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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어떤 죽음 (요 1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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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요 12:23~33) 

예수님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자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요12:11). 이제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을 살리시고 온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기 위한 당신의 궁극적 사명을 완수하시려고 그의 삶의 마지막 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유월절을 맞아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입성을 하신 것입니다(요12:12-15). 그런데 역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 헬라인 몇이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빌립에게 와서 예수님을 뵙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빌립은 동료 안드레에게 그 말을 전했고 안드레는 빌립과 함께 예수님께 와서 그 사실을 전하며 예수님의 의향을 여쭈었습니다(본문 20-22절). 

예수님의 측근 제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은 헬라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첫 대답이 오늘 본문 23절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뵙기를 청한 헬라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요한복음은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라 한 것 보면 유대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유월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을 보면 유대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거나 유대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뵙기를 청한 것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자기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지 또는 자기들도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는 것 외에 무슨 청이나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예수님의 말씀도 그들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헬라인들이 찾아와 뵙기를 청한 사실 자체를 의미 있게 여기신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이제 드디어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실 때가 왔다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헬라인들이 찾아온 일을 예수님께서는 이제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살리시기 위한 일을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서 모든 민족이 주님께 나아오게 할 최후의 사역을 수행할 때가 이르렀음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대답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 마지막 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3절을 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주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들으며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 쉬운 일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과 주님의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과 죽음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죽음은 어떤 것지를 새롭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에 대한 설명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 24을 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의 죽음은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한 알의 밀의 죽음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많은 생명을 얻게 하는 한 생명의 희생과 같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일찍이 예수님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한 바 있습니다. 그 말대로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씻으신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요10:10-11).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의 죽음은 당신의 양들이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죄를 씻고 많은 주의 양들이 풍성히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한 죽음은 결코 쉬운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죽으실 그 죽음을 생각하시며 겪는 마음의 고통이 어떠한지를 다음과 같이 토로하셨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극심한 고통과 수치와 절망을 안겨주는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바로 그 목적을 이루는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죽음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본문 28절 상반절).

  예수님의 이 비장한 기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28절 하반절을 봅니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는 것은 그때까지의 예수님의 삶과 행하신 모든 일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신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은 일 즉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의 보내신 뜻을 온전히 이루시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러워지는 것은 그 아들의 부귀영화와 안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무소유의 삶과 고통스러운 죽음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신 말씀이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확인을 아주 장엄하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온 그 말씀은 곁에 서서 들은 무리가 “천둥이 울었다고” 말할 정도였고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말하였다”고 할 만큼 놀랍게 들려졌습니다(본문 29절).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교의 고위지도층과 헤롯 왕가와 로마제국의 총독 모두에 의해 거부당하고 축출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과 군중의 어리석음이 결탁하고 합의하여 예수님께 내린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그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실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이 세상 권력을 축출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1절을 봅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예수님의 죽음은 그가 온 세상의 진정한 왕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며, 온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날을 예비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는 무리의 외침 속에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요12:12-15) 바로 그 엄연한 진리가 밝히 드러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날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다시 살아 일어나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영원히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질 죽음이 아니라 부활하시고 하늘로 들어 올려지셔서 거기서 영원한 삶을 사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패배를 승리로 뒤집어엎는 죽음이었습니다. 악한 세상의 심판을 번복하는 죽음입니다. 불의한 세상권력자를 추방하고 이 세상의 참 임금을 선포하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유대인만의 왕도 이스라엘만의 왕도 아니십니다.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의 왕이십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유대인만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32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말씀하시기를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10:16)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의 죽음은 옛 이스라엘이란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모든 양들을 주님께 나아와 새 이스라엘이란 무리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시기 위한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으시게 하게 죽음인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과 연결시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하시고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25-26절을 봅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을 따르며 섬기려는 이들 또한 그러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이 되심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당신 또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택하여야 할 죽음은 어떤 죽음이겠습니까?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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