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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소망을 품고 (시 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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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소망을 품고 (시 71:14)

(시71: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

1.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입니다. 미국의 그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쓴 “우리 시대의 생애(A Life in our Times)”라는 책에서 자기 집에 고용했던 에밀리 윌슨이라는 가정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 급한 일로 갈브레이스 교수에게 전화를 했는데 에밀리라는 가정부가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백악관이오. 급한 일로 교수와 통화할 일이 있으니 교수를 바꿔 주시오.” 이때 이 여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지금 피곤하셔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바꿔드릴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격앙된 말투로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 대통령이오. 급한 일이오. 당장 깨우시오.” 

에밀리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
죄송합니다. 대통령 각하, 저의 주인은 갈브레이스 교수님이시고 저는 그를 위해 일하도록 고용된 사람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 

끝내 그녀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린든 존슨 대통령은 갈브레이스 교수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 가정부 참 잘 두었더구먼.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꼭 전해주게. 내가 그녀를 백악관에서 고용하고 싶다고.” 

그 여인은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 자신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시16:1-1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의 이 고백은 인생의 참된 기쁨과 복이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주 밖에 나의 복이 없나이다.”는 다윗의 신앙고백에서 “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가 되시며, 구주가 되시며,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는 고백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삶이 어떠한 경우, 어떠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오직 인생의 참된 복이 되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결실하는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참된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B.C. 985년경, 다윗 왕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가슴 아픈 피난길에 사울 집안이 몰락하여 출세의 기회를 몽땅 잃어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을 계속 쫓아가며 돌을 던지며 이렇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영영 가거라!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이 불한당 같은 자야! 네가 사울의 집안 사람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주께서 그 피 값을 모두 너에게 갚으신다. 이제는 주께서 이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 주셨다. 

이런 형벌은 너와 같은 살인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재앙이다.” 그러자 따르던 신하가 왕에게 “죽은 개가 높으신 왕을 저주하는데, 어찌하여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제가 당장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잘라 버리겠습니다.”고 나섰습니다. 다윗은 “나의 일에 너희가 왜 나서느냐? 주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며 만류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모든 신하에게 말합니다. “생각하여 보시오. 나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도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하물며 저 베냐민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 주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삼하16:5-12)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 가운데서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를 본 것입니다. 다윗은 장남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범하는 근친상간의 죄를 범했을 때, 그에 대한 적절한 징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친누이 다말이 이복 형 암논에 의해 강간당하고 버림받자 이에 격분한 다말의 친동생 압살롬이 복수를 단행합니다. 형제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자리에서 형 암논이 술에 취했을 때 자객을 시켜 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도망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윗은 몹시도 괴로워하며 슬퍼합니다. 분명 압살롬은 형제를 살해한 살인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3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한 마디 훈계나 징계도 없이 방치합니다.(삼하 13,14장) 

이 후 곧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한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사랑하는 압살롬의 반역과 그에 따른 시므이의 저주가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훈계, 징계로 깨달은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를 자식들의 죄악을 그대로 방치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로 깨달은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어느 날 왕궁 옥상을 거닐다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에 빠져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 간통하고, 밧세바가 임신하게 되자 밧세바의 남편인 충신(忠臣)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 함정에 빠뜨려 죽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청부 살해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실리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삼하12:9-12)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터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주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라며 그 훈계와 징계를 달게 받은 것입니다.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이 말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길에 시므이로부터 온갖 저주와 욕설, 멸시를 받고 있지만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소망으로 반란군이 이내 진압되고 왕궁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시편146:5을 보겠습니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 삶으로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죽은 시체와 같은 형국(形局)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그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시체들이 일어나리라는 부활의 소망을 확신했습니다. 이사야26:19입니다.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 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일 수 없으며, 그들의 헛됨이 하나님의 헛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대 비극인 죽음마저도 정복하시는 생명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이 믿음에 대한 소망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침울한 절망의 애가가 부활의 환호로 돌변하게 합니다. 거듭되는 환난과 징벌에 눌려 사망의 그늘 가운데 누워 있던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 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는 말씀에서 “주의 이슬”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뜻합니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乾期)에 밤에 흡족히 내려 땅을 적시는 이슬은 팔레스틴 땅의 농작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슬’은 모든 생명의 상징인 것입니다.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양도받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야곱이 받은 축복이 바로 ‘하늘의 이슬’이었습니다.

(창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이슬’이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슥8:12)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과연 하나님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택한 백성, 성도 여러분에게 ‘이슬’과 같으신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호14:5-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하나님의 이슬’이 함께 할 때, 백합화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변화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슬’이 내리게 될 때,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혀 견고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슬’이 함께 할 때, 백향목 가지가 퍼지는 것처럼 번성해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슬’이 내리게 될 때, 감람나무처럼 사람과 하나님께 귀히 쓰이며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았던 다윗은 이러한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삼하7:9-13)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이슬’이 내리게 될 때, 레바논 백향목처럼 진한 향기를 발하는 축복, 다시 말해 영적으로 성숙하여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인격과 성품의 삶을 가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시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이슬’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다음으로, 항상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 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훈계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이 그러한 훈계와 징계를 달게 받아들인 것은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복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16:7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훈계하시고 징계하시는 목적은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만이 생명과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인생을 지으시고 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를 받을 때 지혜롭게 됩니다.

(잠9: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잠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인생은 하나님의 훈계를 받을 때 큰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인생은 하나님의 훈계를 받을 때 생명의 길로 행할 수 있습니다.
(잠4: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잠10: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중 광야에서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되는 축복은 받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은 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는 인생들에게 고난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생활은 고난의 여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생활로 인도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를 배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명기 8:2-6을 보겠습니다.

(신8:2-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훈계로서 주어지는 징계나 고난을 받을 때는 감사함으로 받아 순종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자신을 훈계하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송축, 찬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항상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의 복된 삶의 자세입니다. 다윗은 그야말로 어떠한 경우에도,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더욱 찬송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B.C.853년경, 모압, 암몬, 마온 3개 연합군이 유다 왕 여호사밧을 치고자 공격해왔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전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성전에 나가 간구했습니다. 

(대하20:6-12) 가로되 우리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저희가 이 땅에 거하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산 사람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 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우리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여” 라는 기도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주신 이 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금 살아계셔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며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간구합니다. 이러한 여호사밧 왕과 백성들의 금식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대하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이같은 하나님의 응답에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대하20: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그리고 여호사밧 왕은 찬양대로 세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게 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라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합니다.(대하20:21) 

찬양대가 찬송을 부르자 하나님께서는 침략군들에게 혼란을 일으켜 자기들끼리 서로 치게 하셨습니다. 이때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이 에돔 사람을 쳐서 그들을 완전히 죽이고, 다음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끼리 싸움이 붙어 서로 치고 죽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연합군 중 살아남은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호사밧 왕과 그의 백성들은 그리로 가서 시체를 샅샅이 뒤져 금품과 의복과 그 밖의 전리품을 거둬들였는데 물건이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그것을 거둬들이는 데 3일이나 걸렸습니다. 전리품을 약탈한 지 4일째가 되는 날에 그들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그 곳 이름이 “찬송의 골짜기”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적군의 공격 앞에 오로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찬양만을 드렸는데 적군이 완전히 섬멸되고 엄청난 전리품까지 거두게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비파와 수금을 타고 나팔을 불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곧장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 모든 인접국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과 싸우셨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을 몹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은 평화로운 시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더욱 더 찬송하는 삶이 되어 여러분의 삶에도 ‘찬송의 골짜기’가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 연거푸 네 번에 걸쳐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거느리고 있던 종들이 살해되고 재산을 약탈당했습니다. 이 재난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양떼와 종들을 모조리 태워 죽였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비운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식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막에서 태풍이 불어와 집 네 모퉁이가 무너져내려 그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욥은 일어나 자기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었으니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리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노라.”(욥1:13-22) 욥은 거듭되는 재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욥기서에서 성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욥 36:24)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아니한 욥은 마침내 처음 복보다 더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욥42:12-17)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평생에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 146: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을 찬송함과 하나님을 존숭함이 종일토록 입게 가득한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 71:8)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 는 신앙고백과 삶으로 ‘처음 복보다 더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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