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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수들 앞에서의 신앙 (시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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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들 앞에서의 신앙 (시 5:1~12)

사람의 신앙은 위기가 있을 때 바로 드러나게 된다. 위기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 신앙을 가진 자는 위기가 문제 되지 않는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시편 5편이 다윗의 생애 중 어느 때에 불리워진 노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윗을 넘어뜨리려는 원수들에 둘러싸여 있음이 분명하다.

시5:8을 보라. “여호와여 나의 원수를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여기 8절 상반에 “나의 원수들”이란 성경의 주를 보면 “엎드려 나를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씌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을 엎드려 기다린다는 것은 다윗의 허점을 찌르고 다윗을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위험스럽고 불안한 상황인가? 이 원수들은 시5:9을 보면 “신실함이 없고 심중이 악하며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혀로는 아첨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형편 속에서 다윗은 모든 위기를 하나님께 가져 간다. 하나님이 원수들의 편이 되고 원수들과 함께 한다면 다윗은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못된 원수들을 지지할 분이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원수들의 도전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선다.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시5:4~6을 살펴보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다.

① 악인은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한다.
② 오만한 자는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한다.
③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신다.
④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신다.
⑤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를 싫어하신다.
⑥ 속이는 자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의 본성과 품성을 알고 있는 다윗은 원수들의 문제를 대처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첫째, 새벽 기도 신앙으로 나아간다. (시5:3)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기도 소리 들으심을 확신했다. 그것도 아침에 드리는 기도 소리였다. 
아침은 하루가 시작되고 첫 시간이다. 첫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과 얽혀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만나서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를 한 사람으로 오늘날 중국의 기독교에 기초를 놓은 진정으로 중국을 사랑한 사람이다. 많은 어려움 속에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물었다. “어떻게 중국 땅에서 일할 수 있었느냐?”고 물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자신의 삶을 언제나 하나님과 아침 첫 시간에 조율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악기가 연주되기 전 미리 조율되어야 훌륭한 연주가 가능하다. 신앙 생활의 승리도 분주하다고 저녁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과 조율하려면 실패하고 만다. 아침 새벽 시간에 먼저 하나님과 조율하고 나아가면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우리는 “아침에 주께 기도하고 바라니이다.”라고 노래한 다윗처럼 새벽 기도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라. 홍해 바다가 이스라엘과 모세 앞에서 언제 갈라졌는가? 그리고 그 홍해 바다가 다시 회복이 되어 애굽의 병거와 기병을 수장시켰는가? 출14:24, 27을 보면 “새벽”이라고 적혀 있다. 죽는 일만 남아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사는 기적이 일어나고 악한 바로의 병거를 몰아낸 것이 새벽 아침인 것이다. 새벽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다. 

출14:24을 보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 서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기에 새벽은 중요한 것이다. 
시46:5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새벽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다윗은 아침에 기도하는 신앙으로 원수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시30:5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우리도 아침 기도의 신앙으로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자.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상처주는 괴로움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새벽 기도 신앙으로 서자. 

둘째, 성전 경배의 신앙으로 나아간다. (시5:5)

시5:7 “오직 나는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구약의 신앙의 사람들은 성전 중심의 삶, 성전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왜냐하면 성전은 주의 집이고 성전은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주님을 만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성전을 사랑하는 신앙의 대표적인 노래는 시편 143편이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내게 복을 주실찌어다.”
시온, 즉 성전에서 복이 흘러나오는 믿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시27:4, 65:4의 말씀은 모두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겠다는 서원이다. 시편 84편을 보라. 성전을 사랑하는 신앙의 가장 으뜸가는 노래이다.
시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시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렇다. 성전은 건물이다. 돈과 나무, 벽돌일 뿐이다. 그러나 성전을 사랑하는 것은 거기 주님이 계신 집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문을 사랑하는 것은 대통령이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존경한다면 청와대 대문 앞에서 방뇨를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집이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의 성전은 이제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다. 예배당 건물을 거룩한 전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예배당을 사랑해야 한다. 
크리스챤은 누구나 지역 교회에 소속해야 하며 지역에 있는 예배당을 세우며 경배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이다. 사람으로서의 성전을 세우고 건물, 벽돌로서의 예배당을 사랑하며 거룩하게 하고 잘 세워가는 것이 능력을 받는 길이다. 능력은 거룩한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길 때 온다.
예배당에 나와 경배하라. 악한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경배하는 자는 승리한다. 경배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경배 신앙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인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마 카브레라는 치유 복음 전도자다. 그는 한 병동에 있는 모든 환자가 치료되는 역사를 일으켰다. 그의 기도는 발가락이나 신체의 일부가 새롭게 생기고 자라나는 창조적 기적으로 알려져 있다. 신디 제이콥스는 이 오마 카브레라에게 물었다. “무엇이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옵니까?” 그때 그가 말하길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과 경배”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의 통로다. 성령을 마시는 통로다. 교회 안에서 경배 신앙을 갖고 나가면 병마도, 근심도, 원수들도 쫓겨간다.

셋째, 중보자의 신앙으로 나아간다. (시5:11~12)

원수에 둘러싸여 위태롭기 짝이 없고 자기 자신의 문제만 가지고도 버겁다. 그러나 다윗은 의로운 거룩한 하나님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자가 된다. 하나님은 악인을 물리치시고 의인들에게 복과 은혜를 주실 것을 알기에 개인적 기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위한 중보 기도자가 된다.
신앙은 위대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환난 날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중보는 가장 위대한 거룩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 사람의 자리에 서서 도고하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신앙은 남을 위한 중보자로 나아간다. 

시5:11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원수의 문제로 인해 인생을 아프게 만드는 가시의 문제로 인해 괴롬이 있는 자는 주께 피하라는 중보다. 누구든지 거룩한 하나님께 피하면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11절 속에 “기뻐하며, 기뻐 외치며, 즐거워하리이다.” 등 총 세 번이나 즐거움에 넘치는 삶의 원리가 주께 피하는데 있음을 다윗은 중보하는 것이다. 다윗의 신앙 세계가 여기 펼쳐져 있다. 개인의 문제를 극복하는 경건 신앙도 보여주지만 그 신앙의 체험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기도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보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신앙이다. 내 자녀들이 내 것만 구할 때 다른 형제를 먼저 앞세우는 아들이 있다면 얼마나 기특한가? 더 주고 싶은 것이다. 
중보 기도 훈련을 할 때 이런 말이 있다.
자기를 위한 기도는 응답만 받지만 남을 위한 기도는 응답도 받고 은혜도 받는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한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나를 살려내게 하고 나도 은혜로 살게 한다.

내가 전도사 시절 14일 동안의 기도회를 모이면서 대장암 수술을 앞둔 권사님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 잔치를 열었다. 그때 받은 은혜는 잊을 수 없다. 14일 기도의 응답으로 대장암 선고를 받은 권사님이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치유의 기도 중에 적셔지는 기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눅18:1~6의 내용대로 밤낮 부르짖는 기도, 반복적으로 도전하는 기도는 능력을 전이시키고 역사를 일으킨다. 

여러분 앞에 있는 위기가 무엇인가? 원수들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때 나는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새벽 기도 신앙으로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신앙으로 중보기도 신앙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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