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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엡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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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엡 1:4-5)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말은 아라비아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말을 찾아다니던 어떤 사람이 두루 다니면서 훌륭한 말 1백 마리를 찾아내, 우리 안에 가두고 먹을 것을 충분히 주되, 물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시내가 흐르는 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말들은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은 말들이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한 다음, 우리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말들은 거의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말들이 거의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주인은 풀피리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1백 마리 중 네 마리만 피리소리를 듣고 멈춰 섰는데, 바로 그 네 마리 말의 조상이 아라비아말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 4마리의 아라비아 말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주인의 풀피리가 통제했던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이 통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에게는 복이 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그 목적에 맞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인생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인생의 목적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에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로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상태는 육체 밖의 죄도 없이 하고 육체 속의 죄도 없이 깨끗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차를 뽑게 되면 그 자동차는 흠이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만약 흠이 있으면 그 자동차는 리콜 조치해야 합니다. 흠이 없어야 하는데 어디에 흠이 없어야 합니까? 먼저는 외관상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외관만 흠이 없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도 흠이 없어야 하고 부품 하나하나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육체 밖의 죄도 없이 해야 하고 육체 안의 죄도 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신 목적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데 있습니다. 
 

2. 신자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아야 하는 이유 네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는 말씀도 깊이 들어가 보면 “와서 나하고 교제하자. 나하고 대화하자”라는 의미입니다.
   
부부가 서로 교제를 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혼을 한 부부가 행복하려면 서로 교제가 잘 되어야합니다. 부부가 결혼을 한 후 대화를 단절하고 서로 교제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가정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예배를 통한 교제, 기도를 통한 교제가 있어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도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다면 그 신앙생활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위해서 특별한 장소를 구별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을 구별하셔서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나시고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세상에 많은 땅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나안 땅을 구별하시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성전을 택하시고 그곳에서 깊은 교제를 하기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흠이 많은 존재가 되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깨지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미혹을 받아 불법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불법을 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불법한 자들이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간절히 원하셔서 사람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사람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고전 3:16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의 몸을 성전 삼으시고 그 사람 속에 성령으로 임재 하셔서 그 사람과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계속적인 교제를 유지하려면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함을 잃어버린 인간은 교제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범한 후에 회개하지 않고 그 죄악에 빠져서 산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3:17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이 성전 삼으셨지만 불법가운데 빠져살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에 불로서 임재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그 전에 임재 하신다는 사실을 모든 백성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니 하나님께서도 그 성전에서 떠나셨고 성전은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을 모신 성전이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과거에 성령의 바람 같은 역사, 불같은 역사가 강하게 있었다 할지라도 그가 거룩함을 버리고 계속적으로 불법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은 성전을 무너뜨리셨던 것처럼 그 사람을 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다. 
   
성경 딤후 2:20-21입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성경은 인간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큰 집에는 많은 그릇이 있지만 주인은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듯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릇을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개밥을 담는 그릇처럼 쓰임을 받기는 하는데 천하게 씀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밥상에 올라가는 그릇처럼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면 영원한 영광도 함께 얻게 되어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딤전 2:4; 딤후 2:10).
   
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잃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여 자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고전 3:17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마 7장에 보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불법을 행했던 사람들이 내어 쫓기는 모습이 나옵니다. 마 7:21-23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이 주님 앞에서 내어 쫓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실 그들은 믿음도 대단하고 직분도 대단하고 능력도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 앞에서 쫓겨나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흠 많은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법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행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선지자 사역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불법을 행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능력을 행했던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불법을 행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토록 교제하기를 원하시면 아멘합시다. 그렇다면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사십시오. 그래야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이 땅에서도 복을 받기 위해서다.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신 28:1-14에 보면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다양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복, 자녀가 잘 되는 복, 생업이 잘 되는 복,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어디서나 잘 되는 복, 적들 앞에서 높아지는 복,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잘 되는 복,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 때를 따라 주시는 복, 민족적인 복 등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대로 살아서 이 모든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수 1:5-9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십니다. 그 말씀에 보면 율법대로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나옵니다.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합니다. 길이 평탄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복을 받아 누리려면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3.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사는 길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사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대책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 수 있습니까?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사는 방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인격이나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사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거듭나라. 
   
부모님의 뜻대로 살려면 먼저 태어나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살려면 먼저 영적으로 출생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성경은 영적으로 출생하는 것을 거듭난다고 말하며 거듭난 자만이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요일 5:4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거듭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거듭나면 우리 안에 큰 신을 모시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이 목사안수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섬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는 친구 목사님으로부터 집회를 부탁받고 그 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집회 첫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그날 그 마을에서 굿을 하는데 모두 굿 구경을 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두 분 목사님도 그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두 분 목사님이 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굿하는 사람이 대 굿판을 벌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내리지 않아 굿을 할 수 없다며 굿하는 사람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큰 신을 섬기는 분들이 있는데 어서 가 주시오. 여기에 큰 신을 섬기는 분들 때문에 신이 내리지 않으니 제발 어서 가 주시오.” 그래도 그냥 버티고 앉아 있는 두 분 목사님 앞으로 굿하는 사람이 와서 “좀 가 주시오. 제발 가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우리 속에 큰 신이신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흠 없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2) 죄를 처리하라.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와야 하는 하나님의 복들이 올 수가 없습니다. 렘 5:25입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죄를 범한 사람이 자기를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요일 1:9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죄를 자백하는 것은 마치 더러워진 옷을 비누로 빠는 것과 같습니다. 계 22:14에 보면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라고 말씀했고 계 7:14에서는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회개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의 세마포를 발아서 흠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기도를 하는 그 시간은 영적으로 두루마기를 빠는 시간인데 얼마만큼 회개를 해야 합니까? 성령님이 주시는 내적 확신이 올 때까지 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지나가는 말로 주님에게 자백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옷이 더러워져서 빨 때 언제까지 문질러서 빨아야 합니까? 때가 빠질 때까지 문질러야 합니다. 우리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실 때 언제까지 마셔야 합니까? 몸이 됐다고 할 때까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됐다고 확신을 주실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을 먹으라. 
   
성경 딤전 4:5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만 잘 먹어도 육체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잘 먹으면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을 읽는 것은 영적인 식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통해서 육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 받는 것처럼 성경을 읽으므로 영혼을 강건하게 하는 영적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매일 습관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힘이 생겨서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밥을 굶으면 힘이 없습니다. 계속 굶으면 몸이 병들고 결국은 죽습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성경을 읽으며 영적인 양식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둘째, 암송과 묵상으로 먹습니다. 암송과 묵상은 음식을 씹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을 잘 씹어서 삼켜야 소화도 잘 되고 영양분도 몸에 잘 흡수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은 말씀을 영혼 깊은 곳까지 흡수하게 하는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셋째, 설교로 먹습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은 영혼의 양식을 먹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식사시간인 것입니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대부분이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먹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잘 읽지 않습니다. 묵상이나 암송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섭취하는데 문제는 설교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잘 들으십시오.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시간마다 오셔서 설교를 들으십시오. 그래서 영적으로 힘을 얻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넷째, 믿음으로 먹습니다. 히 4:2에 보면 말씀이 유익이 되는 사람과 유익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점은 믿음으로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듣는 사람을 살리고 영적으로 강건하게 하려면 받는 사람이 믿음으로 화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아멘으로 먹습니다. 아멘하면 복이 됩니다. 아멘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요즘 교인들은 설교들을 때 아멘이 인색합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의 말씀에도 아멘하고 저주의 말씀에도 아멘 했습니다. 고후 1:20에 보면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멘에 힘을 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천에서 건축업을 하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예배시간에 항상 큰 소리로 “아멘, 아멘”합니다. 얼마나 크게 하는지 설교가 방해될 정도랍니다. 이 분이 “아멘, 아멘”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부터 배가 아프더랍니다. 하지만 일이 바빠서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소화제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병원에 가보니 위암 말기라서 도저히 고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이 진단을 받고 바로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하는데 마음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지금부터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면 아멘으로 화답하리라’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멘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아멘, 아멘”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얼마 지나면서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한다고 하던 병이 차차 낫게 되고 나중에는 완치가 되었답니다. 우리가 “아멘”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영을 강건하게 하며 여러분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게 하여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4) 기도하라. 
   
딤전 4:5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어준다고 말씀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받게 되고 그 힘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형 에서가 무서워서 얍복강 나룻터에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기도하다가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서 야곱이 변해서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처럼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적으로 살 수 있도록 영적인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것입니다. 
 
   
5) 성령충만하라.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능력도 달라지고 인격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동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 성도로서 영적으로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도 영적인 동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하고 흠 없는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영적인 동력을 공급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 열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니 진짜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이 주시는 동력을 공급 받아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성령충만한 사람은 죄를 범하기 힘들어지고 그 결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팔월 대보름날 고개 넘어 큰 집에 다니러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불신자였지만, 아들은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가는 도중인데 무 밭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목이 말라 안 되겠다. 무 한 개 뽑아 먹어야겠다. 너 여기서 누가 오는지 잘 보고 있어라.”하고 무 밭에 들어가 다리통만한 무를 뽑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밭머리에서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쿠, 큰일 났구나’싶어 빨리 밭머리로 나와서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놈아.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남자가 간이 커야지. 똑똑히 지켜”라고 말하며 다시 무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까 뽑으려다가 뽑지 못한 그 무를 다시 뽑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또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 밭에서 급히 나와 사방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이놈아. 누가 본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하늘에 달과 별이 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똑똑히 지켜.”라고 말하며 다시 무 밭으로 들어가서 아까처럼 다리통만한 그 무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정말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번에도 헐레벌떡 나와서 “자꾸 누가 본다고 그래?”라고 말하자, 아들은 “하나님이 다 내려다보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쯤 되자, 아버지는 더 이상 무를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통을 군밤으로 쥐어박으며 “야 가자. 장난으로 한번 그래 봤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밭 무를 뽑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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