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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눅 2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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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눅 22:7-20)

오늘 우리는 성찬 성례전에 참여할 겁니다. 4세기 신학자 어거스틴은 두 가지 말씀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듣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보이는 말씀입니다. 설교는 듣는 말씀에 해당되고, 성찬 성례전은 보이는 말씀에 해당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듣는 말씀과 보이는 말씀을 동시에 접하게 됩니다. 듣는 말씀인 설교 본문도 보이는 말씀인 성찬 성례전에 맞추어져 있어서 두 말씀이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설교는 성찬 성례전의 서두라고 해도 좋고, 성찬 성례전은 설교의 연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교회력에 따라 이번 주는 고난주간으로 지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날, 먼저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며칠 전 이스라엘의 중심부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원근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몰려와 복잡하고 들뜬 분위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급의 지독한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축제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영어로 Passover인데 재앙이 넘어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날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 밖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제 해가 지면 특별한 만찬을 먹는 유월절이 시작됩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의 하루는 해가 저물면 시작됩니다. 그 때부터 일주일간은 마짜라고 불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그래서 그 일주일은 누룩 없는 절기라는 뜻으로 무교절이라 불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라고 베드로와 요한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보내십니다. 7-8절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 식사를 계획하시는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유월절 순례자들을 위해 식사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9절,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혹시 예수님께서 특별히 원하시는 집이 있는지 여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답변하십니다. 10절 11절,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제자들이 만나야 할 사람은 남자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물동이는 여자가 운반합니다. 남자는 가죽부대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두 제자가 물동이를 운반하는 남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이 집 주인은 마가의 아버지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해가 저물어 무교절이 시작되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준비된 집으로 들어갑니다. 큰 다락방의 식탁 위에는 애피타이저처럼 먼저 먹는 채소가 소금물과 함께 놓여 있습니다. 주식으로는 마짜 무교병 외에도 살지고 부드러운 양고기가 구워진 채 진열되어 있습니다. 1년 된 흠 없는 최상품 숫양을 잡았을 겁니다. 반찬으로는 쓰디 쓴 양고추냉이 나물이 보이고, 그 쓴 나물을 찍어 먹는 하로셋도 보입니다. 하로셋은 사과즙에 호두나 잣을 으깨어 넣고, 꿀, 포도주에 계피를 섞어 만든 양념장입니다. 달짝지근하고 황갈색을 띱니다. 그 외 음료로는 포도주와 4개의 잔이 눈에 들어옵니다. 늘 그렇듯이 성대하지 않고 소박한 만찬입니다.  

다들 식탁에 기대어 거의 눕는 자세로 둘러앉습니다. 원래 유월절 식사는 서서 먹었더랬습니다. 그러나 로마문화와 헬라 문화가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온 뒤에는 유월절 만찬도 기대 누워 식사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여십니다. 15절,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무슨 이유인지 이 유월절 식사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원하고 원하였노라.”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이전의 유월절 식사와 좀 다른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것이 예수님과 나누는 마지막 만찬이 될 줄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유월절 식사는 일정한 표준양식에 따라 진행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표준양식을 따랐다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선 우선 첫 번째 잔에 포도주를 따릅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맞이한 것에 대해 감사기도 드리고 다 같이 돌려가면서 마십니다. 

평소와 다르게 차려진 음식에 대해 나이 어린 사람부터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면 연장자나 가장이 답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관습을 따라 유월절 음식에 대해 설명하셨을 겁니다. 짠 소금물에 찍어 먹는 양념 없는 채소, 그 맛이 좋을 리 없습니다. 이것은 애급에서 흘렸던 조상의 눈물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셨을 겁니다. 또한 쓴 나물을 먹는 것은 애급에서 뼈아픈 노예 생활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며, 달짝지근한 하로셋 양념에 찍어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해방과 자유의 달콤한 삶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셨을 겁니다. 설명이 끝나자 다같이 소금물에 채소를 찍어 먹습니다. 

그리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스라엘을 구출해주신 하나님께 시편 113편과 114편으로 감사 찬양 드립니다. 해방과 자유, 구원과 구속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7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두 번째 포도주 잔이 채워지고 제자들은 돌아가면서 마십니다. 여기까지가 전식입니다. 

이제 본 만찬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짜 무교병을 비롯한 유월절 음식에 대해 감사기도를 올리십니다. 그리곤 그 옛날 서서 급히 먹었던 그 마짜 무교병을 들어 떼시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십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평소 듣지 못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19절,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제자들은 받아먹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애급에서 구출되는 날 밤,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그 마짜 빵이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시니 이 무슨 의미일까? 아주 먼 옛날 그 유월절 사건이 예수님과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신다고 하신다. 자신의 몸을 받아먹으라고 하신다. 딱딱하고 투박한 마짜 무교병이 뜯어지고 떼어지는 것처럼 예수님 몸도 찢어진단 말인가? 그것도 우리를 위해. . .  이 무슨 의미일까?’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은 쓴 나물을 양념에 찍어 먹고, 유월절 양고기도 베어서 나눠 먹습니다. 오늘 낮에 예루살렘 성전 앞마당에서 잡아 구워낸 것입니다. 애급으로부터 조상들을 구해내기 위해 죽임당해야 했던 그 어린 양을 깊이 회상하며 먹었을 겁니다. 

식후에 예수님께서는 축복의 잔이라 불리는 세 번째 잔에 포도주를 따르십니다. 그리고 20절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감사기도하십니다. 기도가 끝나자 이번에도 매우 특이한 말씀을 하십니다. 20절 하반절,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마태복음 26장 27절 28절에는 이렇게 기록됩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제자들은 받아 마시며 생각했을 겁니다. ‘아주 오래 전 애급의 모든 장자가 죽임당하는 재앙이 닥쳤을 때, 어린 희생양 흘린 피를 문설주와 문지방에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갔다고 하는데, 그리고 유월절 포도주는 바로 그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지금 예수님께선 그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가 바로 자신의 피라고 하신다. 그것도 우리를 위해,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시는 언약의 피라고 하신다. 그리고 받아 마시라고 하신다. 이 또한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관습대로 시편 115편부터 118편을 함께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 여호와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경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포도주 잔이 돌아감으로써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유월절 만찬은 끝이 납니다. 

예수님께선 자신의 공생애의 끝이 다가온 것을 직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만찬은 지나가는 행사로 그냥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이 온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계획적으로 준비하신 겁니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끔찍한 고통 받기 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 나누길 그토록 바라셨던 겁니다. 유월절 마짜 빵과 포도주가 가리키는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출애급 이후 우리 이스라엘이 먹어 온 이 빵은 사실 내 몸이다. 이 포도주는 바로 내 피다. 받아먹고 받아 마시거라. 그래야 너희가 죽지 않고 살고, 온 인류도 산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월절 만찬으로부터 성찬 성례전을 제정하신 겁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이제 그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무교병과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바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친히 밝히셨습니다. 세상 권세에 억눌린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 양 잡혀 죽었듯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 짓눌려 있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몸 찢기시고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대신해 형벌 받으셨고, 우리 죄 값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는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재림 때 완전하게 임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이 우리 앞에 펼쳐진 연후에야 승리와 축제의 식탁에 다시 참여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임하실 것을 간절하게 기다리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세상일들은 정신없이 우리를 휘몰아가고, 우리의 관심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했는지 잊어선 안 됩니다. 주님께선 사도 바울의 입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서 26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십니다. 성찬식 행할 때마다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생생하게 기억하라고, 제발 잊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께서 왜 죽으셔야만 했는지 온 세상에 전파해달라고 부탁하십니다. 불원장래에 다가올 최후 승리와 축제의 천상만찬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알리라고 권고하십니다. 이제 찬송가 281장 1-4절을 간주 없이 부르심으로써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시겠습니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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