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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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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20-36)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인생이란 기다리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영광스러운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사실은 단순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그 나라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력으로 또 다시 대림절이 돌아왔습니다. 대림절이란 말 그대로 기다리는 절기가 아닙니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주님이 오셨고 그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이제 곧 다시 오실 그 주님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다리는 절기가 바로 이 대림절 절기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마지막 때에 관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때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때에 나타날 현상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특히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이방에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에도 무서운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은 무서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사람들은 주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을 죽이려고 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서대문경찰서는 마치 어머니가 쓴 것처럼 가짜 유서를 써 놓고 여동생과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이 씨에 대해서 존속 살해 미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그는 지난 25일 오후 1시 40분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집에서 여동생을 흉기로 찔러 기절시키고 1시간 후 귀가한 어머니 김 씨를 목 졸라 죽이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 며칠 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가방 안에 큰 돌덩이 2개와 함께 웅크린 채 시신으로 발견된 4세 남자 아이 박 군을 살해한 용의자는 아이의 엄마 최 씨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아이와 함께 언니 집에서 생활해 온 최 씨는 아이가 별거 중인 아빠한테 가자고 칭얼대자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아이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험악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웃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 말세라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또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도들을 비롯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초대 교회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미 유대인들의 박해도 겪었습니다. 로마인들의 무서운 핍박도 경험했습니다. 또한 교회 안팎에서 도전해 오는 사이비 이단의 공격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좀 달랐습니다. 사실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초대 교회는 주님이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림이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임박한 종말론이 지연된 종말론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복음서 기자들은 지연된 종말론의 당위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토대로 지연된 종말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4장 14절 말씀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역사로 끝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로 마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주도하시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온 세상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마지막 때가 미루어진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박한 종말론이 그 힘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임박한 종말론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더욱 강조되어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또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눅 21:32) 때문에 누가복음 기자는 지연된 종말론을 말했을 뿐 아니라 임박한 종말론도 또한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이 마지막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나타날 하늘의 징조와 땅의 징조 앞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들에게 임할 심판 때문에 괴로워하며 무서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반응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 하면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권하셨습니까?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종말의 징조들이 나타날 때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일어나 머리를 들고 주님을 영접하라고 우리를 권면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종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말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태도는 언제나 종말을 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종말을 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먼저 종말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히 무서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근거는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이기 때문에 그 두려운 종말의 징조들도 결코 우리를 낙심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종말에 대한 그릇된 주장에 미혹되어 현재의 삶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종말에 관한 그릇된 주장 때문에 이미 많은 혼란을 겪은 바 있습니다. 아니 아직도 그런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종말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정이나 직장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건전한 종말 신앙이 아닙니다. 건전한 종말 신앙은 반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건전한 종말 신앙은 오늘을 가장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종말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며 현실의 삶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때에 성실하게 현실의 삶을 사는 자기 백성들을 보고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종말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결과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사라졌습니다. 다만 세상살이의 걱정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종말을 대비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종말이 닥치면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기도로 늘 유지하며 사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느냐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지막 때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늘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종말을 실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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