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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선교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벧전 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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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선교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벧전 2:4-12)

사람은 누구든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슨 일을 행하며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사명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인간은 누구든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Ⅰ. 우리는 누구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가 교회라고 말할 때 보통 예배당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를 간다고 할 때 예배당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당은 건물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어떤 이벤트를 행하는 장소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이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교회이고 성도들의 모임이 곧 교회인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가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서 여섯 가지 상징을 사용합니다. 

첫째, ‘신령한 집’(벧전 2:5)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물질적인 집이 아니라 영적인 집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지어나가시는 신령한 집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벧전 2:9 전반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운영하시는 계획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인데 유대인 가운데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있고 이방인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 남은 자와 이방인 중에 택한 자들을 모아서 새로운 인류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가 되는 것은 피부 색깔, 언어, 족속, 성별, 친분에 달려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자유의지의 결과라고 하는데, 인간은 그 정도로 자유의지가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리를 분별할 정도의 자유의지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은혜를 입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셋째,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중반부)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모두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목사나 다른 매개체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 찬양할 수 있고 필요를 간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넷째, ‘거룩한 나라’(벧전 2:9 중반부)라고 했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윤리적으로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해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섯째,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 중반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구원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하나님께서 주인이신데 누가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는 방패시며 영광의 칼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여기서 행복자는 ‘happy people’이 아니라 ‘blessed people’입니다. ‘happy’는 주관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blessed’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축복하셨다는 뜻입니다. 행복자는 주관적으로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해도 객관적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은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행복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축복받은 백성입니다. 우리가 요즘 새벽기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팔복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데 가난하고 애통한데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백성들인 것입니다. 

속으로 나는 지금 불행한데 무슨 행복이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주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껴도 객관적으로는 하나님께 복받은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축복받은 백성이라도 때로는 기분이 나쁠 때가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비만 와도 기분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행복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복받은 행복자라는 정체성을 가질 때 우리는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 ‘나그네와 행인’(벧전 2:11)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그네와 행인 같이 살아갑니다.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도 우리가 나그네라는 것을 잘 압니다.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서 노래를 불렀던 ‘최희준’이란 가수가 있는데 그분이 부른 노래 중에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이 나그넷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도 알고 어디로 가는지도 아는 나그네입니다.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여섯 가지 상징들을 보면 구약의 이스라엘이 생각납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라.’ 이것은 모두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베드로는 교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던 모든 축복은 그림자로서 약속하신 것이고 ‘새 이스라엘’인 교회에게 완전히 실현되는 것입니다. 


Ⅱ. 우리는 어떻게 교회가 되었는가? 

베드로전서 2장 5절 중반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죄 없는 완전히 의로운 삶을 사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주셔서 우리는 의롭다 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종교인으로 존중은 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교회의 일원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벧전 2:4).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 (벧전 2:7).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거절하며 버립니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8). 집을 짓다가 좋은 돌 하나를 갖다 버렸는데 공사 마치고 저녁에 돌아가는 길에 그만 걸려 넘어져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마 21:44). 

세상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멸시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벧전 2:4).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 (벧전 2:6).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령한 집의 모퉁이 돌로 보십니다. 이 모퉁이 돌이 없으면 건물 자체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퉁이 돌이 파괴되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느냐?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벧전 2:7).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보배입니다. 여러분들의 보배는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입니까? 밍크코트입니까?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의 보배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배가 됩니까?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10). 

이 말씀은 구약성경 호세아서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행실이 좋지 않고 부도덕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고멜과 결혼하였는데 아들을 낳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이스르엘’(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흩어버리겠다)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딸을 낳았는데 이번엔 ‘로루하마’(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낳은 아들은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낳고도 아버지가 자녀를 흩어버리고 긍휼히 여기지 않으며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멜은 이렇게 자녀를 낳고도 또 이방 남자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시덤불로 막으시고 호세아에게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가정이라는 상황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멜과 같지만 계속해서 받아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로루하마’를 ‘루하마’(긍휼히 여기겠다)라고 하고 ‘로암미’도 ‘암미’(내 백성이다)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장 10절에 간략히 요약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연상태에서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긍휼을 입은 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긍휼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암미)이요 긍휼을 얻은 자(루하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은 세 가지를 행하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께 나옵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고 셋째,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순종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모퉁이 돌로 삼으시고 우리를 산 돌로 삼으셔서 신령한 집을 건설해나가십니다. 아무리 큰 집이라고 해도 벽돌 한 장이 빠지면 그곳으로 쥐들이 들어오고 바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나 하나 없어도 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Ⅲ. 우리는 무슨 일을 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백성 즉, 교회가 되었는데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명이 많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신령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5). 이것은 양과 소를 잡아 물질적인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제사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몸을 드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산 제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가대에서 봉사할 때도 몸이 와서 봉사해야지 마음만 가 있는 것은 산 제사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는데 그것은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죄인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비판과 원망이 가득하면 그것은 신령한 산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인생을 거칠게 살거나 실패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 혹은 환경 탓을 합니다. 자기 탓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그보다 훨씬 못하면서 남 탓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남들이 잘못하고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지어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는 삶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15). 

네 번째로 선교를 위해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보내줬습니다. 이 선교헌금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제물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인색한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 볼 수 없습니다. 


둘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국내에서 복음을 전파하면 국내선교이고 해외에서 전파하면 해외선교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선교위원회는 큰 조직이 되었습니다. 국내선교로 121개 교회를 돕고 선교사 107명을 도와주며 21개의 기관들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남에 있어서 체면치레하려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우리의 헌신과 사랑의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고 저는 강남중앙침례교회가 다른 것은 몰라도 선교만큼은 꼭 1등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 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 67:1~3).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복을 받은 사람은 세계 만방 민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알리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선교에 열정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은 선교주간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언제까지 하느냐? 세상 끝날까지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선교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물질의 후원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퍼주면 자신은 뭘 먹고 사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자꾸 퍼줘야 하나님께서 다시 채워주십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주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빼앗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여기서 권고하신다는 단어는 NIV 성경을 보면 ‘visits’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몸을 드려 병이 들면 치료의 보따리를 들고 방문하시고 물질을 드려 가난해지면 축복의 보따리를 들고 방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불신자들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망한 줄 알았더니 역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으신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헌신하시고 하나님의 권고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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