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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4) : 믿음은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 (히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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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4) : 믿음은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 (히 11:24-26)

1. 이명박 대통령은 “매우 겸손한 자세로,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역시 장로답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 정신을 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십에 대한 이론이 많이 있지만, 21세기 리더십을 서번트 리더십 즉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데는 대부분이 공감합니다. 예전에는 카리스마 리더십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힘으로 다스리는 리더십보다는 부하를 배려하고 섬기는 리더십을 관리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섬김의 리더십을 <머슴 리더십>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가슴에 와닿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리더는 머슴처럼 아래 사람을 섬김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서번트 리더십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입니다. 그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소설인 "동방으로 가는 여행(Journey to the East)"에서 얻었습니다. 

이 소설에 보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여행하는 데, 일행 중에 그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혼자 도맡아하던 레오(Leo)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그들을 떠나버리자 지금까지 잘 되어 가던 모든 일들은 엉망이 되고 일행들은 큰 혼돈에 빠졌고 급기야는 같이 여행을 하던 일행들은 서로간 감정이 상해 뿔뿔이 흩어져 여행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충직한 심부름꾼이었던 레오가 없이는 그들은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행을 같이 떠났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충직했던 레오를 찾아 헤매다 몇 년 만에 그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레오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그들의 여행을 후원한 교단의 책임자인 동시에 정신적 리더였습니다. 그린리프는 이 레오가 바로 전형적인 서번트 리더라고 지적하면서 서번트 리더십이란 "타인의 섬김에 초점을 맞추고 종업원·고객·커뮤니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이라 정의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리더십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예수님 오시기 1300여년 전에 이미 실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도 존경하는 위대한 성인입니다. 모세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자기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지도자였기 때문입니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까? 광야 40년간 백성을 이끌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자로 쓰임받았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진정한 위대함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이집트의 왕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고, 노예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는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모세의 위대함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위대함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의 보장된 성공, 최고의 권력을 포기하고, 노예의 삶을 사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위대함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위대함은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2장을 보면, 모세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구가 점점 늘어나서 이집트왕 바로의 경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왕을 ‘바로’라고 불렀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기를 낳으면 여자 아이는 살려두고, 남자 아이는 모두 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때, 모세가 태어난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3개월간 집에서 숨겨 키웠습니다. 더 숨길 수 없어 갈대상자에 아기 모세를 넣어 강물에 띄워보냈습니다. 그 때, 마침 바로의 딸 공주가 목욕하다가 강물에 떠내려오는 이상한 상자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아기가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공주는 아기를 불쌍히 여겨 데려다 자기 아들로 키웠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났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의 바로는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공주는 바로에게 모세를 바로의 후계자로 삼아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바로는 공주의 요청을 허락하여 모세는 이집트의 바로가 될 후계자로 지식과 무술의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세의 나이 40이 되던 어느 날, 노예살이하는 자기 동포들의 노동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이집트 관리자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파묻어버렸습니다. 그 다음 날, 다시 그 현장으로 가보니 동족끼리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고 그만두라고 타일렀습니다. 그 때, 그 동포가 하는 말이 “네가 이집트 사람을 쳐 죽이더니 나도 죽이려느냐?” 이 말을 듣고 모세는 자기가 한 일이 탄로난 줄 알고 이집트 왕궁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 사건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24-25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믿음으로 한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영광스런 자리를 포기하고 기득권을 버리고, 더 낮은 자리에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로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특히 남자들은 이런 권력의 욕구가 훨씬 심합니다. 어디에 가서도 힘있는 자리에 앉고자 합니다. 또, 좀 더 편안한 삶을 누리려고 합니다.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권력이 보장된 자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지배자의 자리에서 피지배자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왜요? 자기 동족이 고통당하고 있으니까요. 고난당하는 동족과 함께 고난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한 행동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고통의 자리, 소외의 자리,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자리, 울부짖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높은 정상에는 오래 있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 곧 내려와야 합니다. 더 내려갈 데가 없는 가장 낮은 곳은 가장 평안합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계셨습니다.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들끓는 갈릴리가 예수님의 주된 활동무대였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가야 할 곳은 바로 더 낮은 자리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간 것을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 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보다 1300여년 전의 사람인데, 그가 당한 고통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 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가 모세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섬기는 머슴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는 것이 됩니다. 

이런 모세의 삶에서 우리가 배우는 중요한 진리는 이것입니다. 
편안보다는 평안을 추구하라. 
편안과 평안은 다릅니다. 편안은 넉넉한 환경에서 옵니다. 그러나, 평안은 마음 속에서 솟아납니다. 편안은 물질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평안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더 낮은 자리에 계시는 주님, 주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립니다. 

3. 저는 오늘 어떤 기독교인 한 분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 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받자마자 안락한 미래의 보장과 인간의 기대를 전부 내려놓고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몽골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평신도 선교사로서의 몽골 사역에 대한 이야기가 <내려놓음> 이란 책과 그 후에 나온 <더 내려놓음> 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이용규 선교사입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당연히 국내로 들어와 유명대학 강단에서 교수로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버드에서 공부하면서, 유학생들을 위한 집회에서 2년간 선교사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헌신하게 됩니다. 학위를 받고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몽골은 2007년 기준 일인당 국민소득이 1,100달러 밖에 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많은 분들이 몽골은 아이를 키우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걱정해주었습니다. 그 때마다 이용규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다면 우리가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늘 불안전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면 전쟁 가운데서도 안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개발되지 않은 몽골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할 것이라고 걱정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복 많은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이 없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의 선교의 경험담을 담은 이 <내려놓음>이란 책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것을 내려놓을 때, 주님께서 비로소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내 욕심, 내 정욕, 내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 예수님의 의지,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 거기에 안전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남미의 인디언 부족들이 원숭이를 잡는 법이 있습니다. 
원숭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목이 좁은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바나나를 넣어둡니다. 그러면 호기심이 많은 원숭이들이 다가와 항아리를 살핍니다. 그러다가 그 안에 바나나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손을 집어 넣어 바나나를 잡습니다. 그런데, 항아리의 목이 좁아서 원숭이가 주먹을 쥔 상태에서는 손이 빠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숭이는 바나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눈만 말똥거릴 뿐입니다. 자기를 잡으러 인디언들이 오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놓지 않고 꼭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찌보면, 여러분이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이 그것에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 꼭 이루고 싶은 것, 꼭 갖고 싶은 것, 
그것을 한 번 놓아보세요. 그 때, 비로소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4.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고난받기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상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상이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보화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상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도 성경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구약시대를 넘어 신약성경에도 예수님께서 모세를 칭찬하시고 인용하셨고, 오늘날에 까지 모세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 우리가 추앙합니다. 그것보다 하늘나라에서 모세가 얼마나 큰 상급을 받을 것인가 더 큰 것이 기대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갑시다. 주님께서 높여주실 때까지 우리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성도들이 됩시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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