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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열매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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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재 목사 (별세목회연구원장, 분당 한신교회 담임)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꽃은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서도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이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많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꽃이 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빈들에, 토담 사이에 그리고 화원에 피어 있는 작은 꽃 한 송이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소쩍새 우는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꽃 한 송이에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들녘에 피어 있는 한 송이 백합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한 번도 우리에게 꽃이 되라거나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꽃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아5:13)’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구나(아2:12)’ 동시에 꽃의 허무함도 말합니다.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103:15)’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벧전1:24)’ 왜 성경은 꽃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꽃의 허무함도 말합니까?

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꽃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꽃은 식물의 성장 과정에 따라 피지만 식물이 존재하는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자체로 생명력은 없습니다. 꽃은 또한 재생산하지 않습니다. 꽃은 열매를 위해 그릇을 준비할 뿐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책망한 것은 무화과나무에 꽃이 없어서가 아니라 열매가 없어서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본래 꽃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꽃이 없다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비록 꽃은 없어도 열매는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무화과나무는 일년 중 거의 10달 이상 동안 열매를 맺습니다. 한 여름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열매를 맺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셨던 무화과나무는 열매 맺을 때인데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책망했고 나무는 즉시로 말랐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예수님의 폭군성과 무자비성을 나타내는 비유라고 하는 것은 영적인 오해일 뿐 아니라 식물학적 무지의 소치입니다. 꽃이 없는 나무는 있어도 열매 없는 나무는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식물학적 원리를 예수님은 지적한 것 뿐입니다.

우리는 꽃을 피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해 삽니다. 꽃을 피운다고 해도 그 자체를 목적삼지 말고 수단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for) 열매를 맺어야 하고 하나님을 통하여(through)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생물학자인 저스터스 본비리그가 말한 대로 흙속에 질소, 석회, 인산, 칼륨만 있으면 열매는 언제든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요15:7),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롬8:11) 우리는 언제나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열매가 있는지, 열매 맺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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