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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망이 있습니까! (시 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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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이 있습니까! (시 42:1-5)


지난 주 미국 로또복권인 파워볼 1등 당첨 금액이 5억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5000 억원이 넘는 겁니다. 미국전역에서 복권열풍이 불었답니다. 복권을 산 사람들이 1등 당첨되기를 얼마나 갈망할까요? 
고3은 원하는 대학 합격하기를 갈망할 겁니다. 대4는 원하는 직장 취직하기를 갈망합니다. 
대선 후보는 대통령 당선되기를 갈망합니다. 여러분의 갈망은 무엇입니까? 
시편 42편의 시인의 갈망은 무엇입니까? 시인의 갈망이 우리의 갈망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하나님을 찾기를 갈급합니다. 
광야에서 건기 때에는 시냇물이 다 말라버립니다. 사슴이 목이 말라 사방으로 뛰어 다닙니다. 더욱 목이 마릅니다. 물을 찾았는데 사나운 맹수가 노려보고 있습니다. 도망가야 사는데 너무 목이 말라 물가로 갑니다. 안마시면 죽을 것 같습니다. 
시인은 그런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2절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이 시인이 고라 자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를 보관했던 사람일 거라고 합니다. 
다윗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거인 장수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말리는 사람들에게 간증합니다. 삼상17:37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고는 골리앗을 향해 담대히 선포합니다. 삼상17:46-47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베고 승리합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다니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지는 처형을 당하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도 기도합니다. 단6:10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법대로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다니엘을 사랑한 왕이 사자굴로 가서 묻습니다. 단6;20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다니엘이 감격에 겨워 대답합니다.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일이 있습니까? 
그런 체험이 있다면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더욱 갈망하십시다! 
하나님을 믿지만 그런 체험이 없다면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합시다. 

어떻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겁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일수록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아! 하나님이 오늘도 내 길을 인도해 주시는구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주 말씀처럼,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시50:13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갈망하며 예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회사면접 보러가는 마음보다, 소개팅 선보러 나가는 마음보다 갑절로 십배로 사모하며 예배를 드리세요.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셀 예배도 매우 중요합니다. 혼자는 성경도 기도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 때도 있습니다. 
마18:19-20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세 가지가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리입니다. 

시화동산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영혼의 갈망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없다면 살아계시는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는 간절한 소원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이? 

시인의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현실의 아픔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3절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사람들에게 종일 무시를 당합니다. 비웃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10절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무시하고 거부하는 말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4절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전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감사의 찬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내가 말하면 감동을 받고 교회로 따라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비웃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조롱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 거부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봐도 내 현실이 답답합니다. 9절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아 답답합니다.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빚쟁이에게 눌려 있습니다. 쫓겨 다니는 처지입니다. 슬프기 한이 없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아 두려워집니다. 43: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 버려진 자 같습니다. 

전에는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 전에는 이런 신앙이 아니었는데... 전에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자꾸 눈물만 납니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꾸 마음이 상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같습니다. 
전에는 교회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전에는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전에는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이라도 기독교인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더 어둡게 한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이제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부모 욕 먹이는 자식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욕 먹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송구스럽습니다. 세상에게도 교회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미안해집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외면하시지는 않을까? 버리시지는 않을까? 두렵고 슬프고 답답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답답한 신앙, 답답한 삶의 현실 때문에 고통스러운 분들이 많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기는 빠졌는데,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안 됩니다. 
청소년, 청년들은 자기 미래가 불안합니다. 공부도 잘 안됩니다. 진학도 걱정입니다. 취직도 걱정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낙심이 됩니다. 포기합니다. 행복하질 못합니다. 

부모들은 더 불안합니다. 자녀의 신앙을 보면 걱정입니다. 자녀의 진로도 불안해 보입니다. 
자신의 노후도 별로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녀를 기댄다는 거는 아예 생각 못합니다. 
수명은 자꾸 늘어가는 데 걱정이고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절망대신 하나님께 소망을!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절, 43:5절도 같은 말씀입니다. 같은 후렴구입니다. 
시인도 낙심이 되고 불안합니다. 다윗이라면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데도 불안합니다. 
본문에 ‘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말끝마다 나입니다. 나를 바라볼수록 더 낙심이 됩니다. 내 형편, 내 능력을 보면 더 불안해 집니다. 

될 대로 되라! 포기하고 맙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지? 그렇게 살아갑니까? 아닙니다. 
결심하고 결단합니다. 자기 자신을 격려합니다. ‘낙심 출입금지! 불안 출입금지!’ 
또 결심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로 결단합니다. 이 결심도 11절, 43:5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8절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시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기도해도 불안하고 낙심이 됩니다. 그러면 또 기도합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확신의 찬송이 나올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회복이 될 때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바라볼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주의 얼굴 구할 때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증을 서 주십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맺는 말 

지난 주간에 욥기를 읽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이요.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 욥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자녀들이 다 죽습니다. 재산을 다 잃어버립니다. 몸에 중한 병이 듭니다. 그래도 믿음을 지키려고 발버둥 칩니다. 욥1:21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아내가 무시합니다.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순간순간 죽고 싶은 듭니다. 그런 말을 했더니 친구들도 욥을 비난합니다.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데 하나님은 외면하시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욥23:8-9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마침내 욥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욥을 만나 주십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잃은 것 보다 더 좋은 회복을 주십니다.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시인처럼 하나님을 갈망합시다. 욥처럼 하나님을 갈망합시다.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나가십시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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