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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를 통한 성도의 하나됨 (마 1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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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통한 성도의 하나됨 (마 18:15-20)

마태복음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우리의 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특히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적인 일들과 사건들을 기적 자체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고, 그 기적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바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아 차리라고 마태복음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마태복음 1장의 내용이 바로 우리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어 말씀하시는 것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곳입니까? 신분과 계급,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가 없는 모두가 평등하고 하나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 이방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직업과 인물이라고 해서 외면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사회통념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의 딸을 구해주셨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딸을 구해주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저주받았다고 그래서 죽어도 마땅하다고 여겨졌던 나병환자를 구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기들과 세리들과 이방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들에 진정한 복음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18장의 내용을 읽어야 18장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장 1절에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여기에서 천국이라는 곳이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내세의 천국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디라고 말씀을 들렸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게 될 지상의 나라, 현세의 하나님 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17절에 보면 이 천국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교회'라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17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어떤 단어가 등장합니까?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왕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두세 사람만 모여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가 교회입니다. 바로 우리가 교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0절의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2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왕으로 고백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누가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란 엄밀히 따지면 예수님을 모신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에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새찬송가 438장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1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3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런데 후렴부의 영어가사를 보면 더 의미가 정확합니다. 

O Hallelujah, yes, 'Tis Heaven, 'Tis Heaven to know my sins forgiven;
On land or sea, what matters where? Where Jesus is, the Heaven is there.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이 바로 교회라고 말씀하는 것이 오늘 본문 17절과 20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8장의 내용의 핵심내용은 바로 교회 안에서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18장 1절에서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냐고 물을 때, 그 천국은 바로 교회에서 가장 큰 자가 누구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교회에서 큰 자는 누구입니까? 

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겸손한 자라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큰 자가 누구냐면 바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어떻게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10절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서로 업신여기지 말고 존중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다 다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2-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여기 계시는 사랑하는 성도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도 없어서는 안 되시는 분들인 것입니다. 옆의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내게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절대 딴 데 가시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생각지도 않은 실수와 허물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잘못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 경우, 죄를 짓게 되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15절부터 17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개인적인 권고를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개인적으로 말하라고 합니까? 쉽게 말씀을 드려서 개인적으로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면, 아예, 꺼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고 먼저 개인적으로 권면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권고를 먼저 함을 통해서 그 사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인적으로 먼저 권면하지 않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에게 알릴 경우에 권면한다는 명목 하에 예수님의 소중한 한 사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7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내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개인적인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으면, 몇몇이 함께 가서 권하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여기서 헷갈려 하십니다. 17절의 말씀을 보고 교회의 치리를 이야기 하면서 '출교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단호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아닙니다. 17절의 말씀은 출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받아 들이지 않은 이들을 '출교'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방인과 세리같이 불쌍히 여겨서 더욱 더 긍휼이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정말 씻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호적에서 빼버리는 부모가 있습니까? 아무리 속을 상하게 하고 말썽을 부려도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부모라면 말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증거가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이야기입니다. 

세상의 조직은 세상의 조직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인 교회는 누군가가 죄를 짓고 회개치 않는다고 해서 버려야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기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방인과 세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고 사랑해 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에 어디에도 이방인과 세리들, 창녀와 같은 이들을 욕하시거나 저주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한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출교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치 않은 자들을 더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들이 돌아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2-14절에 말씀하는 내용이며,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18-20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을 위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18-20절을 보시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나와 마음이 맞지 않다고 해서, 저 사람은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이 조금 실수 했다고 해서 저 사람 안 된다고 해서 안 됩니다. 그러할수록 더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분명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다른 우주 만물은 만드신 것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는데 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는 것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은 완성품이 아니고 미완성의 존재로서 자기 스스로 온전하게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에 보기에 좋았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단다.” 

아프리카 평원의 동물들은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걷습니다. 한 시간 이내에 달리기까지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약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만물의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불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걷거나 뛰기는커녕 기어 다니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완전한 모습으로 설 때까지 누군가 오랜 기간 보살피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은 아주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을 받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후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섣불리 믿음이 좋다거나 온전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모두 온전해져 가는 과정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교회라고 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고 함께 자라 갈 지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 인내하고 참아주고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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