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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의 탄생은 BC와 AD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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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0년간의 최악의 인물로 워싱턴 포스트지가 선정한 독일의 히틀러는 한 천년이 시작되는 1900년 11세의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린츠의 실업학교 학생이었고 그림과 체육 과목 외에는 성적이 불량해 유급까지 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히틀러보다 6세 연장이어서 당시 17세. 고향을 떠나 포를림포폴리의 학교에 다니고 있던 그는 몇 번이나 학교에서 도망치다 실패한 말썽꾸러기였다고 합니다. 걸핏하면 칼을 뽑아들기 일쑤였고 넘치는 정력을 주체 못해 씩씩거렸습니다. 러시아의 레닌은 29세의 나이로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1900년을 맞았고 이해 1월 29일 만기로 풀려났습니다. 스탈린은 레닌보다 8세 연하 21세의 나이로 티플리스의 신학교에서 막 퇴학을 당해 있었습니다. 그는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였습니다. 중국의 마오쩌뚱(모택동)은 아직 7세의 어린이였습니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아니어서 샤오샨의 고향에서 농민이던 아버지를 따라 들일을 거들며 3명의 형제들과 함께 지붕 낮은 집에서 엎드린 채 살고있었습니다. 이들은 한 세기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었고 역사의 현장을 전쟁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출생은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특히 힘이 주어진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동일한 시대의 사람이지만 좋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탈린은 레닌, 모택동과 똑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삶의 영향력을 전쟁과 파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건설을 위해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1900년이 시작될 때 프랑스의 드골은 10세.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4명의 형제와 살며 자기 전에는 독일에 빼앗긴 알사스로렌 땅과 프랑스를 위해 꼭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미국의루스벨트는 18세로 하버드대학에 진학하여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영국의 처칠은 26세로 민족을 향한 정열에 불탔습니다. 평화와 건설을 위해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과 전쟁과 파괴의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의 차이는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셨느냐 모시지 않았느냐의 차이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의 영향력은 달랐습니다.

그리스도는 예고된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낳기도 전에 지어졌습니다. 이미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예수님은 우연히 이 땅에 탄생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살다가 유대인의 핍박받는 상황을 보고 종교를 창시한 분이 아니십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파에서 탄생할 것까지 이미 예고 해 놓으시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대해서 구약에는 350여 가지의 예언이 있습니다. 동정녀에게 나실 것,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 등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청춘 남녀들이 모여 불륜의 아이들을 낳으라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백화점에서 여러 가지 상품을 진열해 놓고 예수를 이용하여 장사하라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위험에서 구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구원하다는 말입니다. 성탄절에 더 많이 죄를 지라는 말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17-19세기를 거치며 자유를 챙취하기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20세기에 와서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아마 21세기는 박애, 복지가 우리 인류의 이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류 역사와 개인의 삶에 암적 존재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류의 미래는 보장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길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의미의 "임"과 우리와 라는 의미의 "마누"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엘"이 결합된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통하는 인류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는 자, 가난한 자, 병든자, 희망이 없는자, 위로를 원하는 자, 고독한 자, 절망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실패한자, 병든자와 함께 하십니다. 16세기는 스페인, 17세기는 화란, 18 세기는 프랑스, 19세기는 영국, 20세기는 미국이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성탄절은 역사의 이정표가 되어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섭리하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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