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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범사에 감사합시다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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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드립시다
본문: 눅17:11~19

1. 감사의 두 가지 열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두 가지 열매를 낳는다. 첫째,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둘째, 감사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한다. 

예수님이 한 촌에 들어가실 때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서 외쳤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지체하지 않고 응답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주어라.”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자들은 부정한 자로 규정되는데다가 전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하였다. 제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과 떨어진 곳에서 문둥병자들끼리 모여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혹 병이 낫는 일이 있다면 제사장을 찾아가서 병이 나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했다. 그런 후에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었고 제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둥병자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이 말은 너희의 소원대로 이제 곧 몸이 낫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제사장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여전히 문둥병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사장을 만나러 갔다. 만약에 제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여전히 문둥병이 낫지 않았다면 그들은 크게 혼이 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가는 동안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을 괴롭혀 왔던 문둥병이 싹 낫고 피부가 깨끗해진 것이다. 몸에 흐르던 진물도 사라지고 문들어져 없어졌던 신체도 다시 복원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 낫게 된 모습을 쳐다보고 얼싸안고 기뻐 뛰며 좋아했다.  

그런데 열 명 중에 한 사람은 두 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를 지르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서 예수님께 뛰어갔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서 감사를 표현했다. 그는 유대인도 아니고 사마리아인이었다. 유대인들이 믿음이 없다고 경멸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모두 병이 낫지 않았느냐?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에 있느냐? 이 이방인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아마도 나머지 아홉은 유대인인 것 같다. 유대인은 감사를 모르고 제 길로 갔는데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고 예수님이 탄식하셨다.

이런 비슷한 일은 우리 생활에도 있다. 어머니가 형제들에게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라고 시키고 잠시 외출을 했다. 돌아와 보니 막내만 공부하고 있고 다른 자녀들은 자리에 없다. 그러면 애꿎은 막내에게 “네 형들은 다 어디 갔어?”하고 역정을 내신다. 사실 그 말씀은 막내를 혼내는 말은 아니다. 막내가 기특한 것은 당연지사이다. 어머니는 다른 자녀들이 자리에 없는 것이 화가 난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보는 것 같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너 혼자만 왔느냐? 아홉 명을 왜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는 말씀은 아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을 향한 예수님의 분노이다. 예수님은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마음을 품고 계셨다. “감사할 줄 아는 너는 참 기특하구나. 너는 감사하러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감사를 모르고 제 길로 바삐 가고 말았구나.”하고 탄식하시는 것이다.

어떤가? 나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을 때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 사람인가? 아니면 감사할 줄 모르고 제 길로 가기 바쁜 아홉 명인가?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주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앞에서는 사마리아 사람의 문둥병을 고쳐주셨는데 이번에는 사마리아 사람의 영혼을 고쳐주셨다. 그의 영혼을 구원해주셨다. 사실 문둥병을 고침 받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이 아닌가? 

아홉 명은 육신의 질병은 고침 받았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육체의 질병을 고침 받은 것에다가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받았다. 어떻게 했기 때문인가? 감사했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가? 조금 시간을 내서 돌아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감사를 표현했다면 아홉 명도 영혼의 구원을 받았을텐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 보면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의 감사를 기뻐 받으시고 그에게 더 큰 복을 주셨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때 감사를 빠뜨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신다. 더 중요한 복을 주신다. 할렐루야!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 말씀 그대로이다. 사마리아 사람이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렸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복인 구원을 베푸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야말로 행복의 비결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시에 내 삶을 더 기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감사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 것이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동시네 내 삶을 더 복되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드리는 삶을 살자. 


2. 범사에 감사드리자.

본문의 말씀에서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당연히 감사를 드려야 할 상황이었다. 문둥병이 나았는데 어찌 감사를 빠뜨린단 말인가? 이런 감사는 너무나 당연한 감사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교훈한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좋은 일을 당했을 때는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감사하라고 교훈한다. 어찌 좋지 않은 일을 당했는데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박국 선지자에게서 그 답을 얻어 보자.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는 불행한 시대였다. 남 유다 왕국은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를 사고 있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강성하게 하시어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셨다. 바벨론은 여러 차례 유다를 공격해서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유다 나라 자체가 바벨론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하기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은 불만을 가득 품고 하나님께 질문을 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우리보다 죄가 많은 바벨론 나라를 사용하시어서 유다를 징계하십니까? 왜 악한 바벨론이 강성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는 망해야 합니까? 이것은 부당합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대답하셨다.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바벨론이 당장은 형통해보일지라도 결국 바벨론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할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장차 언젠간 이 땅에 메시아가 올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약속하셨다. 하박국 선지자는 처음에는 답답하고 괴로운 심경뿐이었으나 하나님의 대화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구나. 하나님이 보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대해야 하는구나.” 그리고 이제 그는 눈앞에 보이는 암담한 현실을 뛰어넘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 불렀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지라도 이 땅에 초점을 맞추면 헤어날 수가 없다. 매섭고 차갑고 냉엄한 현실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리 먹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구름 위에 태양은 여전히 떠 있지 않는가?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 우리는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를 드릴 수가 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감사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드렸다. 그는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선교를 하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다. 그런데 그 여종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다. 이유인즉 여종이 귀신들렸을 때에는 귀신의 힘을 빌어서 점을 칠 수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주었는데 귀신이 나가고 온전한 사람이 되니 점도 못 치게 되고 따라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에 눈이 어두운 여종의 주인이 고소하는 바람에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청에 붙잡혔다. 채찍형을 당하였다. 온 몸에서 피가 흘렀다. 두 발이 착고에 매인 채로 감옥 깊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 채찍을 인하여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쓰라리고 아프다.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서 기진맥진해 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이 되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바울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가슴 가득히 차올랐다. 바울의 기도는 이제 찬송으로 바뀌었다. 

바울이 깊은 감옥에서 냉혹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깊은 감옥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었다. 고난 중에서 드리는 찬양의 제사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다. 옥터가 흔들렸다. 옥문이 열렸다. 착고가 풀렸다. 이런 현상을 보고 감옥의 간수가 바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 바울이 깊은 감옥에서 온 몸이 쓰라리고 아픈 중에도 어떻게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호와를 바라보았을 때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서 기뻐했던 것처럼 바울도 깊은 감옥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고난 중에서 감사할 수 있는 기쁨이 솟아난 것이다.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는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된다. 고난을 통과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는 원동력이 된다. 고난 중에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따지고 싶을 때는 따져도 좋다. 하나님과 대화하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만져주신다. 깨닫게 해주신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이 되게 한다. 내 힘으로 고난 중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서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환난과 불행을 당하였을 때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고 슬픔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은혜를 주신다. 그 은혜로 우리는 고난 중에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실 것이다. 


3. 감사를 생활화하자.

감사는 생활화해야 한다. 입에 배야 한다. 몸에 배야 한다. 복음의 일찍 들어간 서구 사람들은 쌩큐가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서구 문화는 우리보다 밝다. 생동감이 있다. 자비와 긍휼이 더 많다. 우리도 많이 바뀌었지만 더 바뀌어야 한다. 감사를 생활화해야 한다.

시 136편을 보면 감사가 26번이나 나온다. 감사는 행복의 비결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내 삶을 더 복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인생 가운데 감사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사소한 일,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보아도 감사가 나와야 한다. 시136편은 26번의 감사가 반복된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1절), 하나님의 존재에 감사(2,3절), 하나님의 능력에 감사(4절), 하늘과 땅과 큰 빛과 해와 달과 별들로 감사(5~9절), 역사 속에서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10~15절), 대적을 물리쳐주신 은혜에 감사(16~20절), 가나안 땅을 주신 은혜 감사(21~24), 양식 주신 은혜 감사(25절),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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