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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와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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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종교는 형이상학의 차원이다. 그래서 표면으로 드러난 평면적 형식만을 보면 비슷한 점이 많게 보인다. 대부분의 종교는 번뇌와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인간 존재를 구도(求道)의 길을 통해 구원받게 한다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영적 세계와 영혼을 터치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이 달라서 그렇지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의 차원은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신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별히 영성에 있어서 그렇다. 가령 노자와 예수를 비교해볼 때 비움 자체만 보면 노자와 예수의 사상이 만나는 것 같고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예수도 비웠고 노자도 비움을 말했다. 모든 영성은 비움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원적인 종교심리학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비교평가에 불과하다.

예수의 영성은 비움 자체부터가 다르다. 인도의 요가나 명상,노자나 석가,계룡산에서 수행하는 것은 내적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우주의 원리와 법칙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맹목적 성향의 비움은 범신론적이고 종교혼합주의 뉴에이지 사상에 불과하다.

예수의 비움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입고 성육신한 것으로 시작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하나님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역시 육체적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시작하고(갈 5:24) 예수의 생명과 하나님을 가득 채움으로써 성숙한다(갈 2:20,고전 3:16). 그런데 우리가 채워야 할 하나님은 일반 종교의 명상이나 제1원리를 찾아가는 형이상학의 범주를 초월한 절대 유일자요 만유의 주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성령으로 채움으로써 절대자를 만나고 영성을 완성한다.

그런데 오늘날 범신론적 종교다원주의 관련 명상이나 영성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심지어 기독교인들마저 현혹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예수의 영성을 범신론이나 혼합주의적으로 희석시키려고 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탄의 기도(企圖)다. 우리가 노자의 영성만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감성적 카타르시스는 있을지언정 구원과 생명이 없다. 영성의 차원은 무엇을 위해,무엇 때문에 비우는가 하는 대상이 문제다.

겨울 들녘은 모든 것을 비웠기에 모든 것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이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비우자. 성령 하나님을 채움으로써 영성을 회복하고 그분을 더 사랑하고 헌신함으로써 성숙하자. 노자와 예수는 다르다. 예수의 영성만이 영혼이 사는 길이며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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