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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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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21-24)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15, 21-24)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사람이 나를 사랑하면....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15, 21,23)  본문에서 일곱 번이나 사용된 단어는 “사랑한다”(ajgapavw)는 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20절 말씀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성부는 성자 안에, 성도들은 주님 안에, 주님은 성도들 안에 있는 것이 성도들의 최종 상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도들이 서로 완전한 사랑의 교제 관계에 있는 것!  그것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하는 겁니다.  무슨 황금 길을 다니고, 보석으로 치장하고, 호화 저택에 사는 것이 최상의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세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15,21)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켜라!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계명이란 어떤 계명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님은 신구약 성경 전체의 계명을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6-40)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결국 사랑의 계명을 지키라는 뜻이 됩니다.  좀 이상하지요?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켜라!  그 계명은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강조된 것은 “사랑한다”는 단어가 아니라 오히려 “지키라!”(threvw)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것과 계명 지키는 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방법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키는 것은 눈에 보입니다.  행위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면 지켜야 합니다. 

 구약성경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구약 성경에 “믿으라”는 말씀과 “지키라”는 말씀이 함께 사용됩니다.  우리가 항상 외우는 신명기 말씀에 보세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가르치고,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표현된 것이 바로 새기고, 가르치고, 매고, 붙이고, 기록하는 행위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라”(rm'v;, 솨마르)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신앙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신8:1)  

오늘 말씀에서 주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threvw, 테레오)  지키는 것에 대해서 깊이 유의해야 합니다.  지키라는 말을 강조한 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항목이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지키라는 말인가요?  
  
소요리문답(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제1문에 보면 이런 항목이 있습니다.  인간의 첫째 목적이 무엇인가?(What is the chief end of man?)  인간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제2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해야 하는지 지시하셨는가?(What rule hath God given to direct us how we may glorify and enjoy him?)  

신구약 성경에 담긴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지 지시하는 유일의 규칙이다.(The Word of God, which is contained in the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is the only rule to direct us how we may glorify and enjoy him.)  

제3문입니다.  성경이 가장 요긴하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What do the Scriptures principally teach?)  성경이 가장 요긴하게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을 것인지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이다.(The Scriptures principally teach, what man is to believe 
concerning God, and what duty God requires of man.)
  
이 문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주셨다.  성경은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둘째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 담고 있다.   이 전제 아래 소요리문답은 크게 두 주제를 가르칩니다.  첫째 제4문에서 제38문까지로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 섭리, 구원 역사 등입니다.  둘째 제39문부터 제107문까지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이 의무 조항이 바로 지키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소요리문답이 가르치는 바, 지켜야 될 의무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소요리문답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39문,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의 의무는 무엇인가?(What is the duty which God requireth of man?)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의 의무는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The duty which God requireth of man, is obedience to his revealed will.)  

제40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순종할 규칙으로 처음 나타내신 것은 무엇인가?(What did God at first reveal to man for the rule of his obedience?)  그것은 도덕법이다.(The rule which God at first revealed to man for his obedience, was the moral law.)  

제41문, 도덕법이 어디에 간략히 포함되어 있는가?(Where is the moral law summarily comprehended?)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다.(The moral law is summarily comprehended in the ten commandments.)  

제42문, 십계명의 대략이 무엇인가?  (What is the sum of the ten commandments?)  십계명의 대략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함 같이 하라는 것이다.(The sum of the ten commandments is, to love the Lord our God, 
with all our heart, with all our soul, with all our strength, and with all our mind; and our neighbor as ourselves.)
  
이 부분을 요약하면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라고 주신 규칙, 하나님의 뜻이 담긴 규칙이 무엇인가?  도덕법이다.  도덕법이 어디에 요약되어 있는가?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기 위해서 지켜야 될 하나님의 뜻은 십계명이다!  소요리문답 체계를 다시 설명한다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법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믿어야 될 내용입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구속 사역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지켜 행해야 될 의무입니다.  그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추상적 행위가 아닙니다.  감성도 아닙니다.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제1계명부터 제4계명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 숭배 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무당 점쟁이 집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헛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면서 하나님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주일 성수, 예배 생활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웃 사랑도 마찬가집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대개 거지 동냥이나 이웃돕기 하라는 말로 생각합니다.  

이웃 사랑은 어떤 이벤트가 아닙니다.  어떤 운동, movement가 아닙니다.  영원히 지켜야 될 일상 삶의 규칙입니다.  어떤 규칙입니까?  제5계명부터 제10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 규칙을 항상 지키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규칙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을 다시 봅시다.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은 새로 주신 게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계명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  

어떤 계명입니까?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다른 하나님이 없고, 다른 구세주가 없고, 다른 성령이 없습니다.  우상 숭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 주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경배생활 해야 합니다.  또한 십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십계명을 풀어 주셨습니다.  부모 공경이 무엇인지?(막7:10-13)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마5:21-26)  간음하지 말라는 뜻이 무엇인지?(마5:27-28)  주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십계명을 지키세요.  이웃을 정말 사랑합니까?  그러면 십계명대로 지키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입니다.  


계명을 지킨 결과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킨 결과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21-23)  
  
첫째로, 아버지께 사랑을 받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21)  하나님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담긴 계명을 지키세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세요.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넘치는 사랑에 풍덩 빠져 수영을 하실 겁니다.  
  
둘째로, 주님이 그에게 나타내십니다.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주님이 비록 육체적으로 떠나 계신다 해도, 영적으로는 우리 삶에 임재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계명을 지킨다면 특별히 주님이 함께하시는 표시로, 뭔가 나타내 보이십니다.  

“나타내리라”는 말은 “ejmfanivzw”(엠파니조) 눈에 보이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하니까 가룟인 아닌 유다, 즉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재빨리 질문합니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2)  아니, 메시아께서 왜 우리에게만 보이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보이시지 않으십니까?  유다는 “나타내리라”는 말씀을 육체적으로 보여준다는 뜻으로 받았습니다.  

왜 주님은 세상 사람들 앞에 군림하시지 않으십니까?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을 세우셔야지요?  그러나 주님은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사람들 눈에 띌 만큼 뭔가 드러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삭이 그랄에 머물 때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원주민들이 시기하여 그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다른 장소에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다시 물이 솟아나옵니다.  또 원주민들이 쫓아와서 이삭의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순순히 양보하고 세 번째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도 물이 펑펑 나옵니다.  세 번째에는 원주민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원주민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어디나 파면 물이 나오니까 이 스토리가 무슨 뜻인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팔레스틴에서 우물을 파는 것은 수십 미터 암반을 뚫고 수맥을 찾는 일입니다.  바다에 빠진 바늘 찾기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파기만 하면 물이 나옵니다.  원주민들은 이삭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저 이삭이란 사람은 양 같이 순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저 이삭이 믿는 하나님은 참 두려운 분이구나!  이삭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삭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창26:28-31)  

요듬 버전으로 각색하면 이런 얘깁니다.  깡패, 조폭이 와서 행패를 부리다가 보니 이삭의 배후에 엄청난 보스가 버티고 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화해를 청했습니다.  우리 사이좋게 지냅시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방법입니다.  오늘 내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나 보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나타나 보이는 삶이 되세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됩니다.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셋째로, 삼위하나님께서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23)  

여기서 “우리”란 말은 성부와 성자, 나아가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창1:26)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속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영원히 함께 사십니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주님이 모든 사람들 앞에 육체적으로 보이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종말이 오기 전에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육체가 아닌 영적인 임재입니다.  

지금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멀리 종말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명을 지킨다면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의 삶이 매일 이루어집니다.  할렐루야!  

신앙은 믿음과 행위입니다.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행위가 있어야 됩니다.  행위가 뒷받침 되지 않는 신앙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신앙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믿음과 행위 이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나?  어떻게 행해야 하나?  믿음은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행위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도덕법,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대로 지켜서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지켜서 이웃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명을 지키는 자 속에 오셔서 영원히 함께 사십니다.  이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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