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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추수기의 고난과 샬롬 (삿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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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기의 고난과 샬롬 (삿 6:19-24) 

감사절은 영어로는 Thanksgiving Day, 문자 그대로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세속화의 물결 속에 감사의 의미가 점점 약해집니다. 우리 나라의 추석과 같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오랜 만에 모이는 homecoming day의 성격이 더 강해지고, 감사절 다음 날에 있는 Black Friday에 무슨 shopping을 할지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더구나 금년부터는 Black Friday 세일 시간이 금요일 새벽에서 목요일 저녁 9시로 당겨지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금년 한 해를 돌아볼 때 무엇이 가장 감사합니까? 혹은 무엇이 가장 아쉽습니까? 우리는 고난과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세 명령형이 전부 현재형으로 되어 있으니 계속해서 기뻐하라, 계속해서 기도하라, 계속해서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암에 걸렸을지라도, 비록 사업에 실패했을지라도, 비록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라고 합니다. 전부 2인칭 복수로 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가 함께 기뻐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감사해야 합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1)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하는 것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option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 뿐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만 가능합니다. 

2)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면 불행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은혜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어떠한 질병도, 어떠한 문제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불확실하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니다. 사람은 변하고 친구는 혹시 내 곁을 떠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더운 여름에도 땀 흘리며 수고한 농부들이 가을에 많은 열매를 거둡니다. 그런데 추수기에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추수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기쁨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슬픔과 고통은 명절 때와 함께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명절 때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비애와 슬픔을 느끼는 법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행한 일이 실제로 큰 명절 전후에, 특히 추수기에 임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드온이 고난 중에 평강을 경험합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다시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미디안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가나안 복지를 선물로 주셨는데 그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산으로 쫓겨 올라가 하루하루 소망 없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은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씨를 뿌릴 때만 되면 미디안 사람들은 어김없이 쳐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들이 떼로 몰려옵니다. 그들은 아예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곳에 진을 치고 약탈을 합니다. 농사를 짓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식물도 보이는 대로 약탈합니다. 양, 소, 나귀들도 보이는 대로 빼앗아갑니다. 

그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이 사는 곳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더 이상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은 애써 가꾼 일 년의 농사를 자기 마음대로 수확하지도 못하고 적군에게 빼앗기는 추수기를 맞이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가나안 땅의 우상을 섬기고 타락한 대가로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 추수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고난을 칠 년이나 반복하여 당하였습니다. 사사기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이 그 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바로 부르짖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미디안 족속들로 인하여 온 국토를 황폐하게 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7년 만에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기드온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기드온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보통 밀타작은 넓은 마당에서 소가 끄는 타작기를 이용하여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렇게 타작을 하다가는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켜서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타작물까지 빼앗길까봐 땅에 파 놓은 포도주 틀에 숨어 몰래 타작을 합니다. 

기드온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나님의 사자가 말을 꺼냅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걸핏하면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권능을 이야기했는데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왜 우리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야 합니까? 왜 우리가 미디안에게 시달려야 합니까? 기드온의 불평은 그 당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졌던 생각을 반영합니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의에 빠진 기드온을 탓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소심한 그를 큰 용사로 부르십니다. 그 이유는 그의 현재를 보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장차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힐 때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국가적인 위기를 해결해주기를 바랐는데 하나님은 미디안과 싸울 사람이 바로 기드온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그가 주시는 힘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 우리 집은 므낫세 지파의 유력한 집안도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형제 중에 가장 별 볼일이 없는 자입니다. 힘없고 연약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기드온을 붙잡으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16절) 

말씀은 좋지만 눈앞에 보이는 미디안은 너무 강하게 보입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 간격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확신케하는 표적을 조심스럽게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이를 허락합니다. 기드온이 급히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이 준비한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다가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고 명령합니다. 준비한 음식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니까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습니다. 기드온이 놀라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합니다. 

기드온이 그곳에 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부릅니다. “여호와는 평강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바위에서 음식물이 불 탄 흔적과 자기가 쌓은 단을 보면서 드디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깨닫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사가 됩니다.


청교도들이 고난 중에 감사합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국교도들로부터 많은 박해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신대륙으로 왔습니다. 지금부터 392년 전인 1620년 9월 6일에 남자 78명, 여자 24명 등 도합 102명이 Mayflower 호를 타고 보스턴 남쪽에 위치한 Plymouth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이 힘든 일 년을 지나면서 풍토병과 영양부족으로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었을 때 청교도들은 옥수수, 콩 등 추수한 것과 들에서 잡은 칠면조를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도저히 감사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섬길 수 있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이 온 것을 기념하여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Plymouth 언덕에 “조상들의 기념비” (Forefather's Monument) 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조각에는 청교도들의 정신이 새겨져 있는데 여인의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습니다. 그 동상 밑에 있는 주춧돌에는 faith (신앙)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1864년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Lincoln이 11월 넷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제정하며“우리의 경건한 조상이 이 아메리카 땅에 감사의 씨를 뿌린 후 그 신앙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하여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한다”로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어려운 추수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의 소산을 풍성하게 부어주실 때도 있지만, 거두어 가실 때도 있습니다. 일 년 동안 심고 가꾼 것들, 또는 벌어서 모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고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어려운 때에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이웃과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드온처럼 말씀에 순종하여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기드온의 삼백 명의 용사로 미디안 연합군을 무찌르게 하셔서 평화를 되찾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승리와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삶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을 굳게 믿고 하나님을 섬길 때 소망과 평강의 감사절이 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청교도들과 같이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하는 것은 성숙한 성도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범사에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옥중서신 중의 하나인 골로새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합니다.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마음은 예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신 자들입니다. 그 주님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으며, 받은 교훈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릴 때 그분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능히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2)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8-20)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수동태입니다. 성령 충만이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려면 한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의탁입니다. 또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이 현재형입니다. 성령 충만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없기에 계속해서 성령 충만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 인간을 향해 표현됩니다. 서로 화답하고 노래하며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결국 성령 충만할 때 성령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환경을 초월하여 지속적인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3)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에게 기도는 곧 감사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감사와 기도를 같은 뜻으로 이해하였기에 기도할 때 감사하라고 요구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염려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길은 모든 일에 기도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울은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다’는 것은 인간이 염려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힘쓰는 노력보다 하나님의 평강이 더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요즘 새벽기도 시간에 욥기서를 다룹니다. 욥의 친구들이 주장한 인과응보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이 욥이 악인임을 증거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과응보 이론 자체는 옳지만 적용이 잘못 되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돌팔이 의사처럼 잘못된 진단을 하고 엉뚱한 처방을 합니다. 욥은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친구들의 진단과 평가가 잘못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랑하실 정도로 의로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보상이 있기는커녕 도리어 큰 재앙을 당했습니다. 가족과 재산, 사회적 지위와 건강 등 모든 것을 잃고 절망적인 고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안겨주신 하나님을 향해 불평이나 원망 대신 여전히 신실한 관계를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욥은 그를 둘러싼 삶의 수단과 울타리가 와르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에 닥친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해 탄식하기도 하지만, 고난에서 구원해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문제해결의 참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롬 8:39) 바울의 고백처럼 욥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욥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고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시간 권진혁집사가 간증을 합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그의 아내 권현순집사가 3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현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키모를 받고 힘들어서 오늘 예배는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권진혁집사에게 어떤 마음을 주셨는지 들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그가 흘리신 보혈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적셔짐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 한가지만을 가지고도 평생 감사할 이유가 있고 이 소망의 근거를 우리의 이웃에게 부지런히 증거하여 그들도 이 기쁨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고 우리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교회,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기쁨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일들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추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우리의 입술과 행동으로 계속 표현되어야 합니다. 감사하기 위하여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고 우리의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지소산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물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아울러 드려야 합니다. 일 년에 한번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1년 365일 감사해야 합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갔던 감사의 요소들을 찾아내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가족이나 친지에게 감사의 편지를 띠우든지 전화를 드려야합니다. 

추수기에도 고난은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고난 중에 감사할 때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 사업, 교회를 통하여 주신 것만 헤아려보아도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습니까? 예배 생활, 기도생활, 헌금생활 등은 우리의 신앙을 측정하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바랍니다. 

즐거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를 드리는 동안에 더 많은 감사의 열매들이 삶 가운데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전혀 기도에 힘쓰면서 어느 때보다도 감사의 말을 많이 합시다. 서로 위로합시다. 서로 격려합시다. 감사함으로 영육 간에 더욱 윤택하여지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평강으로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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