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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최후의 선택 (눅 23: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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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선택 (눅 23:39-43)

  1492년까지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 그리고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곳이 지구의 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492년 한 사람이 이 지구의 끝을 용감하게 박차고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는 지구의 끝을 넘어서서 그곳에 미지의 새로운 대륙인 소위 아메리카 신대륙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죽으면 모든 다 끝난다
고 생각한다, 그런데 죽음이 끝이 아니다. 다른 새로운 세계의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파스칼은 유명한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였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천국! 이것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도박이다! 그냥 우리가 포기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도박이다' 라고 하엿다.
  파스칼의 계산으로는 천국이 없어도, 천국을 믿고 살았든 자신에게 별로 손해볼 것 없지만 그러나 천국이 정말 존재했다면, 준비만 했었으면 갈 수 있었든 천국이었다면 그 천국을 놓쳐버린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러므로 이것은 놓쳐버리기에는,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어마 어마한 도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도박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 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천국이 있다면 어떻게 갈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기 직전에, 죽음 이후의 세계, 즉 천국에 대한 보장을 받고, 아주 안심하고 이 세상을 떠나간다면 얼마나 큰 행복이겠는가?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즉 회개한 강도의 이야기다, 예수님과 더불어 양쪽에 매달린 두 강도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다 강도였고 두 사람이 다같이 행악자였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다. .
  그는 옆에서 욕설을 퍼부으면 예수님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다른 한 강도를 향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고 그 정죄를 받고 이렇게 죽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은 우리 가운데 매달린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한 것에 옳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 곁에 매달린,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외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요"  -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그 소리를 들으시고 이렇게 약속하신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어떤 미국의 목사님이 병을 앓고 거의 죽어가는 분에게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구원 받은 사람의 얘기를 하면서, “선생님 지금도 늦지않았어요 이 강도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아프면서도,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하는 소리가 "목사님,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모두 다 따지고 보면 자기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누구나 다 강도같은 인생들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라고 말씀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안목에서, 내 심장을 꿰뚫어보시고 겉으로 표출된 내 행동의 배후에 있는 내 삶의 동기를 살피시며 가장 은밀한 곳까지 보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다 강도같은 죄인들이다.  

  그러나 강도도 천국 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이 강도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가 있었을까? 두 가지 때문에 가능했다. 하나는 자기의 지은 죄를 회개했고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그가 천국을 약속받은 것이다. 

  오늘 우리도 어느날 이 세상에서 내 삶이 끝나는 그 순간,  용서 받은 자로 하나님 나라 천국에 평안히 입성하기를 원한다면 첫째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이 구원받은 강도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그 엄청난 죄에서도 구원할 수가 있다고 믿고 예수님께 나의 구원을 호소해야 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라고.

  회개와 믿음을 가졌던 강도는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는 우리 주님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역사이래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상향을 말하고 유토피아를 말했다 그러나 이땅은 아직도 유토피아를 가져보지 못했다. 사실은 유토피아라는 말은 그런 곳이 없다는 뜻의 말이다. 
  그런 곳이 세상에는 없다. 오직 천국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에서 이루워진다. 그리고 장차 우리가 주께서 예비하신 죄와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 천국에 들어가면 낙원이 이루워질 것이다(계21:4). 

  "네가 오늘 나와 함께,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이 말을 들었을 때 이 강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는 얼마나 평안하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죽음의 마지막 문턱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주님의 보장을 받은 것,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다고,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아주신다고 그리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될꺼라는 생각으로 환하게 열린 천국 길에 들어서는 순간은 얼마나 황홀할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양편의 두 강도, 이 두 사람의 반응은 얼마나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그들의 최후의 선택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오늘 우리들의 최후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 
  우리가 스스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순간 그리고 예수님에게 자기의 구원을 호소하는 순간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성경은 죄를 인정하고 자복함과 구주 예수를 진실하게 믿음이 용서와 구원에 이르고 천국에 이르는 길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요일 1:9, 행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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