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쉴 수가 없습니다 (행 5:40-42)

  • 잡초 잡초
  • 294
  • 0

첨부 1


쉴 수가 없습니다 (행 5:40-42)

  어떤 회사에서 김 대리가 상관인 부장에게 하루를 쉬겠다는 휴가원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부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대리, 1년은 365일이지? 하루는 24시간이고, 그 중 자네 근무시간은 8시간이지? 하루의 3분의 1을 근무하니까, 결국 1년에 자네가 일하는 날은 122일 밖에 안 된다는 얘기야, 그 중에서 52일의 일요일이 있고, 반만 일하는 토요일을 26일로 치면 겨우 44일 남아, 그걸 자네가 다 일하나? 밥 먹는 시간에, 화장실 출입하는 시간에, 노닥거리는 시간, 휴식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에 최소한 3시간은 빠진다구, 그걸 다 빼면 일하는 시간은 27일이라는 소리지, 게다가 여름휴가는 10일이지?  그럼 17일이 남는다는 건데, 그중에서 신정, 구정, 식목일,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현충일, 제헌절, 광복절, 추석, 크리스마스, 그리고 회사 창립기념일까지 휴일이 총 16일이야, 결국 자네가 제대로 일하는 날은 1년에 딱 하루라 이거야,  그런데 그 하루마저 휴가원을 내면, 아예 놀고먹겠다는 건가?  자네도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보게...“

말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의 우리는 쉴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이 주어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쉬지 못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쉬지 못합니다.  잠시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안식의 날까지 우리는 쉴 수가 없습니다.  믿는 우리는 더욱 쉴 수가 없습니다.  할 일이 많기도 하지만,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쉴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쉴 수 없는 것일까요?


첫째이유는 하나님이 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이 병자는 평생 몸의 질병으로 삶의 희망과 용기를 잃어버리고 어렵게 살던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베데스다 연못에 물이 마를 때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면 천사가 내려와 어떤 병이든지 낫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병자는 그것을 한 가닥 희망으로 생각하고 매일
연못에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물이 동한다 해도 거동이 불편한 이 사람은 처음 연못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아예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런 불쌍한 사람을 보시고 이 병자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며 질책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이요, 주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쉬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조의 사역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창조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한 번도 쉬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쉬고 잠을 자지만 하나님
은 밤이 맞도록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결코 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목적과 사명과 계획을 그의 뜻대로 이루시기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열심과 열정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오게 했고, 우리를 주님의 형상과 인격과 삶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로, 
그야말로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사62:1)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기까지 결코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으시기에 그분을 믿고 따라가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사명자로 존재하는 우리도 결코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이 당대와 후대를 위하여 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동안 지금의 교회와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선진들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이 땅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이래 한순간도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와 교회는 세상의 공격과, 사탄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1세기 혹독한 박해가 있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의 씨를 완전히 말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덤벼들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더 이상 성도들은 교회에서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들어 내놓고 예배를 드릴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하로, 동굴로 카타콤으로 그들의 몸을 숨겼습니다.  수십 미터의 지하에서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채 매일 눈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현재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위로로 삼고 힘을 다해 자기들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지하에서 할아버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시신을 다락에 모시고 아들과 딸들이 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기독교 신앙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면서, 없어질 듯 없어지지 않으면서 기독교와 성도는 땀과 눈물과 피로 신앙을 지켰고,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지
난 2000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쉬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의 부흥과 발전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황무지와 같은 한국 땅에 복음을 들고 쉬지 않은 개척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에 하나인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결코 쉬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땅, 척박한 이곳에서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생명을 다해 동네와 마을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에게 성경과 예수를 전했고, 진리와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명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을 위해, 한국 땅에 복음화를 위해 그들은 땀과 눈물과 피를 쏟았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이렇게 교회가 많아졌고, 기독교가 든든하게 세워졌으며, 나도, 우리도 믿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결코 쉬지 않았습니다.  아니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열정과 헌신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오직 복음의 빚진 자로 한 시대를 살면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황무지와 같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 결코 쉬지 않았기에 우리도 쉴 수가 없습니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쉬지 말고 수고해야 뭔가를 얻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은 인간의 삶을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습니다.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하는 인생입니다.  시편에서 모세는 인생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간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수고와 슬픔’으로 규정했습니다.  인생은 노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이고, 쉬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수고와 땀으로 모든 것은 얻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여러분, 심는 대로 거둡니다.  뿌린 대로 얻어집니다.  수고한대로 결과를 얻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가 정녕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법입니다.  그래서 쉴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서 되는 일은 없습니다.  땀과 눈물과 수고로 모든 것은 얻어집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만이 아니라 신앙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적성숙을 위해 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를 향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입니다.  더 나아가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까?  바로 그런 기도의 수고를 통해 응답의 결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기도와 함께 말씀을 강조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경건의 두 기둥이라고 하는 기도와 말씀을 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 이것을 깨달은 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밤과 낮으로 묵상하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씀을 사랑하고, 붙잡는 것을 결코 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쉬지 말고 해야 하듯, 말씀도 주야로 쉬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성숙이 이루어지고, 바로 거기에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정한 행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건생활을 통한 내적성숙을 위해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데, 동일하게 외적성장을 위해서도 우리가 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초대교회는 내적성숙만 이룬 교회가 아니라 외적성장도 이룬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진정한 교회의 모델입니다.  그들의 외적성장을 어떻게 말합니까?  처음 120명으로 시작된 교회의 성도가 3000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부흥하더니 이제는 남자의 수가 5000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수만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구원받는 자가 더하였고,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고, 나중에는 셀 수 없는 무리로 번졌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숫자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아졌으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왔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초대교회의 외적성장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저절로 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교회는 잠잠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성장을 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인간은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어느 정도 성장했으면 가만히 있어도 될 일이라 생각되지만,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적성숙만이 아니라 외적성장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전도하기를 결코 쉬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전도의 대상이었습니다.  한순간도 사람을 전도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고,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처럼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통하게 될 때 내가 만난 예수에 대해 자신 있게 전했습니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면서 초대교회는 셀 수 없는 무리로 외적성장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금년 한해 우리교회는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을 목표로 출발했습니다.  특히 지난 7번에 걸쳐 내적성숙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이제 외적성장의 목표도 이루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우리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나만 구원받아 행복해서는 안 되고, 나를 넘어서 부모와 형제와 이웃과 주변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 인생의 참된 행복을 우리처럼 맛보고 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이 땅에 남아 잇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사명자의 길을 걷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교회가 여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제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어진 몫이 있습니다.  나에게 맡긴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점점 성전입당의 자리로 다가갑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성전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크고 넓고 아름다운 공간에 썰렁한 자리를 한번이라도 상상이라도 해보셨습니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새봄과 함께 복음의 불을 다시 붙여야 합니다.  외적성장은 우리의 수고, 나의 수고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우리를 부르시는 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믿음의 선진들도 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땀이 없으면 결코 성장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쉴 수가 없습니다.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그날까지, 쉬지 말고 가야하고, 쉬지 말고 감당해야 하고,쉬지 말고 수고해야 합니다.  특히 기도를 쉬지 말고, 말씀을 쉬지 말고, 전도를 쉬지 맙시다.  그래서 이 한 해 동안 내적으로 성숙하고, 외적으로도 성장하는 우리 개인, 우리교회가 되어 모두의 기쁨이 충만한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