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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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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곤 목사(열린교회)

'분노 그 자체가 죄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성경에 에 의하면 분노와 그에 버금가는 감정들 모두 하나님 말씀과 대치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엡4:26). 성경은 '적대감'과 '격한 감정'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극한 분노를 느꼈을때 하나님은 그런 감정 자체도 원치 않으실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분노가 느껴지는 것 자체를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에 뒤따르는 행동은 우리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자신을 분노케 한 사람을 계속 떠올리면서 복수할 기회를 찾거나 폭력을 휘두른다면 분명히 죄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므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 태도를 연습해야 한다.

무엇이 분노의 감정인가?
분노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복잡한 반응이다. 그래서 분노로 표현되는 행동 중에는 죄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극도의 피로는 분노와 비슷한 반응을 나타낸다. 온종일 일에 지친 엄마라면 어린 아들이 우유를 쏟을 극도로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기에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극한 감정을 느낄 수 도 있다.

극심한 당혹감 역시 극도의 피로로 인한 분노처럼 죄가 되지 않는 감정이다. 또한 극심한 좌절감도 분노와 같은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거절은 다른 식으로 나타내는 분노의 감정이다. 예를 들어 실연당한 여자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앙갚음을 하는 경우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미워해서라기 보다는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부정적인 많은 감정들을 통해서도 분노를 발산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분노와 관계된 모든 감정을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은 내면의 갈등을 토로했다
(롬7:21-24).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선악에 대한 내면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분노, 질투, 시기등이 내면적 본성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노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타고난 죄의 본성은 ꡐ육적인 분노ꡑ라고 부를 수 있는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좌절감이나 호르몬 작용 또는 감정적 심리적 필요에서 생기는 분노와 구별되어야 한다. 이 분노는 거룩하고 의로운 모든 것과 상반되는 것이며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성령께서 죄의 몸의 멸하도록 은혜 주심으로만 가능하다(롬6:6).

육적인 분노의 특성은 무엇인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분노 즉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폭력을 행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베드로가 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버린 사건을 통해 아무리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설령 예수님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라 해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옳다는 사실이 그릇된 태도와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분노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심리학자들은 분노는 분출시키거나 언어로 표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격한 감정을 억누르거나 속에 담아두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해롭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을 억지로 가두어두면 이로인해 우울증, 근심, 긴장감, 또는 여러 신체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처럼 '분노는 발산해야 한다'라는 심리학적 발견과 '성내기를 더디하라'는 성경 말씀을 어떻게 조화살 수 있을까? '해가 지기 전에 분노를 해결하라'(엡4:26)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이 고민에 도움이 될것이다.
분노한 감정을 놓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도움과 충고를 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으라.
상대방에게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보여줘라.
하나님은 우리가 인내를 배우면서 성장하도록 괴롭고 절망적인 일들은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라.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수년간 나의 태도를 고쳐달라는 기도를 통해 점진적으로 고쳐주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해 가면서 잘못한 일에 강한 죄책감을 느끼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존 헨리 조웻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분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기 싶어하시기 때문에 분명한 요구를 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도 이 점을 인정한다. 상당한 훈련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음부터 성숙한 태도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기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점차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이 되어 가기를 요구하신다. 성령께서도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시103:13)"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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