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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치혁명(2)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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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혁명(2)(마 4:1~11)  
 
  오늘은 가치혁명 그 두번째 시간입니다.   유명의 가치, 명성의 가치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은 종려주일고 고난주간의 첫날인데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은 한 주간을 살아가는데 귀한 삶의 양식이 될줄 믿습니다. 세상살아갈 때 유명의 유혹 즉 명성의 유혹을 받습니다.  동물은 먹이로 유혹이 안되면 우쭐한 것으로 유혹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먹이로 유혹하면 다 넘어옵니다. 그래도 안넘오면 우쭐하도록 만들어주면 다 넘어온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이솝우화 한 토막 들려드리겠습니다. 고기 한마리를 입에 물고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그 때 그 광경을 목격한 여우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훌륭한 깃털에 아름다운 목소리의 까마귀님은 새중에 임금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한곡조 들려 주세요." 그러자 우쭐해진 까마귀가 목청을 높여 "까악 까악"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벌려진 입에서 물고 있던 고기가 떨어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떨어진 고기를 고기를 물고 달아나며 여우가 말했습니다. "아휴 이 멍청한 까마귀야. 고기나 먹지 그 목소리로 무슨 노래냐."했다는 것이지요. 유명을 탐하다가 고기를 놓친 가엾은 까마귀입니다.  

  장로교목사의 아들로 출생한 중국의 세계적 작가ㆍ번역가ㆍ교육자ㆍ풍자가인 임어당이란 사람이 말하기를 "많은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부유함의 유혹을 무리칠 수가 있다. 그러나 명성의 유혹을 물리친다는 것은 극히 위대한 인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우쭐하기를 좋아하고 유명의 유혹, 명성의 유혹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타락을 그리고 있는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이야기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유혹입니다.  
  처음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원죄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금식하신 후에 광야에 이끌려 가셔서 사단에게 받은 두번째 유혹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러 보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여 그들의 손으로 너를 받들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하고 유혹한 것입니다.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내릴 때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을 받으면 성전에 몰린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이 방법이야 말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사탄이 가장 즐겨쓰는 방법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사탄은 세상 유명을 가치로 잡으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명해진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투자합니다. 그것이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해진다는데 무엇을 못하겠느냐합니다. 무명가수나 무명 연예인들이 유명해진다는 유혹에 넘어가 몸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시간도 잃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악한 마귀 사탄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예수님의 감정적인 필요를 채우는데 사용하라고 유혹했습니다. 마귀의 두 번째 유혹은 인기를 얻으라는 사회적인 유혹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했듯이 마귀는 남의 시선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튀는 행동을 하라고 유혹합니다. 인기를 얻기 위해 크리스천 연예인에게도 섹시 컨셉으로 나가라고 부추깁니다. 마귀는 돈보다 한 차원 높은 인기로 유혹했습니다. 인기를 얻으면 돈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유명이 삶의 진정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세의 유혹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해야 합니다. 유명과 인기는 거짓 가치입니다. 순간의 가치인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결국은 그 유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리고 그 인기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적인 유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멸망의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유명, 이 세상 명성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 메달려 계셨습니다. 그때 주님 좌우편에는 두 행악자가 함께 십자가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아래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구나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또, 지나가는 자들도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며 말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악행을 저질러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까지도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 정도는 피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어쩌다 십자가에 메달리게 되셨다면 결정적인 찬스에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뛰어내려야 유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성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십자가 형벌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피할 능력이 없어서 피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려올 능력이 없어서 내려오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불쌍한 죄인들인 우리가 구원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유명해지기 위해서 구원하려온 백성들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안 내려오서야 참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신다면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천사들의 호령 소리와 함께 십자가에서 내려오신다면, 그 때에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백성의 장로들은 그 순간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다 영원히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내려오면 믿겠다고 큰 소리쳤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즉각적이고 회려하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적을 보여 줌으로써 신적인 목적을 이루라고 아주 조악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성경이 허락한 방법이 아니며,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준비하신 방법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올라가는 것이었지, 교회의 첨탑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나름대로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설득합니다(마4:6). 사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함으로 우리를 설득하고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사실은 상관이 없는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성경이라도 왜곡시키는 것이 사탄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의심과 혼란에 빠지게 되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단은 누구나 다 알도록 공개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대부분 가장 그럴싸한 이유와 가장 신앙적인 모습과 가장 선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합니다. 아주 살금 살금 우리의 유명과 명성에의 욕구와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큰자는 오히려 작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를 일컬어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꼭 서열을 정하여야 하고 계급화를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원리이지 주님의 원리는 아닙니다. 모든 것을 세상의 원리로 풀려고 하니까 다툼이 생기고 서운함이 생기고 분쟁과 당 짓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유명한 길을 던져버리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님을 통해서 유명해지기만을 바란다고 하면 이율배반이며 배은망덕입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희생적인 삶, 자기를 내려놓는 삶,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삶, 이것이 인류의 소망이며 미래이며 대안입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자녀로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종들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유명하기를 버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가치인 유명의 유혹, 명성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가치로 바뀌어야 합니다. 늘 남에게 인정받고 보여지고 우쭐하는 것을 행복으로 승리로 알고 축복으로 아는 것은 병든 욕심이며 세상가치이며 썩어질 가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십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4:7) 즉 인간의 행복은 겉으로 보이는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과 승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내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인정받고 축복받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승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유명이나 명성으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하나님과의 깊고 튼튼한 관계속에서 오는 은혜로써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유명세를 타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면 솔깃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수님은 미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사람의 관심을 끌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던지 알아주지 않던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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