 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우리 회사에서 제사 지내는 것 싹 없앴습니다. 돼지머리는 끝났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거기에 절하는 사람이 올라갈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나는 히브리인이다 했지만 그는 애굽의 바로와 비교할 수 없는 온 인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붙들려 가서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에 오히려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우리 집안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너무 욕 얻어먹었지만, 항상 ‘나는 믿는다.’ 그랬습니다. ‘나는 제사 지낼 수 없다.’ 그랬습니다. 나는 외아들입니다. 아들이 하나지만 아버지 앞에 제가 불효를 했습니다. 온 집안이 다 수군거리고 쟤가 미쳤나 왜 저러지 하고 어른들이 갓 쓰고 모두 나를 욕했지만, 저는 안했습니다. 저는 교인이라는 걸 알렸습니다. ‘나는 교회에 나가요, 나는 제사 못해요.’ 나는 매도 죽도록 수 천대를 맞았지만 저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저는 성공하고 그 시대를 적당하게 따라가지 않았으며 저는 십자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십자가만 붙들면 최후승리를 얻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 줄 수 있는 길을 만드십시오. 하나님이 마음껏 여러분을 축복할 수 있도록 십자가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예수님을 높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도 생명을 버렸는데 제가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형틀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도들은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이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지신 십자가, 생명의 십자가라고 증거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의 마크가, 사람을 죽이는 형틀이 이렇게 온 인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주님을 기쁨으로 증거하는 성도가 되셨으면 합니다. 할렐루야!

2차 대전 전에는 유대인들이 세계에 미움을 얼마나 받았습니까? 수백만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하나같이 차고 다니는 마크, 배지가 있었는데 그것이 다윗의 별이었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직장 잃고 그것 때문에 쫓겨났지만 그 별을 떼지를 않았답니다. 그것 때문에 붙들려 가서 잔인하게 죽어도 다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녔답니다. 

오늘도 우리 2부 때 독일의 튀빙겐 대학의 교수가 다녀갔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다녀갔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틀러의 군대가 막 행진할 때 다윗의 별을 단 사람은 한 쪽 코너에 몰려서 발로 채이고 그럴 때 어머니가 자녀에게 말한답니다. ‘얘야, 다윗의 별은 저 세속적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다. 다윗의 별은 빛날 때가 온다, 네가 다윗의 별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데에 대해서 낙심하지 마라.’ 그러면서 자녀의 손을 잡고 나갔다고 합니다. 오늘날 그 다윗의 별이 온 세계에 빛나는 축복의 별이 되었습니다. 힘 있게 달려 든 히틀러의 군대는 모두 망했고,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녔던 사람은 승리했습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잠간 지나갑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사람, 십자가를 증거하는 사람은 때에 따라 멸시 천대도 오고 핍박도 오고 고난도 오겠지만 주님이 반드시 승리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건져줍니다. 자유케 합니다. 우리 안에 평화를 심어줍니다. 십자가가 내 삶에 있어도 축복이거늘 내 마음에 있으면 내 마음에 축복이요, 십자가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얼마나 증오심이 많은지 800마리의 맹수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움이 있습니다.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음란한 마음이 있습니다. 맹수 같은 난폭함, 뱀 같은 잔인함 들이 우리 안에 꽉 차 있습니다. 남이 안 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잘못을 폭로하고 이게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가득 가득히 채워져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증오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미움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낙심과 좌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거기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가톨릭 신부가 사제단이 삼성을 폭로하고, 뇌물을 받아먹은 사람을 폭로한 것을 보았습니다. 변호사하고.. 적어도 저도 목회자입니다. 가톨릭은 신부고 기독교는 목사인데 목사의 할 일중 가장 큰 일은 사람을 구원하는,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겁니다. 모든 상처 받는데서 일어나 낙심된 사람들 위로해 주어서 일어나고 가정을 회복하고 모든 사람들을 그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어서 새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을, 예수님에게 인도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게 해서 모두 소생하게 하는 일을 목회자가 하는 겁니다. 주의 종들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 성직자예요. 

그리고 주의 종은, 중요한 것은 저도 명성교회만 28년인데 교인들의 비밀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겁니다. 절대로 폭로하면 안돼요. 남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교인도 그래서 믿고 상담을 하는 겁니다. 저도 비밀을 한 번 터뜨려 봐요? 많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하신 분들도 목사님만 아세요 하고 한 말 많습니다. 해 봐요? 그러면 안됩니다. 목사는 지켜주어야 되는 겁니다. 끝까지 지켜주어야 하는 겁니다. 

뒤믈린이라는 프랑스의 신부가 있었습니다. 1899년이니까 옛날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하루는 어디에 간 사이에 교인 한 분이 건축헌금을 하려고 신부님을 만나러 왔는데 신부가 없어요. 돈을 한 아름 안고 있는데 그 때 경비원이 와가지고 돈을 빼앗으려고 망치로 때려서 기도하는 그 분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 망치를 신부의 서랍에 갖다 넣었습니다. 디물린 신부가 오니까 그 사람이 상담합니다. 고해성사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유혹을 받아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을 불러서 수사를 하게 했습니다. 경찰이 오니까 그 사람이 마음이 변했어요. 자기가 죗값을 받는다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서 신부가 그렇게 했습니다. 신부님이 죽였습니다. 해서 그 신부는 억울한 걸 덮어 쓰고 유배를 갑니다. 프랑스의 섬으로 유배를 갑니다. 말만 하면 되지만 말 하지 않습니다. 왜? 그 사람이 제게 고백한 건데, 고해성사한 건데 자기가 그 비밀을 지키고 안고 교인들이 다 떠납니다. 신부가 저럴 수 있냐? 저 죽일 놈의 신부! 하고 다 떠났지만 그러나 태연하게 기쁨으로 갔습니다. 

25년을 지났지요. 저는 옛날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사람이 임종을 맞이해서 회개합니다. 사실은 제가 나쁜 놈이라고, 제가 그 때 그 신부님을 그렇게 한 거라고, 그래서 이 신부는 돌아와서 다시 사제의 일을 감당하지요. 저도 그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제가 훌륭한 목회자는 아니고 제가 전 교인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어도 만약에 한 교인의 어려움이 있다면 목사는 당연히 그래야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의 양을 위해서 고생한다, 십자가를 진다, 유배당한다. 성직자는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이만하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나라인데 자꾸 들추어제고 전부 다 폭로해가지고 기업이든 뭐든 간에 다 자식은 아버지를 폭로해서 아버지를 다 쫓아제고 부인은 남편을 폭로하고 남편은 부인을 폭로하고 그러면 이 나라가 되겠습니까? 변호사도 그렇고 적어도 믿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변호사이고 성직자들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 안에 십자가가 없는 사람입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폭로하는 사회이지 않습니까? 전부 남을 비판하고.. 이제 우리나라를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우리 성도들이 나가서 평화의 사도가 되고 화목케 하고 좋은 나라 만드는데 앞장서시고 그건 제 잘못이라고, 제가 나쁜 놈이라고, 맞는다고, 우리 모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누어 나가면 가정에도 십자가 그늘 아래서 샬롬이고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놀라운 은혜가 임하리라고 믿습니다. (김삼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