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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하라-이성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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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 8-9) 회개는 주의 명령이요 주의 소원인 것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이는 하면 하고 말면 말고 할 것이 아니다. 아니하면 아니 되는 주의 뜻이니라. 아니하면 아니 되는 주의 지상(至上) 명령이요,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주의 뜻이니라. 회개는 구원의 입문이요 기초인 것이니, 복음의 대지(大旨)가 회개요, 저주와 멸망을 막는 요새(要塞) 되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말하기를 회개는 제이의 무죄요, 향상의 별명이라 하였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에 간다. 멸망받아 마땅한 니느웨 성은 회개함으로 재앙을 면한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사회나 깨닫고 회개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려니와 회개치 아니하면 멸망받는다. 회개는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 죄인 하나가 회개함으로 기뻐하심이(눅 15:7) 마치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매 그 아버지가 소를 잡고 잔치하며 기뻐함(눅 15:11- 32) 같으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회개하여야 할 것인가? 그것은 지(知)·정(正)· 의(義)· 행(行)으로 나타낼 수 있다. 1. 지적으로 죄를 깨닫는 것이다 자기의 진상을 알아서 내 죄와 허물을 깨닫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허물 주머니를 두 개 만들어 앞뒤로 차게 하되 남의 것은 뒤에 차고 내 것은 앞에 차도록 한 것인데, 못된 인간들이 앞뒤를 바꾸어 남의 허물 주머니는 앞에 놓고 제 허물 주머니는 뒤에 놓았기 때문에 재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똑바로 바꾸어 내 허물 내 잘못을 먼저 알아 솔직하게 인정하는 동시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세리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은 꼭 구정물통 같아서 가만히 두면 물이 맑아 깨끗한 듯하나 한 번 막대기로 속을 휘저으면 생선 가시, 콩나물 찌꺼기, 김치 줄거리가 우그르르 떠오른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속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신사요 숙녀이지만 모세의 지팡이(율법)로 한 번 들추어 보라. 무엇이 나오는가?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상 양심상으로 지은 죄가 우르르 나올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죄를 깨달아 알고 나는 죄인인 것을 자인하는 것이 회개의 첫째 단계이다. 2. 정적으로 죄를 슬퍼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죄를 알기는 알았는데 죄에 대한 원통한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도 없으니 이는 철면피(鐵面皮)이다. 죄를 자랑하는 것은 마귀 새끼요, 죄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요, 죄를 슬퍼하는 것은 성도라고 하였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세상의 근심은 죽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후 7:10). 하늘 나라에 가는 성도는 죄를 슬퍼하고 근심하고 울어야 한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눈이 맹숭맹숭한 사람은 걱정이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울라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래 전 충청도 은산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을 때의 일이다. 어떤 할머니가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대성 통곡을 했다. 나는 할머니가 은혜받고 우는 줄 알고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한참이나 더 울다가 일어나며 하는 말이 말 마소! 나는 죽은 영감 생각나서 울어요 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울음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으나 무가치한 것이요, 자기의 진상을 알고 죄를 깨달아 뉘우치고 슬퍼하며 애통하는 눈물은 회개를 이루는 둘째 단계이다. 3. 의지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 옳지 않은 것을 깨끗하게 씻어 맑게 할 것이라(요일 1:9).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나님께 고백할 것은 하나님께 할 것이요, 사람에게 고백할 것은 사람에게 할 것이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에 겸손해진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 체면 신분을 생각하고 돌아봄으로써 고백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죄를 고백할 때에 정직하게 된다. 하나님은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아무 좋은 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시느니라(시 84:11). 죄를 고백하면 마음에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된다. 죄인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다. 요나가 있는 배(船)는 풍랑에 시달리고, 요나를 삼킨 큰 고기는 3일간의 복통(腹痛)을 면치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요나를 바다에 내던질 때에 풍랑은 평정되고 요나를 토하여 버릴 때 큰 고기는 진통(鎭痛)이 되어 꼬리치며 기뻐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죄인의 마음속은 언제나 공포에 떨고 평안이 없는 것이니 요나를 토하듯 우리 속에 있는 죄를 고백하는 것은 참 평안을 얻는 것이요, 회개를 이루는 셋째 단계인 것이다. 4. 행위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 하였는데, 회개의 열매라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소극적 방면과 적극적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1. 소극적 방면의 열매는 곧 변상(辨償)이니 이전에 지은 죄를 청산하는 것이다. 삭개오는 회개할 때에 내가 누구의 것을 토색(討索)하였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 나이를 속이고 반액 차표를 산 일이 있었는데, 후에 회개할 때 편지를 써서 중화역장에게 돈을 부쳐 주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가 너를 인하여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 네가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결단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3-26) 하셨다. 우리가 사람으로 혐의가 있거든 풀어 주어야 하고 물질로 잘못된 것은 물질로 해결하여야 할지니 이것이 소극적 열매이다. 2. 적극적 방면의 열매는 곧 의(義)의 열매(빌 1:11)이니 그 생활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의 생활은 세마포(계19:8)를 짜는 생활이니 정성으로 흠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이 깨끗하고 화려하게 짜야 할 것이다. 우리 주님 오실 때 맞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예복이라야 할 것이다. 수정같이 맑은 마음으로 씨줄을 놓고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생활, 주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생활로 날줄을 삼아 짜야할지니 미친 여자 베 짜듯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회개한 후에 다시 범죄하면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듯이, 돼지를 씻겨 주어도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들어가듯이 과거에 주님 가슴에 창칼을 박은 것도 원통한데 다시금 주의 가슴에 잔 못을 박는 것이니 얼마나 주께서 슬퍼하시겠는가! 경성하여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날마다 시간마다 짤지어다. 이로써 완전한 회개를 이룩하였다 할 것이니 불완전한 회개는 모래 위의 집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무너지리니 조만간에 예수 다시 못박아 죽이고 자기 갈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철두철미하게 회개하라. 그 기약은 이르렀고 하늘 나라 가까웠다 외치시는 주의 음성 기쁜 소식이 아닌가 아, 회개하세요 그 죄 아, 예수 믿어요 속히 금생 내세 복받기는 이 길밖에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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